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아무것도 한 게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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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삼월 바람이 창으로 들어와 집안을 살랑살랑 휘돌았다.
나는 거실에 대자로 드러누워 휴일의 나른함을 만끽하던 중이었다.
한껏 게으름을 피우며 안락함을 누려놓고도, 막상 한 일 없이 저무는 하루를 보자니 괜한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매사에 성실해야 한다는 강박이 마음 한구석에 죄책감을 드리우려던 때, 입술에서 바람 빠진 웃음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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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삼월 바람이 창으로 들어와 집안을 살랑살랑 휘돌았다. 나는 거실에 대자로 드러누워 휴일의 나른함을 만끽하던 중이었다. 장난기 가득한 바람이 볼을 간지럽히더니만, 눈꺼풀 위에 슬그머니 졸음을 얹어둔 모양인지 까무룩 잠이 들어버렸다. 원래는 이불 빨래를 하고 꽃구경 겸 도서관에 들렀다가 귀갓길에 시장에서 장도 볼 참이었다. 하지만 눈을 뜨니 벌써 오후 2시. 부지런히 움직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이미 하루의 리듬이 깨진 기분이었다. 에잇, 될 대로 돼라. 마음을 비우고 영화 두 편을 연달아 보며 노닥거리니 밖은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한껏 게으름을 피우며 안락함을 누려놓고도, 막상 한 일 없이 저무는 하루를 보자니 괜한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건성건성 흘려보낸 하루를 자책해 본 적이 있는가. 매사에 성실해야 한다는 강박이 마음 한구석에 죄책감을 드리우려던 때, 입술에서 바람 빠진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런 건 바보들이나 하는 후회라고 말한 사람이 별안간 떠올라서다.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는 오늘 아무것도 한 게 없다며 한탄하는 이들에게 말한다. “그대는 오늘 하루를 살지 않았는가? 하루를 온전히 살아냈다는 건 삶의 가장 근본적인 사건이자 무엇보다 고귀한 일이다”라고. 내가 웃은 이유는 그가 16세기의 인물이란 점 때문이었다.
500년 전 사람들이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양새는 참 비슷하다. 그럴싸한 결과물을 얻어야만 가치 있는 하루를 산 것처럼 자신을 들볶는 마음은 시대를 불문한 인간의 본성인가 보다. 생각해 보면 봄바람의 살랑거림에 못 이겨 스르륵 낮잠에 빠진 시간도 인생의 맛깔난 재미인데 말이다. 야무지게 세운 계획이 흐지부지되고 사소한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어도, 일단 하루를 살아낸 것만으로도 우리는 큰일을 해낸 셈이다. 그러니 살아있음으로 충실했던 오늘의 당신에게 인사를 건넨다. “가장 중요한 일을 해냈어요.”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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