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내 집을 소유하는 사회, 이 나라가 증명했다 [이봉렬 in 싱가포르]

이봉렬 2026. 4. 7.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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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렬 in 싱가포르] 자가점유율 90% 싱가포르가 보여준 주택 정의

[이봉렬 기자]

"대한민국은 예측 가능한 정상 사회로 복귀 중입니다. 시장을 이기는 정부도 없지만, 정부를 이기는 시장도 없습니다."

지난 1월, 이재명 대통령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를 예정대로 실시하겠다며 이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이후 연이어 부동산 관련 발언을 내놓으며 부동산 투기를 막고 집값 안정화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내비쳤습니다.

이에 대해 일부 보수 언론은 "시장을 이기는 정부가 없다는 건 역사가 증명한다"라는 제목의 기고문 등을 실으며 대통령의 발언을 비웃기도 했습니다.

누구 말이 옳을까요? 이재명 대통령은 과연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서 '정부를 이기는 시장'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시장을 이긴 정부'는 하나 알고 있습니다. 바로 싱가포르입니다.

모두가 주택을 소유하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꿈

1965년에 독립한 신생 도시국가 싱가포르가 이룬 주거 안정의 비결은 단순히 운이 좋아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철저하게 설계된 국가의 의지이자, 60년간 흔들림 없이 지켜온 사회적 약속이었습니다.

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초대 총리 리콴유는 건국 초기, 나라를 지탱하는 힘은 모든 가정이 자기 집을 소유하는 데서 온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싱가포르를 주택 소유 사회(Home-owning society)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 목표를 위해 가장 먼저 단행한 조치는 1966년 토지수용법(Land Acquisition Act)의 제정이었습니다. 국가가 공익을 위해 민간 토지를 저렴한 가격에 수용할 수 있게 한 이 강력한 법 덕분에, 초기 40%에 불과했던 국유지 비중은 현재 90% 가까이 치솟았습니다. 여기에 정부가 주도하는 공공아파트인 HDB를 끊임없이 공급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반값 아파트가 이곳에서 가능한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국가가 땅을 99년 동안 빌려주고 건물만 분양하는 토지임대부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입니다. 분양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땅값이 빠지니, 서민들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이 형성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였습니다.

CPF, 내 월급이 내 집을 사는 마법의 열쇠

땅값이 싸다고 해도 목돈이 없는 서민에게 내 집 마련은 여전히 높은 벽입니다. 하지만 싱가포르 정부는 여기서 또 하나의 혁신적인 시스템을 내놓습니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과 비슷한 중앙적립기금(CPF)입니다.
 싱가포르의 국민연금인 CPF는 연금개시 이전이라도 집을 살 때 사용할 수가 있어서, 서민들의 주거안정에 큰 도움이 됩니다.
ⓒ CPF
싱가포르 직장인들은 월급의 상당 부분(기업 부담을 포함하면 최대 37%)을 노후를 위해 강제로 저축하는데, 연금으로 받는 것 외에는 딱히 쓸모가 없는 한국의 국민연금과는 달리 싱가포르 정부는 이 자금을 주택 구매에 미리 쓸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실제로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후반의 젊은 커플이 결혼을 앞두고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들이 정부가 새로 짓는 아파트를 신청하면, 번듯한 내 집을 마련하는 데 큰 현금이 들지 않습니다. CPF에 쌓인 자금과 정부 보조금을 합쳐 초기 계약금 10% 정도를 치르고 나면, 나머지는 수십 년간 매달 적립되는 CPF 금액으로 원리금을 갚아나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당장의 생활비를 쪼개 빚을 갚는 것이 아니라, 노후 자산의 일부를 주택 비용으로 치환함으로써 실질적인 가계 부담 없이 내 집을 가집니다.

HDB는 주거 환경에 따라 5년에서 10년까지 의무 거주 기간이 있지만, 그 기간이 지나면 자유로운 거래가 가능합니다. 이때 시장에 나온 HDB는 분양 당시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거래되곤 하는데, 이는 싱가포르 젊은이들의 자산 형성에 크게 이바지합니다. 즉, 싱가포르에서 HDB를 분양받는 것은 주거 안정과 자산 형성, 그리고 노후 준비까지 한꺼번에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인 셈입니다.

HDB와 콘도, '복지'와 '욕망'의 정교한 이분법
 싱가포르의 아파트. 사진 왼쪽의 건물들은 새로 분양하는 공공아파트(HDB)이며, 사진 오른쪽에 요트선착장 옆에 있는 아파트는 민간이 공급하는 고급 아파트 콘도입니다.
ⓒ 싱가포르 국가개발부
싱가포르의 아파트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뉩니다. 국민의 80%가 거주하는 공공아파트 HDB와 상위 20%를 위한 민간 아파트 콘도미니엄입니다. 이 두 공간이 싱가포르 국민에게 갖는 의미는 매우 상징적입니다.

HDB는 국가가 보장하는 사회안전망입니다. 비록 수영장이나 헬스장 같은 화려한 편의시설은 없어도 단지마다 저렴한 식당가인 호커센터와 전통시장, 전철역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어 생활 편의성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HDB는 시민권자와 영주권자만 구매할 수 있으며, 특히 시민권자가 처음 분양받을 때는 정부가 파격적인 보조금까지 얹어줍니다. 다만 연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분양 자격이 제한됩니다. 철저하게 서민의 주거 안정을 목표로 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콘도는 성공의 지표입니다. HDB보다 최소 3배 이상 비싸지만 수영장, 헬스장, 테니스 코트를 갖춘 이 공간은 중산층으로 진입한 이들의 욕망을 채워줍니다. 정부는 HDB를 통해 서민의 주거를 철저히 보장하되, 더 나은 환경을 원하는 이들은 민간 시장에서 자유롭게 경쟁하도록 둡니다. 개인의 욕망까지 통제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투기 세력에게는 자비 없는 세금의 칼날

싱가포르가 주거 안정을 달성한 또 다른 비결은 투기에 대한 단호한 응징입니다. 최근 싱가포르 정부는 외국인의 부동산 추가 취득세를 집값의 60%로 올렸습니다. 10억 원짜리 집을 사려면 세금으로만 6억 원을 내라는 뜻입니다. 이는 외부 자본에 의해 국민의 보금자리가 흔들리는 것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입니다.
 싱가포르 아파트 거래에 매겨지는 세금. 두 채 이상 부터는 기본 거래세에 더해 20%에서 30%까지 세금이 추가되고, 외국인의 경우는 아예 처음부터 60%의 세금이 추가됩니다.
ⓒ IRAS SINGAPORE
내국인에게도 엄격합니다. 무주택자가 첫 집을 살 때는 세금이 거의 없고 보조금까지 지원하지만, 두 번째 집을 살 때는 20%, 세 번째 집은 30%의 추가 취득세를 물립니다. 여기에 재산세 역시 실거주 주택에는 관대하지만, 임대 목적의 주택에는 훨씬 높은 세율을 적용합니다.

싱가포르에서 다주택자가 되어 임대 수익을 노리는 것은 세금 폭탄을 감수해야 하는 대단히 비효율적인 투자가 됩니다. 집은 사는(Buy) 것이 아니라 사는(Live) 곳이라는 가치를 법과 제도로 강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싱가포르의 주택보급률은 110%를 초과하고, 자가점유율 역시 약 90%로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상회하면서도 자가점유율은 60%를 밑도는 한국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입니다.

한국이 넘어야 할 벽, 그리고 나아가야 할 길

싱가포르의 주택 정책의 효용은 성과로 증명됐지만 한국에 그대로 이식하기에는 현실적인 장벽도 존재합니다. 싱가포르는 건국 초기 개발이 시작되기도 전에 강력한 정부의 의지로 토지 장악이 용이했으나, 한국은 사유 재산권에 대한 인식이 매우 강하고 국유지 비중도 낮습니다. 또한 자산의 70% 이상이 부동산에 묶여 있는 한국인들에게 집값 안정은 곧 내 자산 가치의 하락으로 인식되기에 정서적 저항도 큽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배워야 할 점은 주택 공공성에 대한 확고한 합의입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춤을 추는 냉온탕 정책으로는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습니다. 서민을 위한 저렴한 주택 공급과 실거주자 중심의 세제 설계는 정파를 떠나 국가적 과제가 되어야 합니다.

더불어 싱가포르는 HDB 분양 시 민족 간 할당량(EIP)을 정해 놓아 여러 민족이 섞여 살도록 강제합니다. 우리도 좋은 위치의 아파트에 청년과 노인, 분양과 임대, 일인 가구와 대가족,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려 살 수 있도록 정교한 할당 제도를 도입한다면, 아파트가 특정 계급을 나타내는 폐쇄적 공동체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시장을 이긴 정부가 바로 싱가포르입니다. 싱가포르의 60년 역사가 주는 교훈은 명확합니다. 집값은 시장에만 맡겨둘 영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국가가 토지라는 공공 자원을 관리하고, 금융 시스템으로 국민의 구매력을 지원하며, 세제로 투기 수요를 억제할 때 비로소 서민의 삶은 안정됩니다.

싱가포르가 60년 전 폐허 위에서 꿈꿨던 모두가 내 집을 소유하는 사회, 이제 우리 대한민국에서도 그 꿈이 실현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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