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첨단 건물의 싱가포르 대법원에 가보니
[여경수 기자]
3월 16일 오후, 싱가포르 대법원을 찾았다. 원래 영상 자료로 싱가포르 대법원의 독특한 외관은 알고 있었으나, 실제 안으로 들어서니 역시나 최첨단 건물이었다. 또한 입구 검색대 직원들도 친절했다. 건물 내부는 중앙을 비워두어 쾌적했다. 입구 정면을 바라보고 도서관이 있고, 지하 1층에는 법원전시관이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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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싱가포르 대법원 |
| ⓒ 여경수 |
1991년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되었다. 대통령 임기는 6년이며 후보 자격 요건도 엄격하다. 장관이나 대법원장 같은 고위 공직, 혹은 일정 규모 이상 기업의 최고경영자로 3년 이상 재직한 경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직선제 도입 이후 경쟁적 선거가 치러진 것은 1993년, 2011년, 2023년 세 차례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단독 후보 등록으로 귀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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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싱가포르 의회 |
| ⓒ 여경수 |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고위직 관료가 정치인으로 성공한 사례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싱가포르와 달리, 오히려 고위직 관료 출신들이 국가의 위기 상황에서 혼란을 가중한 사례들이 있다. 국가적인 위기상황에서 이를 대처한 최규하와 한덕수가 대표적이다. 평생을 관료로 살아온 한덕수는 내란의 책임을 지고 형사처벌을 받고 있다. 최규하는 1979년 군사정변을 제대로 진압하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참고로 최규하는 싱가포르와 관련이 있다. 그가 말레이시아 대사직을 수행하고 외무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시절, 우리나라와 싱가포르의 외교 수립을 지원했다. 우리나라와 싱가포르는 1975년 공식적인 외교관계가 수립되었다. 상당히 늦은 편이다.
당시 싱가포르는 우리나라와 북한 사이에서 균형적인 외교정책을 펼쳤으며, 미국과 중국의 화해 분위기라는 국제질서 속에서 우리나라와 수교를 맺었다. 싱가포르는 지금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실리외교를 펼치고 있으며, 이러한 외교적 실리주의가 2018년 북미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배경이 되었다.
싱가포르 국회 앞에서 더 생각해볼 것이 있었다. 싱가포르 의회는 일정한 의석의 경우에는 집단대표선거구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1988년 헌법 개정으로 도입된 이 제도는 한 선거구에서 4~5명을 묶어 정당별로 투표하고, 최다 득표 정당이 해당 선거구 의석 전체를 독식하는 방식이다.
소수 인종 후보를 반드시 포함하도록 설계되어 다인종 사회의 대표성을 보장한다는 명분을 지닌다. 그러나 집단 단위 출마 구조는 후보 인력과 조직력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집권당에 구조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며, 소규모 야당이 복수의 후보를 구성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비판이 있다.
싱가포르 헌법은 헌법의 최고규범성을 명시하고 있고, 대법원은 위헌법률심사권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사례는 지금까지 단 한 건도 없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서 사법부는 일관되게 자제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건물은 권력분립을 상징하지만, 그 안에서 작동하는 사법부의 성격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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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싱가포르 대법원 전시관에서 싱가포르 권력 분립을 설명하는 장면 |
| ⓒ 여경수 |
나는 동남아시아 헌법 연구를 하면서 싱가포르 국립방송사인 CNA 방송을 인터넷으로 주로 청취했다. CNA가 보도하는 동남아시아 뉴스나 다큐멘터리는 수준이 높았다. 다만 싱가포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방송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이것이 단순한 관행이 아니라는 점은 2019년 제정된 온라인 허위정보 및 조작 방지법을 보면 분명해진다.
이 법은 정부 장관이 허위 또는 공익에 반한다고 판단하는 온라인 콘텐츠에 정정명령이나 접속 제한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2021년에는 외국세력개입대응법까지 제정되어 디지털 공간의 검열이 제도적으로 더욱 공고해졌다. 주요 언론사가 정부와 연계된 기업의 지배 아래 있어 언론을 통한 정치적 비판이 구조적으로 제한되고 있다.
학문의 영역도 마찬가지다. 싱가포르국립대학교의 수준은 세계적이다. 특히 아시아법학연구소에서는 수준 높은 교수진과 학술행사, 학술서들이 출간된다. 다만 싱가포르의 문제점을 냉철히 지적하는 학술행사가 개최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싱가포르에서 경제적 번영만큼이나 정치적 자유가 번영하기를 바라는 심정이었다. 싱가포르에서 법의 지배는 있었다. 그러나 법이 권력을 진정으로 제한하는 날은 아직은 오지 않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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