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조조 무덤에 두통약 쌓았다…中 ‘땅속 아이돌’ 조공, 왜

조상의 묘소를 찾아 차례를 지내는 청명절 연휴를 맞아 중국의 젊은 MZ 세대 사이에서 역사 인물을 참배하고 맞춤형 제수(祭需)를 바치는 새로운 트렌드가 떠오르고 있다.
삼국시대 군벌 조조(曹操, 155~220)의 무덤에는 조조의 지병이었던 두통 치료제인 이부프로펜을, 청두의 제갈량(諸葛亮, 181~234) 사당에는 북벌의 꿈을 누리라며 시안행 고속열차 티켓을, 요절한 한나라 장수 곽거병(霍去病, BC 140~BC 117)의 묘에는 20대가 좋아하는 감자칩을 바치는 식이다.
역사 인물의 무덤이 밀집한 허난성 뤄양시 베이망산(北邙山·북망산)에는 ‘성묘 여행가이드’라는 신종 직종이 생겼고, 아이돌에 열광하는 팬덤을 빗댄 ‘땅속 아이돌(地偶)’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청명절이던 지난 5일 네티즌 가오샤오쥐안(高小卷)은 웨이보(중국판 X)에 사진과 함께 “조조의 무덤에 두통약 이부프로펜이 쌓여있고, 제갈량 묘에는 열차 티켓이 놓여있다”라며 “누군가 조조에게 이부프로펜 복용 중엔 두강주를 마시면 안 된다고 알려줘야 합니다”라고 적었다. 청명절 연휴 사흘 동안 웨이보에서 검색 해시태그 “#조조 무덤의 이부프로펜, 제갈량의 고속철도표”는 2797만 클릭을 기록하며 맞춤형 성묘의 인기를 증명했다.

삼국지 마니아로 조조의 정치·군사·문학적 업적에 매료된 베이징 여대생 샤오팡(小風)은 지난 3월 허난성 안양의 고릉(高陵)을 처음 찾았다. 조조의 묘를 찾기에 앞서 박물관 매점을 찾아 치과의사 복장의 곰 인형을 샀다. 그는 “역사 기록에 조조는 두통을 자주 앓았다고 한다. 치아의 신경에 생긴 치수염을 심하게 앓았다는 게 요즘 추정”이라며 “병의 근원을 치료해야 한단 생각에 진통제나 치약 대신 치과 의사를 골랐다”고 중국신문사에 말했다.

고릉박물관 직원은 “청명절을 앞두고 참배하는 관광객이 무척 많다. 무덤 앞에 놓인 이부프로펜을 우리는 임의로 치우지 않고 가지런하게 정돈한다”라고 말했다.
역사 인물을 추모하는 맞춤형 선물은 최근 몇 년 사이 중국 전역에서 인기다. 시사 주간지 중국신문주간에 따르면 명나라 만력 연간의 정치인 장거정(張居正, 1525~1582)의 묘에는 치질 연고가 놓인다. 야사 기록에 그가 치질 수술 후유증으로 숨졌다는 내용이 전해져서다.

최근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제작한 저가 드라마로 유명해진 전한 시대의 명장 곽거병의 묘에는 감자칩과 매운 튀김이 놓인다. 23세에 요절한 곽거병을 요즘 20대가 즐기는 간식으로 기리는 것이다.
각종 역사 드라마 유행과 미국과 패권 경쟁 등의 영향으로 중화사상도 부활하고 있다. 위진남북조 시기 북위를 다스린 효문제의 묘에는 선비족 출신의 왕이 펼쳤던 한화(漢化) 정책을 기념한다. 한족 우월주의를 드러내는 “한화대사(漢化大使)”, “한족화 조장(漢化組組長)”이라는 상패가 놓이고, 조조의 묘에는 중국판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격인 ″Make 대위(大魏) Great Again″ 꽃다발과 구호가 놓여있다.
묘지 순례객도 등장했다. 홍콩 명보는 7일 여러 지역을 돌며 역사 인물에게 성묘하는 젊은이를 의미하는 ‘역사 동호인(史同)’의 유행을 전면 보도했다. 동호인 위안원이(元文懿)는 “연예인 아이돌을 따르는 팬덤과 비슷하다”며 “우리가 선망하는 대상이 ‘땅속 아이돌’일 뿐”이라고 말했다.
뤄양시 베이망산에 밀집한 고분을 찾는 MZ가 몰리면서 묘지 전문 가이드도 인기다. 현지 가이드 왕이(王勉)씨는 “뤄양에는 5대 ‘땅속 아이돌’이 있다”며 “북위 효문제, 남당의 마지막 황제 이욱, 후한 광무제 유수, 시성 두보, 조조의 3남 조비”를 꼽았다. 그는 “역사 교과서의 허무하고 모호한 내용과 달리, 동호인들이 함께 직접 눈으로 역사 인물의 무덤을 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고 말했다.
중국 전문가들은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이 힘든 현실을 풍자하기 위해 역사를 재창조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여기에 소셜미디어(SNS)와 역사 드라마의 유행도 영향을 끼쳤다. 양쿤(楊昆) 난징재경대 부교수는 “‘장안 삼만리’, ‘태평년’ 등 역사드라마의 유행, 문학작품과 온라인 게임이 함께 인기를 얻으며 고적 답사에 관심이 크게 늘었다”며 “역사를 정서적으로 소비하는 젊은 세대가 현실의 어려움을 역사 속 멘토로부터 얻는 지혜와 위안으로 해소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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