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 짐 싸" 박명수가 호통친 가수 때문에 소속사를 차렸다

김윤주 2026. 4. 7.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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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 와우산!] 장들레 - 유난히 아름다웠던(Trio Ver.)

옥상달빛 멤버이자 김윤주 와우산레코드 대표의 음악 에세이. 김윤주의 일상과 이야기를 담아 당신의 오늘에 위로가 될 곡을 전달합니다. 음악을 들으며 한 편 한 편 감상해 주세요. <편집자말>

[김윤주 기자]

"언니, 이번에 쓴 곡인데 아직 정리도 안 됐고 (좋은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한번 들어봐 주세요."

싱어송라이터 장들레는 늘 그랬다. 자신만만한 태도로 자기 음악을 들려주지 않는다. 기대감 없게 말하지만, 매번 사람 마음을 흔들어 놓는 음악을 선보인다. 그가 들려준 곡을 한 곡 한 곡 들을 때마다, 그의 목소리에 놀라고 가사에 울컥하고 음악성에 감동한다.

2018년, 옥상달빛의 연말 공연을 준비하며 장들레를 처음 만났다. 피아노를 잘 치며 편곡 능력이 좋고 착하다는 세 가지의 설명만으로도 장들레가 왠지 마음에 들었다. 우연찮게 듣게 된 장들레 개인의 음악은 작곡 작사 편곡까지 모두 훌륭했다. 대중에게 사랑받기에 너무도 충분한 아티스트였다.

세상과 사람을 보는 시선이 너무 따뜻하고, 사랑스러워 많은 사람들이 이 뮤지션의 음악을 들으면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수줍음 많은 소녀가 만든 음악
  KBS2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 함께 출연한 와우산레코드 멤버들. 김윤주·요조·박명수·박세진·장들레(왼쪽부터)
ⓒ KBS
합주를 하기 위해 처음 만난 장들레는 꼬불꼬불 파마 머리에 수줍음이 많던 소녀였다. 앞서 소개 받은 대로 착하고 음악 잘하는 모습, 장들레는 딱 그랬다. 산만하고 순수한 그와 대화하다 보면 잠깐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 여행이라도 다녀온 듯한 기분인데, 그것마저 좋았다.

이후 장들레가 어딘가에 적을 두고 음악 활동을 하고 싶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과거 옥상달빛의 소속사 사장이자 프로듀서였던 일명 소다 오빠에게 받았던 큰 보호와 사랑이 떠올랐다. 옥상달빛이 옥상달빛답게 있을 수 있게 한 사람, 소속사가 보여준 배려와 이해를 비슷하게나마 장들레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회사가 무얼 하는지, 대표가 어떤 걸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회사를 만들었다. 그저 장들레의 우산이 되고 싶어 와우산레코드를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회사 대표라는 직함은 있지만, 여전히 대표로 처리해야 할 일들 속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다.

지난 5일 KBS2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방송 때 모습도 그랬다. 당시 '박명수의 라디오쇼'에 함께 출연한 장들레는 준비했던 내비게이션 성대모사를 선보였는데, 박명수의 "나가! 짐싸!"라는 호통이 돌아왔다(방송 후 장들레에게 "우리 같이 성대모사 연습 하자. 나도 많이 혼났었어"라며 그를 위로 했다).

하지만 장들레의 음악을 듣다 보면, 그의 소속사 대표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유난히 아름다웠던 그 시절 너머의 난
너를 보았고 나를 보았지 아름다웠던 날
유난히 아름다웠던 그 시절 너머의 난
진심으로 널 사랑했었다 아름다웠던 날
다신 볼 수 없지만 아름다웠던 날"

장들레의 음악은 왜 좋을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의 음악을 들으면 지난 시절의 내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유난히 아름다웠던>이라는 이 곡의 재생 시간은 4분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짧은 시간 동안 곡 제목처럼 '유난히 아름답고 유난히 슬펐던' 날들이 생각난다. 꽤 오래전 일들인데도,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그때의 나로 돌아가 여러 감정이 선명하게 피어오른다.

동시에 아쉬움을 느낀다. 나는 왜 사랑할 때 사랑 노래를 더 쓰지 못했고 이별의 슬픔을 노래로 남겨두지 않았을까. 또르르 눈물 한 줄기 흘리며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을 거 같은 이런 풋풋한 이별 노래가 왜 내게 없는지 싶어서다. 이미 지나버린 사랑과 이별의 날들 그때 느꼈던 감정을 음악으로 남겨두지 않았던 게 마냥 아쉬웠다.

어른들은 네 번의 계절은 함께 보내봐야 그 사람에 대해 알게 된다고 했는데, 이상하게 난 네 번의 계절을 보내고 나면 여지없이 이별했다. '사계절'이 상대방을 알게 되는 시기라는 뜻이었지, 알고 나서 헤어지라는 말이 아니었는데도, 나는 '사계절'이라는 주문에만 걸려있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그랬다. '영원'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순간의 감정에 취한 거라고 멋대로 생각했다. 상대방의 입에서 그 단어(영원)가 나오면 언제든 떠날 준비를 했다. 그런데 설사 영원이라는 약속이 가짜면 어떤가.

오직 그때만큼은 이 우주에 너와 나, 우리 둘만 있다는 마음으로 모른 척 사랑했더라면 어땠을까. 이별이 다가온대도 더 열정적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이별 후 마음에 구멍이 난 것처럼 큰 상실감의 눈물을 흘려보지 못했던 게 이렇게 아쉬울 줄 그때는 몰랐다. 사랑한다는 말을 괜히 많이 아꼈다.

내가 한 연애란 이런 식이었다. 마음을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내게 상대는 표현을 갈구했다. 그런 마음과 말이 부담스러워 상대와는 한 걸음 멀어지게 됐다. 역시 혼자가 더 편하고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이별을 말하는 전형적인 꼴값 스타일의 연애를 반복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괜히 아껴서
 Han River, Seoul
ⓒ hktram0311 on Unsplash
장들레의 노래를 들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 노래 때문에 사랑 노래를 써보겠다고 다짐하며 노을 지는 한강에 앉아 감정을 잡으려 애쓴 적도 있다. 그런데 도무지 떠오르는 감정이 없었다.

어제 뭘 먹었는지도 기억이 잘 안 나는데, 15년도 더 된 지난 사랑과 이별의 감정이 내게 남아 있을 리 없었다. 소녀 같은 마음까지 바란 건 아니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감정에 무뎌지는 건 아닐까 음악을 만드는 사람으로는 조금 서글프다.

그럴 때마다 다시 장들레의 음악을 듣는다. 콘크리트 사이에 힘겹게 피어난 한 송이 민들레 같은 음악. 그의 음악이 어느새 내 마음 밭에 자리를 잡아 그리움과 고마움, 행복과 슬픔, 사랑이라는 수많은 감정의 씨앗을 뿌려주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특별하지 않은 순간도 장들레는 그 순간을 포착해 유난히 아름답게 음악으로 담는다. 덕분에 듣는 이들은 마음에 여러 감정을 꽃 피울 수 있다.

그렇게 한 송이 한 송이 피어난 감정의 꽃은 우리의 일상을 풍요롭게 그리고 다정하게 만들지 않을까. 감정을 품은 채 우리가 서로를 그리고 세상을 바라 본다면, 뭐든 조금은 더 사랑스러워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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