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식물학자가 지은 꽃이름,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이의진 2026. 4. 8.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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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란 그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 요즘 지천에 핀 봄까치꽃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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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진 기자]

지난 5일. 주말 꽃 나들이를 위해 아이와 김해에 갔을 때였다. 아이는 바닥에 핀 꽃들의 이름을 종종 묻곤 하는데 그날은 내가 먼저 아이에게 이 꽃 이름 뭔지 알아? 하니 "몰라!"라고 대답하며 초롱초롱 눈을 반짝였다.

"듣고 놀라지 마. 이 꽃 이름이 큰개불알꽃이라고 한대!"

내가 말하자 아이는 잠시 멍 때리는 표정으로 작은 입술을 조그맣게 움직여 '큰. 개. 불. 알. 꽃.'을 조용히 읊조리곤 다시 큰 목소리로 "하하하하하하하 큰개불알꽃!!! 이름이 그게 뭐야. 하하하하하하하" 크게 웃기 시작했다.

그 개가 그 개(요즘 많이 쓰는 개 좋아의 개의 뜻을 담은)는 아닐 테지만, '개'와 '불알'이 합쳐진 비속어로 점철된 이 자극적인 이름은 아이의 뇌리에 박히기 충분했다. 이 이름에 얽힌 안타까움을 설명하려 꽃 이름을 물어봤던 것이었는데, 한국 명칭을 먼저 알려줄 걸 그랬다.

아이가 뱉는 너무 큰 웃음에 나는 그만 입을 닫아버렸다. 지금 아무리 설명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겠다 싶었다.
▲ 봄을 알리는 파란 색 꽃을 가진 봄까치 / 봄까치꽃이 지닌 파란 빛은 봄의 싱그러움을 한층 더 보탠다.
ⓒ 이의진
도시의 작은 틈엔 잘 피지 않지만, 들판에 군락을 이루고 파란빛을 가득 머금고 피어 있는 이 녀석들을 찍을 때면 내 몸을 한껏 낮추고 카메라를 땅에 닿게 하다시피 해야 했다. 파란 잎이 네 장으로 이루어진 꽃인가 싶지만, 실은 네 장의 잎이 모두 붙은 통으로 된 꽃이다.

이븐하게 구운 요리에 샤프란 두 가닥으로 장식을 해둔 것 같은 꽃 술도 매력적인 이 꽃의 열매를 본 일본 식물학자인 마키노 토미타로우는 개의 불알을 닮았다 해서 일본어로 '오오이누노 후구리(大犬の陰嚢)'라는 이름을 붙였다. 직역하면 개의 음낭. 얹힌 것처럼 마음이 답답해졌다.

그저 식물을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라고 하기엔, 얼마나 이 나라를 얕잡아 보았으면 들풀에 이런 이름을 붙였을까 싶었다. 악의적인 별명을 붙이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름이란 결국, 그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니까.

더 답답하고 슬펐던 건 해방 이후, 일반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우리는 분명 이 꽃의 이름을 한국 정서에 맞게 고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이름 있는 한국의 식물학자들을 포함하여, 표준국어대사전마저 별다른 여과 없이 일본어 명칭이 직역되어 '큰개불알꽃'이라는 이름으로 남은 것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 봄까치꽃 넓은 들판에서 자주 볼 수 있다.
ⓒ 이의진
지천에 피는 이 꽃을 바라보며 이상화 시인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중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광복 이후 들판은 되찾았지만, 아직도 얼마나 많은 들풀들이 일제강점기 시절 지어졌던 일본 명칭을 그대로 직역해 둔 이름을 가지고 있을지 감도 오지 않았다.

우리가 미처 관심 두지 않았던 들풀의 이름까지도 일본식 명칭으로 바꾸었던 그들의 치밀함과 해방이 되었음에도 많은 이들이 일본어 명칭으로 된 꽃 이름을 불리고 있다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있다는 것에 설명하기 어려운 씁쓸함과 동시에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최근 식물학계와 야생화 애호가들 사이에서 우리 들꽃에 어울리는 이름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푸른 빛이 청초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이 어여쁜 꽃에 '큰개불알꽃'이 아닌 '봄'과 '까치'가 지닌 상징처럼 봄 소식을 전하는 전령사라는 뜻을 가진 '봄까치꽃'이란 새로운 이름이 지어졌다.

요즘은 봄까치꽃이 핀 들판이 마치 비단을 깔아 놓은 듯하다 하여 '큰 지금'이라고도 불린다. 여기서 지금(地錦)은 '땅비단'이라는 뜻이다. 봄까치꽃이 군락을 이루어 꽃을 피우면 푸른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것이라 나 혼자 그리 생각해 보았다.

이름 하나를 바로 잡는 일이 그리 큰 일은 아니지만, 역사를 잃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했다.우리 땅에서 자라는 것들만큼은, 우리 정서에 어울리는 이름으로 불러주려는 노력이 왜 필요한지. 오늘 밤, 아이에게 이 꽃을 '봄까치꽃'으로 불러야 하는 이유를 천천히 말해주려 한다. 별 것 아니게 보이는 이러한 일들이 모여 역사를 되짚어 보고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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