"선배님..." 모교 비판 글 쓰고 받은 서글픈 메일

서부원 2026. 4. 8.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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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했다'고 조언하는 후배에게 보내는 글

[서부원 기자]

 과거 집회가 열릴 때 총학생회장이 사자후를 토했던 학생회관 입구 계단이 사라졌다. 광장의 시선이 모였던 계단에 오를 필요 없이 아래로 내려가 엘리베이터를 타도록 되어 있다.
ⓒ 서부원
얼마 전 쓴 '모교 방문기'로 인해 지난 며칠 동안 대학 후배들(로 짐작되는 이들)로부터 '꾸지람 세례'를 받았다. 유수의 미국 대학의 사례를 언급하며 '억까(억지스러운 비판)'라고 나무라는가 하면, 후배들을 위해 고액 기부하지 못할 거라면 '아닥하라(입 다물라)'는 비속어까지 쏟아냈다. '30여 년 전 과거에 얽매여 사는 꼰대'라는 지적은 차라리 약과였다.(관련기사: SK 미래관, CJ 법학관, 하나 과학관... 이곳이 대학 맞나요? https://omn.kr/2hkoc)

한 후배는 정중한 어투로 '해명'을 요구했다. 친일반민족행위를 옹호하며 건물에 악질 친일파의 이름에 사용하는 건 문제라는 점엔 전적으로 동의한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기업에서 새 건물을 지어주거나 리모델링해 주는 대신 해당 기업의 이름과 로고를 넣어 홍보하는 게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좋든 싫든 오늘날 대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지성의 전당'에서 '취업을 위한 준비 기관'으로 바뀐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되레 기업을 홍보하는 대신 낡은 학교의 시설을 개선할 수 있다면 대학과 기업, 학생 모두가 '윈-윈' 할 수 있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솔직히 수십 개의 메일 중에 제 주장을 두둔하는 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일일이 답변을 보내다가 지쳐서 그만뒀다. 정성스레 반론해 봐야 그들을 설득하기란 애초 무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당위와 현실이라는 전제가 충돌하는 대화와 토론은 자칫 '감정싸움'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평행선을 달리는 치킨게임 같은 토론에서 승자는 늘 당위가 아닌 현실이다.

처음에 'Ctrl+C' 해서 'Ctrl+V' 했던 내 답변의 요지는 이랬다. '대학엔 사회적 책무가 있다. 자본에 의존하게 되면 그들을 비판하기 어렵다. 미국을 제외하고 대기업의 로고가 대학의 건물에 새겨졌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지성의 전당인 대학이 취업 준비 기관으로 전락하는 건 공동체의 위기다. 대학 교육은 기업과 자본이 아닌,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미국식 자본주의가 대학 교육의 본령이랄 수 있는 '비판적 지성'을 갉아먹고 있다는 게 글에 담긴 문제의식이자 굳이 모교를 '깐' 목적이다. 맨 마지막 문단에서 '압제를 불살라라'는 총학생회의 옛 현판까지 거론한 것도 그래서다. 지금 그들이 맞서 싸워야 할 '압제'는 곧, 자본에 종속된 대학의 현실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고백하건대, 선배랍시고 까마득한 후배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셈이 됐지만, 나 역시 애먼 그들을 나무랄 처지가 못 된다는 걸 잘 안다. 아이들을 명문대 못 보내 안달 난 인문계고등학교 교사로서, 제 얼굴에 침 뱉기일 테다. 진학 지도라는 이름으로 은연중에 돈이 최고이고, 그러자면 학벌 구조의 꼭대기에 올라서야 한다고 말해 왔다.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전국의 인문계고 최상위권 아이들의 장래 희망은 죄다 의사 아니면 약사다. 학교생활기록부를 보면, 그들의 진로 탐색 과정과 흥미, 적성 등이 이렇듯 맞춤할 수 있나 깜짝 놀랄 정도다. 학교마다 예외를 찾기도 힘들다. 이젠 대학 서열 순위에서도 'SKY' 앞에 '의치한약'을 세우는 게 관행이 됐다.

이 또한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노벨상의 산실이라고 호들갑 떨던 서울대 공대는 지금 '의치대 사관학교'라고 불리게 됐다. 재학생 중 상당수가 대학 강의실이 아닌, 노량진에 가 있다는 참담한 이야기도 들린다. '반수'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른바 'N수'를 할지언정 다시 공대로 돌아가지 않겠다며 배수진을 친 경우가 적지 않단다.

한때 수험생에게 최고의 선망 대상이었던 카이스트와 지스트, 포스텍, 켄텍 등도 그 인기가 예전과 같지 않다. 세금으로 학비를 지원하는 그런 특수목적대학조차 강의실이 하나둘씩 비워져 가고 있다는 소식이 씁쓸함을 더한다. 우리나라에서 이공계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라는 조롱이 잇따르는 현실이다.

그런데, 더욱 참담한 건, 요즘 아이들의 숨 쉬듯 내뱉는 '돈타령'이다. 의대 진학을 준비하는 최상위권 친구들에게 부러 다가가 왜 의사가 되고 싶은지 물으면, 다들 입이라도 맞춘 듯 똑같은 답변이 나온다. 단 1초의 주저함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 이렇게 말한다. "돈을 많이 벌잖아요. 중간에 잘릴 위험도 없고요."

예전 같으면, 설령 내심 그렇게 생각하고 있더라도, 그렇게 대답하는 경우는 없었다. 대개 '가난하고 아픈 사람을 돕고 싶다'거나 '내 재능과 지식을 공동체를 위해 사용하고 싶다'는 식으로 답했다. 아프리카 대륙의 오지에서 인술을 실천한 슈바이처나 이태석 신부, 6.25 전쟁 중에 피난민들을 돌본 장기려 선생의 삶을 닮고 싶다고 했었다.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듣기 힘들다. 아니 전혀 들을 수 없다. 누군가 그런 대답을 한다면, 대번에 친구들로부터 '위선자'라는 손가락질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요즘엔 실제 대학의 면접에서조차 그런 '모범 정답'을 말하면 감점 요인이라고 조언한다고 한다. 차라리 취업이 하늘의 별 따기인 데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현실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낫다는 거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돈이 전부인 아수라장이 됐고, 학교는 탐욕을 본성인 양 가르치고 있다. 불가에서 탐욕은 자신의 심성을 해치고 타인과의 관계를 허무는 '삼독'의 하나라고 했고, 자본주의의 경전으로 손꼽히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도 탐욕을 경계하며 절제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강조했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선 '공자님 말씀'일 뿐이다.

자신의 필요 이상의 돈을 바라는 걸 두고 아이들은 '탐욕'이 아닌 '본능'이라고 답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말은 탐욕스러운 자들의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고 강조하면, 그들은 가당찮다며 콧방귀로 답한다. 이른바 '천민자본주의'나 '자본의 노예'라는 비유적 표현조차 자본주의에 대한 맹목적 적개심의 발로라며 눈을 흘기니 더 말해서 무엇 할까.

"선배님, '시대'가 변했습니다."

그 어떤 비난과 비아냥보다 가슴을 후벼팠던 메일 내용이다. 기업이 대학을 통째로 '구매'하는 마당에 대학생이 자본에 맞서는 건 무모하다는 조언도 곁들였다. 언젠가 지금 대학의 총학생회는 학생 복지와 취업 지원을 위한 서비스센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선지 총학생회에 출마하겠다는 이들을 찾아보기도 힘들어졌다.

그에게는 뭐라도 대꾸해야 할 것 같았다. 고민을 거듭하다 이렇게 답했다. '교사로서, 차마 아이들에게 시류에 영합하며 살라고 가르칠 순 없다. 돈이 전부가 아닐뿐더러 이 세상 살아가는 데 돈보다 중요한 게 많다는 것, 그리고 그걸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 게 교육의 본령이라 믿는다'고. 그렇게 또 난 '선민의식에 젖은 PC주의자'로 낙인찍혔다.

'우아한 위선의 시대는 가고, 정직한 야만의 시대가 도래했다'.

얼마 전 책을 읽다가 무릎을 치게 만드는 구절을 만났다. 밑줄을 그어가며 한참 동안 고개를 주억거렸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당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국제 정세를 비유한 말이지만, 내겐 부박한 우리 사회를 향한 저자의 날 선 통찰로 받아들여졌다. 그 후배에게 보내는 답장 말미에 '정직한 야만'보다 차라리 '우아한 위선'이 그리운 요즘이라는 말을 덧붙였다면 좋았을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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