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씨년스럽게 생겼는데 "산낙지보다 더한 감칠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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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정 기자]
누구보다 라면을 좋아하게 생겼지만, 내가 가장 즐겨 먹고 좋아하는 음식은 나물이다. 어릴 적부터 대가족이 모여 다 같이 식당에 가도 갈비나 회 대신 반찬으로 나오는 나물은 늘 내 차지였다.
봄이 되면 나물을 좋아하시던 엄마는 이름도 모를 푸성귀들을 가득 사 오셨다. 이웃집 아줌마가 쑥을 캐는 날이면 쑥 파티가 열렸다. 할머니표 집 된장에 쑥을 풀어 최소한의 간만 한 된장국은 쑥이 주인공이었다. 엄마와 나만 좋아해서 다른 형제와 경쟁할 일도 없었다.
지금 내가 사는 인도네시아에서도 쑥은 쉽게 구할 수 있다. 한국마트에 가면 늘 놓여 있지만, 한 번 사서 된장국을 끓인 이후로 더는 사지 않는다. 한국의 쑥처럼 우아한 향도 없고, 억세다. 그럼에도 어릴 적 입맛이 어디 가지 않아서 쑥향이 그리운 날에는 한국 떡집에 가서 쑥 인절미를 사 온다. 한입 베어 물면, 그래 여기가 한국이지 하며 감사한 마음이 든다.
서울에서 자취를 하던 시절에도 봄이 되면 꼭 봄나물을 무쳐 먹곤 했다. 같이 살던 친구는 내가 장을 봐오는 날이면 또 풀 뜯어왔냐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소쿠리 가득 담긴 돌나물을 씻어서 초고추장을 살짝 얹고 깨를 듬뿍 올려 바로 먹으면 그렇게 상큼할 수가 없었다. 다른 나물에 비해 익히지 않아도 되니 자취생에게는 더없이 좋은 봄나물이었다.
봄나물이라면 웬만한 건 다 먹어봤다고 생각했는데, 결혼하고 처음 만나는 나물도 있었다. 편식은 없지만 은근히 먹던 것만 먹고, 새로운 음식에는 쉽게 도전하지 않는 편이라, 서른세 살이 되어서야 인생 첫 두릅을 먹게 되었다.
결혼 후 허니문베이비를 얻어 검진 차 혼자 한국에 방문했다. 상견례 때 한 번, 결혼식 때 한 번 본 어색한 사이였던 시부모님 댁에 내 발로 찾아갔다. 일주일 휴가 중 3일은 시댁에 있겠다고 했다. 겁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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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치기 전의 생두릅. |
| ⓒ 오마이뉴스 |
"너 온다고 가장 연한 걸로 데쳤으니 초고추장 찍어서 먹어봐. 참두릅이야."
그동안 어지간한 푸성귀는 가리지 않고 잘 먹었지만, 두릅의 생김새는 조금 낯설었다. 말로만
"어머 맛있겠어요"를 연발했다. 어머님과 아버님은 며느리가 두릅을 잘 먹는지 눈을 부릅뜨고 계셨다.
"이거 가시 손질하느라 고생했어. 먹어보면 진짜 고소하고 감칠맛이 산낙지보다 더해."
봄나물에서 산낙지라니, 더 먹기가 싫어졌다. 하지만 시부모님의 눈을 더 이상 피할 수 없어서 두릅 머리채를 간신히 들어 밥그릇에 옮겨두었다. 그러자 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
"아이구야, 억지로 먹지 마. 네가 나물 좋아한다길래 준비한 거지. 안 먹어도 된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며느리에게 못 먹을 걸 준 것도 아닌데, 내가 너무 오버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밥 위에 올려 두었던 두릅을 다시 들어 초고추장을 듬뿍 찍어 입에 넣었다.
두릅은 그동안 먹어본 봄나물과는 달랐다. 식감은 아스파라거스보다 더 씹는 맛이 있으면서도 부드러웠다. 두 번째는 초고추장 없이 먹어보았다. 을씨년스럽게 생겼는데, 속은 꽤 부드러웠다. 무뚝뚝하지만 더없이 다정한 츤데레 같았다.
이후 내가 몇 번이나 두릅을 맛있게 먹는 걸 보시더니, 아버님께서 말없이 두릅 접시를 내 쪽으로 슬쩍 밀어주셨다. 그제야 두 분도 식사를 시작하셨다. 밥상 앞에서 임신한 며느리의 눈에 눈물이 고이자 아버님께서는 약간 놀리신 것 같았지만 이내 "워매 저 사람이 억지로 먹여가지고 우리 새애기가 다우네잉 우짜쓰까" 하며 어머님과 나를 놀리셨다.
그제서야 어머님께서는 두릅나무에서 두릅을 캐고 다듬느라, 여러 번 손에 가시가 박히셨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며느리와 아가 줄 생각에 며칠을 나가서 캐오셨다고.
4월이 되면 인도네시아에서는 볼 수 없는 두릅 생각이 난다. 언제부턴가 더 이상 두릅을 직접 캐러 나가지 못하신다고 들었다. 이번 봄에는 내가 먼저 "어머님 두릅 주문해 드릴까요?" 하고 전화를 드려야겠다. 나물을 좋아하게 된 건 순전히 친정 어머니 덕분인데, 봄이 되면 갓 가족이 되었던 시부모님이 먼저 떠오른다. 알싸한 두릅 효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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