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신문> 창간일에 '고대신문' 한자 제호를 생각하다

김슬옹 2026. 4. 8.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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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항일 정신 이은 '민족 고대'라 더 아쉬운 한자 표기

[김슬옹 기자]

▲ 고대신문 누리집 첫 화면 갈무리 
ⓒ 김슬옹
고려대학교는 학교 소개에서 스스로를 '민족주의의 교육적 실현과 항일 민족 투쟁의 산실'이라 규정한다. 그런데 그 '민족고대'의 공식 학보사 간판은 '高大新聞' 한자다. 민족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대학의 공식 학보가 한자를 고수하는 점은 재검토가 필요하다. 마침 4월 7일은 130년 전인 1896년 독립신문이 한글 제호를 처음 내건 날이라 이런 생각이 더 절실해진다.

얼마 전 서울대 신문 제호가 한자임을 비판한 기사를 내보냈더니 지나친 한글사랑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다. 이건 한글 사랑이라기보다 기본 상식일 뿐이다. 고대 교수님, 기자님들과 학생들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그 어떤 문명 국가가 대중적 신문에서 제나라 공용 문자를 쓰지 않는단 말인가?

[관련기사 : '대학신문' 한자 제호, 서울대 구성원은 문제의식 없나]

항일 정신을 이어가는 학교인데

고려대학교의 전신 보성전문학교의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한자 제호가 얼마나 역사를 거스르는 것인지 금세 알아차릴 것이다.

1905년, 대한제국의 국운이 기울어 가던 그해에 이용익은 '교육구국'의 기치를 들고 보성전문학교를 세웠다. 한국인의 손으로 세운 최초의 근대적 사립 고등교육기관이었다. 을사늑약에 항거하고,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민족의 인재를 길러내겠다는 일념으로 버틴 학교였다. 1919년 3·1운동 때 독립선언문을 인쇄한 곳이 어디였던가? 바로 보성전문학교 부설 인쇄소인 보성사였다.

그 보성전문학교가 1946년 종합대학으로 승격하면서 '고려대학교'라는 이름을 얻었다. '고려(高麗)'라는 이름에는 고구려의 기개와 한민족의 영광을 계승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1947년 11월 3일, 광주학생항일운동 기념일에 맞추어 학생들의 손으로 고대신문을 창간했다. 항일의 날에 태어난 신문이다. 이런 뜻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항일의 상징이었던 한글, 대한민국 공용 문자로 제호를 삼는 것이 마땅하다.

고려대학교는 '민족고대'라는 구호를 사용한다. 민족이란 같은 역사, 같은 문화, 같은 언어를 공유하는 공동체를 말한다. 그리고 한국 민족을 한국 민족이게 하는 가장 핵심적인 문화 자산이 바로 한글이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반포한 것은, 중국의 문자에 기대지 않고 우리 백성이 스스로 읽고 쓸 수 있는 우리 글자를 갖기 위함이었다. 한글은 곧 민족의 자주 정신이며, 한글을 쓰는 것은 민족 정체성의 가장 기본적인 실천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어학회 학자들이 목숨을 걸고 한글을 지키려 했던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한글이 살아야 민족이 산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민족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계승한다는 고려대학교가, 정작 자기 대학 공식 신문의 간판에서 한글 대신 한자를 내세우고 있다. '민족고대'의 '민족'이 한낱 구호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면,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4·18의 정신은 어디에 있는가

고려대학교 하면 떠오르는 것이 4·18 의거다. 1960년 4월 18일, 고려대 학생들은 독재에 맞서 거리로 나섰고, 이것이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저항 정신, 야성과 기개, 고대인들이 그토록 자부심을 갖는 교풍이다. 그렇다면 왜, 그 저항 정신이 학보사 간판 앞에서는 잠을 자는가?

당연히 한자는 오랜 우리 역사화 문화를 감당해 온 전통 문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글 반포(1446) 후 500년이 넘도록 한자는 지식 대중화와 실용화를 가로막아온 부정적 역사도 분명하다. 더욱이 21세기 대한민국의 공용 문자는 한글이다. '민족고대'를 자임하는 대학의 공식 매체 간판이라면, 마땅히 한글로 써야 한다.

'高大新聞'이 아니라 '고대신문'이어야 한다. 그것이 1905년 보성전문학교 설립 정신에 부합하는 것이고, 1919년 보성사에서 독립선언문을 인쇄한 그 민족혼에 부합하는 것이고, 1947년 광주학생항일운동 기념일에 창간한 그 시대 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다.

항일의 정신으로 태어난 신문이 79년째 한자 간판을 달고 있다. 누군가는 "전통"이라 하고, 누군가는 "서체의 아름다움"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민족고대'의 전통은 한자 붓글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전통을 바로잡는 기개에 있다. 4월 7일은 최초 한글 전용 대중지 <독립신문> 창간일이기도 해서 특별히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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