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 짐 싸" 박명수가 호통친 가수 때문에 소속사를 차렸다
옥상달빛 멤버이자 김윤주 와우산레코드 대표의 음악 에세이. 김윤주의 일상과 이야기를 담아 당신의 오늘에 위로가 될 곡을 전달합니다. 음악을 들으며 한 편 한 편 감상해 주세요. <편집자말>
[김윤주 기자]
"언니, 이번에 쓴 곡인데 아직 정리도 안 됐고 (좋은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한번 들어봐 주세요."
싱어송라이터 장들레는 늘 그랬다. 자신만만한 태도로 자기 음악을 들려주지 않는다. 기대감 없게 말하지만, 매번 사람 마음을 흔들어 놓는 음악을 선보인다. 그가 들려준 곡을 한 곡 한 곡 들을 때마다, 그의 목소리에 놀라고 가사에 울컥하고 음악성에 감동한다.
2018년, 옥상달빛의 연말 공연을 준비하며 장들레를 처음 만났다. 피아노를 잘 치며 편곡 능력이 좋고 착하다는 세 가지의 설명만으로도 장들레가 왠지 마음에 들었다. 우연찮게 듣게 된 장들레 개인의 음악은 작곡 작사 편곡까지 모두 훌륭했다. 대중에게 사랑받기에 너무도 충분한 아티스트였다.
세상과 사람을 보는 시선이 너무 따뜻하고, 사랑스러워 많은 사람들이 이 뮤지션의 음악을 들으면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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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BS2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 함께 출연한 와우산레코드 멤버들. 김윤주·요조·박명수·박세진·장들레(왼쪽부터) |
| ⓒ KBS |
이후 장들레가 어딘가에 적을 두고 음악 활동을 하고 싶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과거 옥상달빛의 소속사 사장이자 프로듀서였던 일명 소다 오빠에게 받았던 큰 보호와 사랑이 떠올랐다. 옥상달빛이 옥상달빛답게 있을 수 있게 한 사람, 소속사가 보여준 배려와 이해를 비슷하게나마 장들레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회사가 무얼 하는지, 대표가 어떤 걸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회사를 만들었다. 그저 장들레의 우산이 되고 싶어 와우산레코드를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회사 대표라는 직함은 있지만, 여전히 대표로 처리해야 할 일들 속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다.
지난 5일 KBS2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방송 때 모습도 그랬다. 당시 '박명수의 라디오쇼'에 함께 출연한 장들레는 준비했던 내비게이션 성대모사를 선보였는데, 박명수의 "나가! 짐싸!"라는 호통이 돌아왔다(방송 후 장들레에게 "우리 같이 성대모사 연습 하자. 나도 많이 혼났었어"라며 그를 위로 했다).
하지만 장들레의 음악을 듣다 보면, 그의 소속사 대표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유난히 아름다웠던 그 시절 너머의 난
너를 보았고 나를 보았지 아름다웠던 날
유난히 아름다웠던 그 시절 너머의 난
진심으로 널 사랑했었다 아름다웠던 날
다신 볼 수 없지만 아름다웠던 날"
장들레의 음악은 왜 좋을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의 음악을 들으면 지난 시절의 내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유난히 아름다웠던>이라는 이 곡의 재생 시간은 4분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짧은 시간 동안 곡 제목처럼 '유난히 아름답고 유난히 슬펐던' 날들이 생각난다. 꽤 오래전 일들인데도,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그때의 나로 돌아가 여러 감정이 선명하게 피어오른다.
동시에 아쉬움을 느낀다. 나는 왜 사랑할 때 사랑 노래를 더 쓰지 못했고 이별의 슬픔을 노래로 남겨두지 않았을까. 또르르 눈물 한 줄기 흘리며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을 거 같은 이런 풋풋한 이별 노래가 왜 내게 없는지 싶어서다. 이미 지나버린 사랑과 이별의 날들 그때 느꼈던 감정을 음악으로 남겨두지 않았던 게 마냥 아쉬웠다.
어른들은 네 번의 계절은 함께 보내봐야 그 사람에 대해 알게 된다고 했는데, 이상하게 난 네 번의 계절을 보내고 나면 여지없이 이별했다. '사계절'이 상대방을 알게 되는 시기라는 뜻이었지, 알고 나서 헤어지라는 말이 아니었는데도, 나는 '사계절'이라는 주문에만 걸려있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그랬다. '영원'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순간의 감정에 취한 거라고 멋대로 생각했다. 상대방의 입에서 그 단어(영원)가 나오면 언제든 떠날 준비를 했다. 그런데 설사 영원이라는 약속이 가짜면 어떤가.
오직 그때만큼은 이 우주에 너와 나, 우리 둘만 있다는 마음으로 모른 척 사랑했더라면 어땠을까. 이별이 다가온대도 더 열정적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이별 후 마음에 구멍이 난 것처럼 큰 상실감의 눈물을 흘려보지 못했던 게 이렇게 아쉬울 줄 그때는 몰랐다. 사랑한다는 말을 괜히 많이 아꼈다.
내가 한 연애란 이런 식이었다. 마음을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내게 상대는 표현을 갈구했다. 그런 마음과 말이 부담스러워 상대와는 한 걸음 멀어지게 됐다. 역시 혼자가 더 편하고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이별을 말하는 전형적인 꼴값 스타일의 연애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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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n River, Seoul |
| ⓒ hktram0311 on Unsplash |
어제 뭘 먹었는지도 기억이 잘 안 나는데, 15년도 더 된 지난 사랑과 이별의 감정이 내게 남아 있을 리 없었다. 소녀 같은 마음까지 바란 건 아니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감정에 무뎌지는 건 아닐까 음악을 만드는 사람으로는 조금 서글프다.
그럴 때마다 다시 장들레의 음악을 듣는다. 콘크리트 사이에 힘겹게 피어난 한 송이 민들레 같은 음악. 그의 음악이 어느새 내 마음 밭에 자리를 잡아 그리움과 고마움, 행복과 슬픔, 사랑이라는 수많은 감정의 씨앗을 뿌려주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특별하지 않은 순간도 장들레는 그 순간을 포착해 유난히 아름답게 음악으로 담는다. 덕분에 듣는 이들은 마음에 여러 감정을 꽃 피울 수 있다.
그렇게 한 송이 한 송이 피어난 감정의 꽃은 우리의 일상을 풍요롭게 그리고 다정하게 만들지 않을까. 감정을 품은 채 우리가 서로를 그리고 세상을 바라 본다면, 뭐든 조금은 더 사랑스러워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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