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과리의 AI와 함께하는 인문여행] 인간은 사실 의식을 가진 AI이다

2026. 4. 8.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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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과리 문학평론가·연세대 명예교수

지난달 칼럼에서 필자는 AI 시대를 맞이하여 “AI의 관리자이자 AI 활동의 성찰자로서 인간은 자신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낸 바 있다. 한 독자가 물었다. AI가 생산의 전 과정을 혼자 처리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한다면, 어떻게 인간이 AI의 관리자가 될 수 있는가?

AI는 아직 세계 설계 능력 없어
먼 미래를 가정한다면 이 질문은 심각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과 AI의 행복한 동행은 꽤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예측은 AI에게 아직 ‘의식’이 없다는 데에 근거한다. 의식 그리고 자의식을 가진다는 것은 세계를 설계할 능력을 확보하기 위한 절대적인 조건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AI는 아직 그런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는 알파고의 개발자로서 노벨상 수상자인 허사비스(Demis Hassabis)가 AI가 아직 “통계 알고리즘”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던 것과 상응한다.

「 기술 발달은 인지 외주화 불러
계산기 나오자 연산에서 해방
창의적으로 사유할 여유 생겨
끝없는 변신이 인간의 정체성

[셔터스톡]

의식을 가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최근의 예를 가지고 생각해보자. 지난달 말에 미국의 반도체 회사인 마이크론의 주식이 폭락한 사태가 일어났다. 그 여파가 한국의 주식 시장에도 미쳤다. 원인은 구글이 개발하고 있는 ‘터보퀀트’에 있다고 알려졌다. 터보퀀트는 메모리 압축 기술이다. 6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한다.

AI 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메모리 사용이 급증했고, 따라서 메모리 반도체의 가격이 급등하였으며, 그 제작사들은 승승장구하였다. 그런데 그 메모리를 파격적으로 압축하는 기술이 등장하니까, 메모리 사용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불안이 해당 종목의 투매를 부추겼던 것이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이러한 반응은 목전의 상황에 집착한 과잉반응이다. 메모리 압축은 메모리 사용의 가능성을 확장할 뿐 위축할 리가 없다. 가령 이미 컴퓨터에는 파일 압축 기술이 등장했었다. 통상 ZIP으로 통용되는 이 기술은 하드디스크의 용량을 줄이기는커녕 점점 더 커지게 하였다. 또한 인류는 예전부터 다양한 압축 기술을 개발해왔다. 손오공의 근두운이나 홍길동의 축지법이 없이도 점진적인 기술적 진보를 통해 점점 더 빠른 탈 것들을 만들어서 대지의 간격을 좁혀왔다.

요컨대 기술의 발달은 과학의 지평을 넓히는 것 외에 다른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 지평은 인간의 활동영역을 그대로 가리킨다. 이런 확장을 설명하는 흥미로운 이론이 있다. 앤디 클라크(Andy Clark)의 ‘인지적 외주화(Cognitive Offloading)’ 이론이다. 어려운 용어 같지만 간단한 얘기다. 가령 계산기가 등장했을 때였다. 각종 산술을 계산기가 대신하자, 사람들은 그 편리성에 매료되면서도, 사람들 자신의 계산 능력이 저하될까 봐 걱정했다. 특히 아동의 정신적 발달에 대한 우려가 컸다. 하지만 왜 어른의 두뇌가 원숭이의 그것으로 환원되지는 않는가? 왜냐하면 사칙연산의 기초를 이해하고 있으면, 언제든지 실무의 산술 기능을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원리의 체득이지, 공식을 외우는 게 아니다.

계산기가 인간에게서 계산 업무를 덜어주자, 인간의 뇌는 인지적 과부하에서 해방되어, 남는 뇌의 에너지를 단순 계산이 아닌 방정식의 설계, 추상적 논리 구축, 고차원적인 수학적 사유에 쏟을 수 있게 되었다. 즉, 수학적 능력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능력이 발휘되는 차원이 한 단계 격상된 것이다. 이렇게 계산기는 인간을 단순계산원에서 수학자로 만들어 준 것이다.

터보퀀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메모리의 압축은 메모리 사용의 감소를 야기하는 게 아니라, 메모리 관리와 활용에 관한 인류의 상상력을 팽창시켜 반도체 기술을 더 큰 차원으로 이끌게 될 것이다. HBM, HBF, CXL, 뉴로모픽…. 지금 당장 정련해야 할 문제들도 여럿이지만, 여태 생각지도 못했던 어떤 아이디어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적은 메모리로 고효율의 연산이 가능해지면, 지금까지는 비용과 시간 문제로 포기해야만 했던 일들을 처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가령 신경망 AI를 통해 수다한 코일들을 제어하면서 반물질 원자로의 플라스마를 안정적으로 증폭시켜 광속의 우주 비행을 할 수 있다면?

날 때부터 사이보그
이는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외부의 도구나 환경으로까지 넓히게 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도구의 사용’은 인간이 동물과 달라지게 된 요인들 중 하나이다. 인지적 외주화라는 관점은 도구를 통한 존재의 확장을 가리킨다. 그 점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인간 너머의 존재로 변신함으로써 자신을 진화시켜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앤디 클라크 저서의 제목은 『내추럴-본 사이보그(Natural-Born Cyborgs·날 때부터 사이보그)』(2004)이다.

이런 얘기로 몸에 소름이 돋을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에 미련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을 들어보면, 이런 인간의 행동은 바깥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세계를 조율하는 능력을 인간이 가졌다는 것을 가리킨다. 세계를 인지하고 가늠하고 계획하고 변경하고 관리하고 다시 변경하는 행위를 끊임없이 되풀이함으로써, 인간과 세계의 동반 진화의 역사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필자는 이것이 ‘의식’을 가진 인간에게 내재화된 운동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에 비해, ‘통계 알고리즘’으로서의 AI는 세계에 대한 전망은 품지 못한 채로,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날렵하게 풀어내고 있을 뿐이다. 프랑스의 교육 및 학습 지원 전문 기관인 아카도미아(Acadomia) 회장인 필립 콜레옹(Philippe Coleon)은 인간의 지능을 ‘능동적 지능’이라 부르고 ‘수동적 지능’인 AI의 설계자로서의 인간의 역할이 매우 다양하게 창출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AI로 인해 가능해진 일의 규모만큼이나 그 덕분에 인간이 돌려야 할 두뇌의 회전수도 증가한다. 이제 그 회전으로부터 어떤 일들이 솟아나는지를 주목할 때이다.

정과리 문학평론가·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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