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연극의 내일을 묻거든, 그 30명을 보게하라

하남현 2026. 4. 8.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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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연극내일 프로젝트’ 연습 현장을 찾은 신구(왼쪽)와 박근형. [연합뉴스]

“6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입니다. 새싹 돋는 봄이 됐으니 이제부터 시작입니다.”(신구)

7일 오전 서울 동숭동 대학로예술극장 지하 1층 연습실. 바닥을 구르고 큰 소리로 대사를 뱉는 젊은 배우들의 혼신 어린 연기 모습을 신구(89)와 박근형(85)은 유심히 또 흐뭇하게 지켜봤다. 신구는 “나는 첫 공연 때 어떻게 해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당황했고 옆도 보이지 않았다”며 “이번에 젊은 연극인들을 보니 훨씬 나은 환경에서 시작할 수 있어 고맙다”고 말했다. 박근형은 “고생길에 들어온 걸 환영한다”며 “생활이 어려운 점은 각오해야 한다”고 진담 섞인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쟁쟁한 두 대선배 앞에서 연기를 선보인 30명은 ‘2026 연극내일 프로젝트’를 통해 선발됐다. 연극내일 프로젝트는 ‘연극내일기금’을 바탕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가 기획한 청년 연극배우 교육 프로그램이다. 이 기금은 지난해 3월 신구·박근형이 출연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특별 기부공연을 통해 마련된 수익금 전액과 공연계 인사들의 기부 등으로 마련됐다.

지난해 말 공개 모집과 오디션을 통해 1000명이 넘은 지원자 중 30명에게 프로젝트 참가 자격이 부여됐다. 24~35세 젊은 배우들은 4개월간의 교육 및 연습을 거쳐 오는 24~26일 서울 동숭동 아르코꿈밭극장 무대에 오른다. 창작 연극 3편에 10명씩 나눠서 출연한다. 도시가 외면한 청춘들의 결핍과 생존을 그린 ‘탠덤: Tandem’과 1980년대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오대양 집단 변사 사건을 소재로 한 ‘여왕의 탄생’, 고통과 상실의 세계 속 인간의 연대와 희망이 피어나는 과정을 담은 ‘피르다우스’ 등이다.

정병국 아르코 위원장은 “세 작품이 판매 시작과 동시에 매진됐다”며 “두 세대에 걸쳐 연극을 해온 선배와 후배가 어떤 끈으로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자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주목받는 젊은 연출가 강훈구·오세혁·류사라 등이 작품 연출을 비롯해 배우 교육 등에 힘을 보탰다.

꿈에 그리던 무대를 눈앞에 둔 청년 배우들에게 두 노배우는 진심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신구는 “연극은 사람의 일이고, 우리들의 이야기이며 관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를 표현하는 일”이라며 “그 표현은 반드시 정직해야 한다. 거짓말하면 다 허사가 된다”고 강조했다.

박근형은 “연극은 움직임이고, 그중에서도 사람을 표현하는 움직임”이라며 “움직임을 이제 시작했으니 뜻하는 바를 마음껏 펼치기를 바란다”고 응원했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여왕의 탄생’ 무대에 오르는 류지오는 “같은 꿈을 바라보고 가는 동료들을 만난 게 제일 기뻤다”라며 “공연 작업은 외롭고 몸이 불타는 것처럼 힘들 때도 많지만, 결국 중요한 건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신구와 박근형은 이 프로그램이 매년 이어지기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두 배우는 오는 7월 8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개막하는 연극 ‘베니스의 상인’에 출연하면서 기부 공연을 한 차례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이번 프로젝트 참가 배우 30명에겐 오디션을 통해 ‘베니스의 상인’ 출연 기회를 줄 계획이다.

정병국 위원장은 “두 배우의 뜻이 60년 뒤에도 이어지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계속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하남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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