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탈·분노·눈물… K증시 ‘유증 잔혹사’ [스페셜리포트]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최창원 매경이코노미 기자(choi.changwon@mk.co.kr), 이채원 매경이코노미 기자(lee.chaeweon@mk.co.kr) 2026. 4. 7.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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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석유화학 사업을 벌이는 한화그룹 핵심 계열사 한화솔루션이 주주총회 이틀 만에 기습적인 유상증자를 단행하자 이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이 확산한다. 개별 기업 차원의 증자 정당성(Legitimacy)을 둘러싼 논란 외에도 시장에서는 여러 우려가 불거진다. 증자는 기업이 증시에 상장하는 주된 목적 가운데 하나지만, 최근 잇단 논란은 증자 그 자체에 대한 부정적 낙인 효과를 증폭시켰다는 진단이다.

공개 시장에서 적기에 자본을 조달하고 이를 성장 투자로 연결하는 건 자본 시장 기본 작동 원리지만, 반복되는 ‘기습 증자’로 투자자 사이에서는 증자 경계 심리가 뚜렷하다. 이는 개별 기업 문제를 넘어 자본 조달 기능에 대한 신뢰 자체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우려를 낳는다. 전문가들은 증자에 대한 절차적 정당성 확보는 물론, 소수주주 보호 장치 마련과 이사회 독립성·전문성 제고에도 실질적인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CGV부터 한화솔루션까지

유증 잔혹사 왜 반복되나

최근 우리 증시는 또다시 기습적인 유상증자로 홍역을 앓았다.

한화솔루션은 지난 3월 26일 신주 7200만주를 발행해 2조3760억원을 조달하겠다고 공시했다. 기존 발행주식 대비 신주 비율은 약 42%에 달했다. 조달 자금 가운데 약 1조5000억원은 채무 상환, 약 9000억원은 차세대 태양광 기술과 생산능력 확충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재무 구조 개선 필요성은 이해하지만, 규모와 방식, 시점에 대해 일절 공감할 수 없다”는 반발이 쏟아졌다. 증권가에서는 ‘주식을 팔라’는 매도 보고서까지 나왔다.

최근 수년간 시장에서는 대규모 증자가 크고 작은 논란에 휘말렸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지난해 3월 3조6000억원 규모 증자 계획을 발표했다가 금융당국 정정 요구를 받은 뒤 2조3000억원으로 줄였다. 이 회사는 방산·우주 분야 투자 확대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주주들은 급격한 희석 가능성은 물론, 사업재편과 연계성을 문제 삼았다. 앞서 CJ CGV는 2023년 1조원 규모 자본 확충에 나서며 대규모 주식 발행과 현물출자 구조를 동원해 논란을 빚었다.

문제는 유상증자에 대한 부정적 낙인 효과 심화다.

유증 자체는 비정상적 수단이 아니다. 주식 수가 늘면 주당순이익(EPS)이 줄어 기존 주주에겐 악재로 여겨지지만, 상장 기업이라면 필요할 때 자본 시장에서 돈을 조달해 성장 투자와 재무 안정에 쓸 수 있다. 신주 발행을 원칙적으로 이사회 결의 사항으로 둔 것도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서 기업이 필요 자금을 제때 조달할 수 있게 제반 환경을 마련하자는 취지다. 상장사 일반공모증자가 정관이 정한 범위 안에서 이사회 결의로 가능하도록 규정된 이유다.

특히, 최근처럼 금리가 높고 신용 시장이 위축돼 있을 땐 회사채나 차입보다 자본 확충이 손쉬운 선택지다. 부채를 늘리지 않아 부채비율 관리에 유리하고 신용등급 방어에도 도움이 된다. 대규모 설비투자나 인수합병, 재무 구조 개선이 필요한 기업일수록 증자 유인은 더 강하다. 한화솔루션이나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채무 상환과 투자 재원을 동시에 확보하려 했던 것도 기업 논리만 놓고 보면 꼬투리 잡긴 어렵다.

문제는 증자 결정이 시장과 주주에게 전달되고 집행되는 방식의 정당성이다. 국내 시장에서 반복된 증자 관련 논란의 핵심도 이 지점이다. ▲장 마감 뒤 공시 ▲대규모 할인 발행 ▲짧은 청약 일정 ▲복잡한 자금 조달 구조가 겹친 탓에 기존 주주는 충분한 대응 시간을 갖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화솔루션 유증 충격이 컸던 것도 규모 못지않게, 주총에서 발행 가능 주식 수를 늘린 직후 대규모 유증이 이어졌기 때문으로 시장은 바라본다. 정기주총 안건은 통상 수십 쪽에 이르는 소집공고와 정관 변경 조항 속에 묻혀 지나가기 쉽다. 일반 주주 입장에서는 배당이나 이사 선임처럼 눈에 띄는 안건이 아닌 이상 세부 문구까지 꼼꼼히 들여다보기 어렵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주총에서 발행예정주식 총수 확대를 위한 정관 개정이 이뤄져도 이를 실질적인 경고 신호로 받아들이는 투자자는 많지 않다”라며 “애널리스트 역시 실적, 수주, 투자 계획 등을 중심으로 기업을 추적하는 경우가 많아 정관상 발행 한도 확대를 곧바로 잠재적 유상증자 신호로 연결해 해석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짚었다.

이런 대규모 ‘유증 잔혹사’가 유독 한국에서 자주 분쟁으로 비화하는 배경으로 몇 가지 요인이 지목된다.

첫째, 지배주주 중심 의사결정 구조다. 대규모 유상증자는 법적으로 이사회 결의 사항이므로, 경영진과 대주주 판단이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 과정에서 기존 주주 이해관계가 충분히 고려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둘째, 이사회와 독립이사의 견제 기능 한계다. 형식적으로 독립성을 갖춘 이사회가 존재하지만, 경영진 결정을 실질적으로 감시, 견제하는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셋째, 소수주주 보호 장치 취약성이다. 대규모 희석이 발생해도 이를 사전에 통제하거나 사후 구제할 수 있는 수단이 제한적이다 보니, 손실이 고스란히 기존 주주에게 전가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는 평가다. 이외 ▲정보 비대칭과 공시 체계 한계 ▲가격·희석에 대한 규율 부족 ▲사후 책임·성과 검증 부재도 문제로 꼽힌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개정 상법에 따라 이사들은 중요 의사결정을 할 때 단순히 회사의 자금 조달 필요성 같은 회사의 이익만을 고려할 게 아니라, 전체 주주 관점에서 그 영향을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증 잔혹사 ‘공통 문법’은

기습적으로 대규모 유증에 나서는 기업은 몇 가지 공통된 패턴이 관찰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기업의 자본 조달 방식은 크게 세 가지다. ① 내부 유보금 활용 ② 차입 조달 ③ 유상증자다. 이 가운데 주주배정 유증은 사실상 마지막 카드로 평가된다. 주식 수가 늘어나 기존 주주 지분 희석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현금 여력이나 안정적인 차입 여건이 남아 있다면 후순위로 밀리는 게 일반적이다. 2023년(신주 상장일 기준) 이후 주요 주주배정 유증 사례를 살펴보면 ‘최후의 수단’을 꺼낼 만큼 재무 여력이 악화된 기업이 상당수였다

한화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한화솔루션이 주주총회 이튿날인 지난 3월 26일 기습적인 유상증자를 발표하며 논란이 불거졌다. 조달 자금은 약 2조4000억원으로, 이 중 1조5000억원가량을 채무 상환에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공시 이후 한화솔루션 주가는 장중 한때 20% 가까이 급락했다. 사진은 한화그룹 본사 사옥 전경. (매경DB)
패턴(1) 현금흐름 ‘뚝뚝’

지분 희석 반복

가장 먼저 흔들린 건 실적과 현금흐름이었다. 유증으로 확보할 2조4000억원 중 채무 상환에 1조4000억원을 쓰겠다고 밝힌 한화솔루션을 살펴보면 이렇다. 한화솔루션은 2024년과 2025년 모두 연간 영업손실을 냈다. 2025년부터는 영업활동 현금흐름도 마이너스(-)로 꺾였다. 쉽게 말해 영업을 할수록 현금이 회사에서 빠져나가는 상태라는 의미다. 현금이 소진되기 시작한 한화솔루션은 운영자금 확보 등을 위해 차입을 늘렸다. 2025년 기준 순차입금은 약 12조6000억원, 부채비율은 196% 수준이다. 이자비용만 연간 5394억원이다.

악화된 재무건전성은 신용등급 하방 압력으로 작용했다. 한화솔루션은 현재 ‘AA-’등급에 ‘부정적’ 전망이 붙어 있다. 자칫하면 A등급으로 떨어질 수 있다. 신용등급은 자금 조달 조건에 직결되는 요소다. 한화솔루션 입장에선 어떻게든 강등을 막아야 했다.

정원영 한화솔루션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유증 직후 콘퍼런스콜에서 “신용등급 하향을 방어하고 재무 구조 개선과 중장기 성장을 위한 투자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유증이 최적의 자금 조달 방안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이동욱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자금의 상당 부분이 선제적인 재무 구조 안정화에 할애됐다”며 “케미칼과 태양광 업황 회복이 지연되는 가운데 누적된 차입 부담을 해소하기 위한 결정으로 풀이된다”고 평가했다.

앞서 채무 상환용 자금 확보를 위해 유증을 진행한 한온시스템과 CJ CGV도 마찬가지였다. 2025년 9월 9000억원 규모 유증 계획을 발표한 한온시스템은 8834억원이 채무 상환용이었다. 한온시스템도 한화솔루션과 대부분 지표가 유사하다. 2025년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플러스(+)를 유지했지만, 전년 대비 80.2% 줄었다. 차입에 따른 이자비용도 2388억원에 달한다. 연간 영업이익(2703억원)에 맞먹는 규모다. 2023년 유증을 진행한 CJ CGV 역시 영업이익에 맞먹는 이자비용에 휘둘렸다.

증권가에선 채무 상환을 위한 유증에 회의적 시선이 많다. 유증은 시간을 벌어주는 수단일 뿐, 본업 수익성이 회복되지 않으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 한화솔루션 역시 태양광과 첨단소재 부문 수익성 회복이 뒤따르지 않으면 이번 증자는 임시 방편에 불가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패턴(2) 화려한 증자 명분

주주 홀대 우려 팽배

채무 상환형 유증과 달리, 최근에는 아직 일정 수준 현금 창출력과 차입 여력을 갖춘 기업도 선제적으로 주주배정 유증을 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규모 설비투자(CAPEX)와 타법인 지분 취득, 해외 생산 거점 확보 등이 증자 명분이다. 다만, 시장에선 자금 수요 필요성과 별개로, 기존 주주 희석이 가장 큰 방식부터 밀어붙인 것을 곱지 않게 보는 시선이 많다.

대표적으로 2025년 1조6500억원 규모 유증을 결정한 삼성SDI는 투자 명분이 분명했다. 미국 합작법인 증설과 유럽 생산라인 확대, 전고체 배터리 양산 준비까지 모두 미래 경쟁력과 직결되는 투자다. 삼성SDI는 유증으로 조달한 자금 가운데 1조3008억원을 타법인 취득 자금으로 쓴다고 밝혔다. 논란거리는 당시 삼성SDI의 자금 조달 대안이 없었느냐였다. 2024년 말 기준 부채비율은 88%로 상당히 양호했다. 충분히 차입 등으로 조달이 가능했던 상황으로 평가된다. 그럼에도 약 17% 희석(자사주 제외)을 감수하는 주주배정 방식을 택한 것이다.

2023년 1조원 이상 유증을 단행한 SK이노베이션도 마찬가지다. 연구개발(R&D) 인프라 구축과 신사업 개발 등 자금 수요 자체는 분명했다. 유증 자금 가운데 4195억원은 시설자금으로, 4092억원은 타법인 취득에 배정됐다. SK이노베이션 역시 당장 유동성 위기에 몰린 상황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SK이노베이션은 약 1조1400억원을 한 번에 조달하며 기존 주주 희석을 밀어붙였다. 당시 키움증권은 보고서를 통해 R&D 강화를 위한 캠퍼스 건립에 유증을 활용한 점을 아쉬운 대목으로 꼽았다. 임대나 기존 건물 활용 등 다른 방안도 충분히 검토할 수 있었다는 취지다. 타법인 취득 자금에 대해서도 비슷한 시선이 이어졌다. 암모니아와 수소, 폐기물 기반 원료 생산 등 신규 사업은 모두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장기 프로젝트다. 단기간 수익성 개선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자체 이익 창출이 아닌 주주 지분 희석으로 재원을 마련한 점이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나왔다.

2025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논란을 자초했다. 해외 방산 생산 거점 확보와 합작법인(JV) 지분 투자, 해외 조선 업체 지분 투자 등 성장 명분은 화려했다. 그럼에도 시장이 쉽게 납득하지 못했던 이유는 당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실적 때문이었다. 2024년 연결 기준 매출은 11조원을 넘었고 영업이익은 1조7000억원대로 급증했다. 회사채 신용등급도 AA- 수준으로 차입 여력도 충분했다. 결국 투자자들의 핵심 질문은 하나였다. 당장 돈이 없는 회사가 아닌데 왜 가장 희석이 큰 주주배정 유증부터 택했느냐는 점이다.

더군다나 유증 발표 직전 한화오션 지분 1조3000억원어치를 그룹 내부에서 매입한 점도 논란을 키웠다. 시장 일각에선 그룹 내 지분 정리에 현금을 먼저 투입한 뒤 본업 투자 자금을 주주에게 다시 손 벌린 게 아니냐는 시선도 나왔다.

패턴(3) ‘올빼미 공시’

정관 변경 → 대규모 유증도

2023년 이후 1조원 이상 주주배정 유증 사례 8건을 살펴보면, 공시 시점에도 뚜렷한 공통 패턴이 드러난다. 대부분 오후 3시 30분 이후 유증 계획을 최초 공시했다. 이른바 ‘올빼미 공시’다. 올빼미 공시는 상장사가 장 마감 이후 투자자의 주목도가 낮은 시점에 회사에 불리한 악재성 정보를 슬그머니 공시하고 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올빼미 공시가 반복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유증은 기존 주주 지분 희석과 직결되는 민감한 사안이다. 장중 발표할 경우 주가 급락과 매도 물량이 쏟아질 수 있다. 반면, 장 마감 이후 발표하면 회사 입장에선 주가 충격을 관리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발표 직후 기관투자자와 애널리스트 대상 설명, 최대주주 참여 여부 정리, 경영진 자사주 매입 같은 후속 안정화 조치를 준비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시간이 회사의 충격 완화엔 유리하지만 투자자에겐 불리하게 작동한다는 점이다. 발표 직후 복잡한 자금 사용처와 할인율, 희석 규모를 충분히 소화할 시간이 제한적인데, 다음 거래일 시초가에서 충격이 한 번에 반영된다. 결국 회사는 설명 시간을 벌지만 기존 주주는 사실상 하룻밤 사이 희석 리스크를 떠안는다.

대규모 유증을 앞두고 정관을 바꾼 경우도 있다. 한화솔루션은 지난 3월 24일 주총에서 ‘발행예정주식 총수 한도’를 기존 3억주에서 5억주로 늘린 뒤 3월 26일 2조3760억원 규모 주주배정 유증을 단행했다. CJ CGV는 2023년 발행 한도를 기존 1억주에서 2억주로 늘리는 정관 변경 안건을 통과시킨 뒤 4500억원 규모 주주배정 유증을 진행했다.

이해관계자 손익 계산서 보니

기존 주주에게 손실 전가 우려

기습 증자 논란에 휘말린 기업의 이해관계자 ‘손익계산서’를 뜯어보면 기존 주주에게 손실이 전가되는 구조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기업 입장에서는 증자로 단기간 자본을 확충하고 부채비율을 낮출 수 있다. 채권자 역시 자본 확충으로 기업의 부채 지급 여력과 자금 상환 안정성이 높아지는 만큼 간접적 수혜를 본다.

기존 주주 손익계산서는 정반대다. 유증 발표 시 기존 주주는 주가 급락은 물론, 할인 발행까지 더해져 주가 하락과 지분 희석을 동시에 떠안는다. 지분 희석을 방어하려면 추가 자금을 투입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보유 지분의 경제적 가치가 뚝 떨어진다.

특히, 대규모 유증을 단행한 기업의 경우 증자가 실질적인 기업가치 상승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컨대, CJ CGV는 코로나19 이후 약 1조원 이상 자본 확충을 진행했지만, 주가는 팬데믹 이전 대비 여전히 크게 낮다. 지난 4월 1일 기준 최근 3년 수익률은 -53%다. 일부 기업은 증자 이후 일시적으로 재무 지표가 개선되더라도, 추가 증자나 전환사채 발행이 이어져 희석이 누적되는 사례도 상당수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반복되는 자본 확충 사이클에 노출돼 장기 수익률이 구조적으로 훼손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의미다.

유증 당시 제시되는 투자 계획과 실제 성과 간 괴리도 반복적으로 입길에 오른다. 통상 기업은 설비투자 확대, 신사업 진출, 재무 구조 개선 등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유증 이후 성과가 주주가치로 얼마나 연결됐는지 체계적으로 검증하는 경우는 드물다.

바이오·2차전지 등 성장 산업에서도 유사한 패턴이 반복된다. 대규모 투자 계획을 명분 삼아 증자를 단행했지만, 임상 지연이나 업황 변화로 기대했던 수익 창출 시점이 차일피일 늦어져 주주가치로 환원되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한다.

무엇보다 대규모 유증을 둘러싼 정당성 논란이 확산하는 것에는 경영진 사업 실패나 투자 판단 오류에서 초래된 비용이 주주에게 이전되는 행태와 무관치 않다는 시각이 많다. 지배주주와 소수주주 간 손실 분담의 비대칭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가령, 누적된 실적 악화나 과도한 투자로 빚 부담이 커진 기업이 증자로 자본을 확충하면 부채비율이 낮아지고 유동성도 개선된다. 반면, 경영 실패로 초래된 비용은 주가 하락과 지분 희석 등 부메랑이 돼 기존 주주에게 전가된다는 지적이 비등하다.

한화솔루션 사례에서 보듯, 주가가 고점일 때 ‘빚 갚는 유증’을 단행하면 지배주주 입장에선 경영 리스크를 손쉽게 외부 투자자에게 전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익명을 원한 지주 업종 애널리스트는 “주가가 높은 시점에 미래 성장 재원을 위한 증자가 아니라 채무 상환이 주된 목적인 증자를 결정하면 대주주 입장에선 희석 규모가 줄고 부담해야 할 절대 금액도 감소한다. 증자 타이밍 자체가 지배주주의 현금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털어놨다.

공시 정보 전달 개선돼야

독립이사 전문성 제고 숙제

반복되는 유증 충격이 자본 조달 기능 신뢰를 훼손할 수 있는 만큼 절차적 정당성 확보와 함께 이사회 독립성·전문성 제고가 과제로 지목된다.

전문가들은 선진 시장처럼 공시 투명성을 높여 정보 효율성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유증 계획을 사전에 밝히는 건 불가능하다. 그 자체로 공시 위반이다. 다만, 미국의 경우 투자자가 사전에 유증 ‘신호’를 파악할 수 있다. ‘일괄등록제도(Shelf registration)’가 활성화돼 있어서다. 이는 향후 여러 번에 걸쳐 발행될 증권 등에 대해 미리 하나의 신고서에 작성·제출하고 시장 상황에 따라 발행 조건을 정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꼭 유증을 진행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기업의 자금 조달 수요를 투자자가 미리 파악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제도가 있다. 일명 ‘일괄신고서 제도’다. 다만, 이는 회사채 발행 등에 집중돼 있다. 증권 발행이 빈번한 기업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투자자가 사전에 자금 조달 수요를 읽을 수 있는 장치로는 미흡하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일괄신고제도를 기업에 강제할 수 없고 그마저도 신고 가능한 기업 요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주식 시장에서는 거의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괄신고제도 기준을 완화해 기업이 최소한의 경영 로드맵을 주주에게 전달해야 한다”며 “두 주체 사이의 면밀한 소통을 바탕으로 경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이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아직 따갑다. 한화솔루션도 지난 3월 24일 열린 주총에서 두 명의 독립이사(배성호·송광호)를 새로 선임하고 이틀 뒤 증자를 발표했다는 점이 입길에 올랐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신규 선임된 독립이사 송광호·배성호 교수가 이틀 뒤로 예정된 유상증자 관련 이사회 안건을 사전 인지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독립이사가 상법 취지에 맞게 미국 법인의 현금흐름 분석과 중장기 예측치를 토대로 제대로 심의한 후 의결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한화솔루션 측은 “충분한 설명과 자료를 제공했고 독립이사들의 의견이 이번 증자에 반영됐다”는 입장이지만, 이사회 운영에는 의구심이 제기됐다.

독립이사 전문성을 문제 삼는 이도 상당수다. 전문 경영인이나 산업 전문가가 아닌 인사를 독립이사로 임명하는 관행은 줄곧 논란으로 이어졌다. 대한상공회의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상장사 독립이사는 학계가 36%, 공공부문이 14%로 교수와 전직 관료가 절반을 차지했다. 경영인 출신은 15%에 불과했다. 반면, 미국 S&P500과 일본 닛케이225 기업은 독립이사의 각각 72%·52%가 경영인이었다. 학계는 각각 8%·12%에 그쳤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사 추천 주체와 경로가 다양화돼야 한다”며 “그렇게 선임된 이사들이 독립성을 가진다면 거수기 역할을 하던 관행에서 탈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참에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를 정교하게 손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주요 기관투자자의 자율적 의결권 행사 지침이다. 2016년 소수주주 권익 보호를 목적으로 국내에 도입된 이래 지난해 말 기준 249개 기관투자자가 참여한다. 그러나 기관투자자들이 경영권 침해 우려 등을 이유로 의사결정에 소극적으로 대응해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국민연금도 주요 주주로 참여 중인 기업에서 기계적으로 찬성표를 던진다는 질타를 받는다.

소수주주 권익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집단소송 등 활성화 방안을 고민해볼 때라는 의견도 있다. 미국은 집단소송이 가장 활발한 국가다. 우리나라는 증권집단소송 제도가 도입된 2005년 1월 이후 2020년까지 대법원에 공고된 소송 제기 건수가 총 10건에 불과할 정도로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집단소송을 활성화하고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을 통해 주주와 기업 모두에 충실한 경영을 일구는 게 큰 숙제”라며 주주 보호 수단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혹시 우리도?”…정관 변경 포비아
엘앤에프·CGV·AK홀딩스·티웨이 주주 ‘덜덜’
한화솔루션의 ‘정관 변경 → 기습 유상증자’ 사태 이후 개인 투자자 사이에 불안감이 번지고 있다. 일부 상장사가 한화솔루션과 마찬가지로 주추총회를 통한 ‘발행예정주식 총수 한도’를 늘리면서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코스피 6개 상장사와 코스닥 19개 상장사가 발행예정주식 총수 한도를 확대(액면분할·병합에 따른 변경은 제외)했다. CJ CGV는 2023년에 이어 또 한 번 한도를 확대했다. 정관 제5조(발행예정주식의 총수)를 고쳐 발행 한도를 2억주에서 4억주로 늘렸다. 변경 목적을 두고선 “수권주식 수 한도 소진으로 발행가능주식 수 확대”라고 설명했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CJ CGV의 발행주식 수는 1억6558만주다. 코스피 상장사 중에선 엘앤에프와 AK홀딩스 등이 발행주식 한도를 늘렸다. 엘앤에프는 5500만주에서 1억주로, AK홀딩스는 3000만주에서 1억주로 정관을 바꿨다. 코스닥 상장사 중에서는 티웨이항공이 5억주에서 10억주로 발행 한도를 늘렸다. 디알텍(2억주 → 5억주), 큐리언트(1억주 → 3억주), SG(2억주 → 10억주), 디앤디파마텍(5000만주 → 2억주) 등도 큰 폭 늘렸다.

물론 발행예정주식 총수 한도 확대가 곧바로 유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스톡옵션 부여와 전환사채(CB)·신주인수권부사채(BW) 행사, 주식 기반 인수합병(M&A), 향후 액면분할 가능성 등 다양한 자본 정책 수단을 열어두려는 정관 정비일 수 있다.

기업들도 통상 “향후 자본 시장 활용의 유연성 확보 차원”이라는 설명을 내놓는다. 다만, 투자자 사이에선 발행주식 수 확대 자체를 잠재적 희석 신호로 받아들이는 경계 심리가 강하다.

(최창원 기자)


[배준희·최창원·이채원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4호(2026.04.08~04.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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