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잘 걸었습니다

손민호 2026. 4. 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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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7일 별세했다. “올레길에서 행복해라”는 말을 남겼다. [중앙포토]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7일 별세했다. 68세.

제주도에 올레길을 내 세상에 치유와 위로의 메시지를 몸소 전파했던 주인공이 막상 제 몸에 슨 병은 몰랐나 보다. 고인이 옆구리가 아프다며 병원을 찾아간 건 채 20일이 안 된다. 이미 늑막에 물이 차 손을 쓸 수 없을 때였다. 병원에선 폐암을 선고했다.

소녀 ‘맹숙이’는 잘살았다. 어머니가 서귀포 매일시장(현재 매일올레시장)에서 ‘명숙상회’라는 꽤 큰 잡화점을 했다. 그 시절 맹숙이가 놀던 데가 자구리·외돌개 같은 서귀포 해안이다. 지금의 제주올레 6, 7코스가 고스란히 맹숙이의 추억을 안고 있다. 외돌개 가기 전 ‘폭풍의 언덕’이라고 이름 지은 갯바위는 맹숙이가 어머니에 혼났을 때 혼자 울던 자리다.

서귀포 소녀가 세상에 눈을 뜬 건 서울의 대학으로 진학하고 나서다. 고려대 교육학과 76학번인 그는 72학번 선배와 자취방을 함께 쓴다. 그 선배가 천영초(72)씨다. 서명숙은 79년 시국사건으로 구속돼 236일간 옥살이를 했다. 사건 주동자가 영초 언니였다. 그 시절의 이야기를 담은 회고록 『영초언니(2017)』는 서명숙이 쓴 책 중에서 제일 많이 팔렸다.

대학을 졸업한 뒤 서명숙은 여러 잡지를 거쳐 ‘시사저널(현재 ‘시사인’)’에 입사한다. 여기에서 그는 국내 시사지 최초로 여성 정치부장과 편집장을 역임한다. 정치부 기자 서명숙은 『흡연 여성 잔혹사(2004)』라는 책을 냈을 정도로 이름난 골초였다.

2006년 9월, 쉰 살 생일을 한 달여 앞둔 날. 서명숙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러 스페인으로 날아간다. 걷기를 좋아해서 걷기 여행을 떠난 건 아니었다. 서명숙에게도 ‘번아웃’이 왔기 때문이다. 800㎞가 넘는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가 거의 끝날 무렵 그는 결심한다. 고향 제주도에 내려가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아름다운 길을 만들겠다고.

2007년 9월 마침내 제주올레 1코스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5년 뒤인 2012년 11월 제주도를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도는 ‘제주도 둘레길’이 완성됐다. 현재 제주올레는 27개 코스 437㎞다.

길 이름 ‘올레’는 골목길을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다. 지금은 이 제주 사투리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올레가 표준어처럼 쓰인다는 건, 제주올레가 그만큼 성공했다는 뜻이다. 제주올레 이후 전국에 걷기여행 열풍이 불었고, 제주도 여행 판도가 바뀌었다.

2025년 현재 제주올레를 한 번이라도 걸은 사람은 1300만명이 넘고, 해마다 4500명이 넘는 완주자가 탄생한다. 제주올레로 인한 생산 유발 효과는 매년 1조2000억원에 달한다(제주연구원).

제주올레의 성과보다 중요한 건 제주올레가 일깨워준 사람의 속도다. 자동차에 빼앗겼던 길을 올레가 되찾아줬다. 고인은 누누이 ‘놀멍 쉬멍 걸으멍’을 강조했었다. “제발 천천히 걸으라”고 했던 당신이 마지막 가는 길은 왜 이리 서둘렀는지. 별안간 병세가 악화한 뒤 그는 안은주 제주올레 대표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서울에서도 암은 내 몸에 있었던 것 같아. 20년을 건강하게 산 건 열심히 걸었기 때문이고. 올레길에서 행복해라.”

빈소는 서귀포의료원 장례식장, 발인은 10일 오전 8시 30분. 10일 오전 9시 서북공원 잔디광장에서 영결식이 엄수된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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