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집' 다녀간 손녀가 45년만에 받아낸 '할아버지 무죄'

김보성 2026. 4. 7.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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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 고문 당한 박아무개씨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재심 선고 결과... 부산고법 "원심파기, 무죄"

[김보성 기자]

▲ 사법부의 흑역사를 바로 고쳐 쓴 법원 40여 년 전 국가보안법 유죄를 선고했던 법원이 재심을 거쳐 이번엔 무죄를 선고했다.
ⓒ 김보성
"우리가 수십 년을 억울하게 살았잖아요. 특히나 아버님은 주변 모든 사람에게 간첩 소리를 듣는 등 1981년부터 사는 게 아니었어요. 이미 돌아가신 상황(1992년 작고)에서 그 한을 풀기 쉽지 않지만, 그나마 뒤늦게라도 무죄가 나왔어요. 나라가, 세월이 달라졌단 생각이 들어요."

시아버지의 40여 년 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사건으로 연좌제에 시달렸던 유족 ㄱ씨는 법정 밖으로 나와서야 어두운 얼굴을 폈다. 몸서리를 칠 정도로 고통받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엄혹함이 떠오른 탓이다. 30대에서 어느새 70대가 되어버린 그는 "지금은 이렇게 쉽게 말하지만, 그땐 간첩으로 몰리면 살기가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며느리인 ㄱ씨의 표정이 달라진 건 사법부가 45년 만에 어두운 과거사를 바로잡았기 때문이다. 부산고법 형사항소 4-1부(부장판사 정성호)는 이날 354호 법정에서 고인이 된 박아무개씨(당시 50대)의 재심 선고 기일을 열어 과거 제출된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국가보안법 위반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심판결을 파기한 뒤 무죄를 선고했다.

1980년대엔 유죄, 2026년엔 무죄...
진화위 진실규명, 고문조작 인정이 판가름

고인의 사건은 지난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1년 2월 부산에 거주하던 박씨는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현재 국정원)에 영장 없이 체포돼 대공분실에서 상당 기간 불법감금 상태로 고문을 받았다. 간첩 혐의로 그를 임의 동행해 조사한 안기부는 잠을 재우지 않는 방법 등으로 박씨에게 자필 진술서를 받아냈다.

사건은 4월 초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찬양·고무) 기소 의견으로 부산지검에 송치됐고, 법원은 두 달 뒤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박씨는 지속해서 억울함을 토로했다. 고문 조작으로 만들어진 결과라는 항변이었다.

종이봉투 제작업을 해왔던 평범한 시민인 그가 사건의 발단이 된 말을 했다고 기록된 건 1978년과 1980년 사이이다. 그가 "통일이 되려면 미군이 나가야 한다"라거나 "북한의 군사력이 우월하다", "의료제도나 교육제도가 낫다"라고 주변에 열 차례 정도 얘기를 했다는 게 안기부의 주장이었다.
 안기부 고문 속에 국가보안법 위반 유죄 판결을 받은 할아버지 사건에서 손녀가 진화위 진실규명의 문을 두드리고, 재심 신청 계기가 된 제주 수상한집.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항소이유서 등을 보면 박씨는 장기간 구금과 고문 속에 자포자기 상태에서 꾸며진 진술이라고 반박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는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과 신군부 쿠데타로 보안법 위반 혐의자를 무겁게 처분하던 시대다. 2심은 그의 혐의가 반공법 ·보안법 위반에 해당한다면서 그나마 형량을 낮춘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판결을 뒤집을 수 없다고 본 박씨의 상고 포기로 혐의가 확정됐지만, 사건은 수십 년이 지난 뒤 법정으로 다시 소환됐다. 이는 박씨 손녀의 노력 덕택이다. 40대인 ㄴ씨는 할아버지 사건을 뒤늦게 접했다. 어린 시절 연좌제 고통을 우려한 가족들은 함구령을 유지하며 이를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안기부가 만든 사회적 낙인은 한 가족을 오랫동안 괴롭혔다. 그러나 진실을 숨길 수는 없었다.

"수상한집 사건과 유사했어요. 그게 시작이었어요"

할아버지가 끌려갔단 걸 어렵사리 알게 된 ㄴ씨는 몇 년 전 제주도의 게스트 하우스인 '수상한집'을 다녀오면서 마음을 먹었다. 이곳은 박씨처럼 공안당국의 허위자백, 간첩조작에 몰려 피해를 봤고, 재심 무죄를 받아낸 80대 강광보씨가 형사보상금으로 운영하던 곳이다. 그 역사를 기록한 '수상한집'은 손녀가 세월을 뛰어넘어 할아버지를 위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위원회에 문을 두드리는 '비상한' 결심의 동기가 됐다.

사건을 들여다본 진화위는 불법구금과 가혹행위 등 고문 수사로 벌어진 일로 규정하며 지난 2024년 진실규명과 재심 권고 결정을 내렸다. 안기부에 의해 박씨가 헌법이 보장한 신체의 자유, 공정한 재판 권리 등을 중대하게 침해를 받았단 게 진화위의 결론이었다.

이후 ㄴ씨는 가족을 설득해 재심 청구에 나섰고, 결정을 거쳐 사건 접수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최종 결과를 받아냈다. 당시의 법원과 지금의 사법부는 다행히 달랐다. 그는 자신에게 용기를 준 제주 수상한집에도 감사를 전했다. "(알고 보니) 조작사건이 되게 많더라고요. 수상한집도 할아버지 사건과 유사했어요. 그게 시작이었어요" ㄴ씨의 말이다.

ㄴ씨와 함께 언론의 질문에 답한 박씨의 며느리 ㄱ씨는 "사건에 연루될까 봐 꺼린 친척들과도 멀어졌다. 너무나 살기 힘들었다"라며 반드시 재발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다시는 이런 일을 겪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그러자 박씨 재판에 힘을 보탠 박민서(법무법인 원곡) 변호사가 이렇게 말했다.

"다행히 사법부가 최근 여러 조작간첩, 공안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는 분위기입니다. 가혹행위 하에 이루어진 진술이었고, 판례상으로도 자유민주적 질서를 해할 경우가 전혀 아니었어요. 충분히 무죄가 나올 거라고 봤습니다. 40여 년 만의 이번 판결이 계기가 돼서 다시는 이런 아픔이 반복되지 않길 바랍니다. 이제 남은 건 국가가 피해를 배·보상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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