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이 돈 내고 병가 쓰래요” 아파도 출근하는 유치원 교사들

경기도의 한 사립유치원에서 근무하는 A 교사는 올해 초 독감에 걸렸다. 하지만 “직접 대체인력을 구하고 비용도 부담하라”는 원장의 지시 때문에 마스크를 쓴 채 출근해 평소대로 근무했다. 그는 “대체교사 없이 병가를 내면 다음날 동료 선생님들에게 미안하다는 의미로 음료를 돌리는 문화까지 있어 아파도 참고 출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한 사립 유치원 교사가 독감이 악화돼 숨진 뒤 유치원 교사 사이에선 유사한 경험이 공유되면서 유명무실한 대체인력 운영 체계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경기 부천 유치원 교사 B씨는 지난 1월 27일 B형 독감 판정을 받고도 사흘간 근무했고, 증상이 악화해 같은달 30일 오후에야 조퇴했다. 이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2월 중순 숨졌다.
유치원 교사들 사이에선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지난 6일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당국에 법정 감염병 발생시 교원의 병가 사용을 의무화하는 시행령 개정과 체계적인 대체인력 지원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실제로 유치원 교사의 갑작스런 병가 등 단기 부재를 메울 대체인력 체계는 지역별 격차가 큰 편이다. 8일 교육계에 따르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중 병가로 인한 대체인력 비용 지원이 가능한 지역은 서울·부산·울산·충남·제주 등 5곳에 그쳤다. 사흘 미만 단기 병가에 대한 비용 지원이 없는 시·도가 11곳에 이른다. 이 중 인천·광주·대전·경북·경남 등 5개 지역은 유치원 교사 부재 때 별다른 지원이 없다.

대체인력 비용을 지원받더라도 절차와 요건이 까다로워 이를 꺼리는 유치원이 많다. 사립유치원 원장 C씨는 “교사가 갑자기 못 나오면 원장이 평소 친분 있던 교사들에게 직접 전화를 돌려 부탁해야 한다”며 “비용은 매번 사유별 신청서와 이를 입증할 자료 등을 제출해 사후 보전받는 방식이라 번거롭다”고 말했다.
유치원과 대조적으로 어린이집은 각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육아종합지원센터를 통해 상시 대체인력 풀(pool)이 운영된다. 어린이집은 교사 부재 시 파견 방식으로 대체 교사를 받을 수 있다. 또 일부 지역에선 어린이집 규모에 따라 1~4명의 보조교사를 두고 대체교사가 구해지지 않았을 때 이들이 일부 업무를 대신하도록 했다. 교육부도 시도교육청을 통해 관련 비용을 일부 지원한다.
특히 사립유치원은 국공립과 달리 1년 단위의 교사 채용이 빈번한데, 이런 관행으로 인해 교사들이 원장에게 병가 등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게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의 한 유치원에 근무하는 D 교사는 “특히 소규모 사립유치원들은 인건비 문제로 교사 호봉이 올라가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며 “이 때문에 원아 수가 매년 달라진다는 핑계를 들어 1년 단위로 교사를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듬해 채용에서 불이익을 우려해 문제가 있어도 이를 제대로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전했다.

유치원알리미에 따르면 교사 4만430명 중 근속연수 1년 미만인 교사가 29%(1만1684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유치원 교사들은 “열악한 근로조건에 고강도 업무가 이어지면서 장기간 근무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유해미 육아정책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교원의 병가 등 권리 보장 차원에서 상시 대체인력 운용 체계 등을 마련하는 등 제도적 보완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지난 1일 국회에서 “(교사가)병가를 낸 동안 수업 부담을 지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전국 시도교육청과 협의해 실행 가능한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말했다.
이보람 기자 lee.boram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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