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왜 이토록 폭력적인가

조준희 2026. 4. 7.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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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조준희 기자]

 이재명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3일 청와대에서 공동언론발표 후 포옹하고 있다. 2026.4.3
ⓒ 연합뉴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 주는 아름다운 금실이지.
- 한강 작가가 여덟 살(1979년)에 쓴 시 전문

최근 한국을 방문한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가 어린 시절 썼던 시 구절인 '우리 가슴을 잇는 금실'을 인용하며 양국의 140년 우호 관계를 표현했다. 국가 간의 결속을 강조하는 따뜻한 비유였지만, 필자는 이 문장을 접하며 역설적으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대통령이 말한 견고한 외교적 결속과는 달리, 작가의 문장 속 '금실'은 폭력적인 세상 속에서 우리가 간신히 서로를 지탱하는 연약하고도 간절한 연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아름다운 문장은 필자로 하여금 작가가 평생을 바쳐 깊이 고민해온 아픈 질문을 떠올리게 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일 수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이다. 세계 곳곳에서 폭격이 계속되고 전쟁의 공포가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가? 강대국들의 정치 논리 앞에 평범한 개인이 느끼는 무력감은 작가가 작품 속에서 응시했던 그 고통과 깊이 닮아 있다.

한강 작가의 소설들은 한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거대한 구조적 폭력을 정면으로 다룬다. 대표작 '채식주의자'에서 주인공은 육식으로 상징되는 인간 본연의 폭력성을 거부하기 위해 스스로 '식물'이 되어가는 길을 택한다. 인간이기를 포기해서라도 누군가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가담하지 않으려는 그 처절한 몸부림은 우리가 거대한 세상의 폭력 앞에서 느끼는 무기력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소년이 온다'는 1980년도 광주의 비극을 통해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이 평범한 이웃들의 삶을 어떻게 파괴했는지 증언한다. 작가가 응시한 이 국가 폭력의 얼굴은 오늘날 시스템과 자본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 우리가 이토록 무력감을 느끼는 이유 역시, 폭력이 이제는 거대한 구조와 자본의 논리 뒤에 숨어 교묘하게 자행되기 때문이다. 그 거대한 수레바퀴 아래에서 개인은 질식할 것 같은 공포를 느낀다. 하지만 작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얼마나 더 사랑해야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가?"라고. 이 질문은 우리가 절망에 빠져 있는 대신, 인간다운 본질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를 일깨워준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금실'의 연대와 저항

이 거대한 폭력 앞에 해결책은 없는 것인가? 필자는 작가가 어린 시절 노래한 그 '금실'에서 실마리를 찾는다.

첫째, 망각에 저항하는 기록의 힘을 길러야 한다. 작가가 비극적인 1980년 5월 광주의 역사를 '소년이 온다'에서 현재형의 소설로 써내어 우리 앞에 놓았듯, 우리 역시 타국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고통을 '남의 일'로 치부하지 않고 끊임없이 기억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침묵은 폭력의 가장 강력한 조력자이기 때문이다.

둘째, 연약하지만 끊어지지 않는 연대다. 마크롱 대통령이 언급한 '금실'은 외교적 수사를 넘어, 고통받는 타인의 가슴과 나의 가슴을 잇는 '공감의 선'이어야 한다. 개인의 힘은 미약해 보이지만, 서로의 아픔에 응답하는 이 가느다란 '금실'들이 모여 거대한 그물을 이룰 때 우리는 비로소 무력감을 극복할 수 있다.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이라는 거대한 학살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은 눈보라 치는 밤,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작은 촛불 하나에 의지해 어둠을 건넌다. 작가는 이 촛불을 통해 아무리 거대한 폭력과 어둠이 닥쳐도, 우리가 서로의 고통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한 결코 '작별'하거나 패배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2026년 3월 7일, 이란 테헤란에서 폭발 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휴대폰으로 촬영한 사진. 마지드 아스가리푸르/WANA(서아시아 통신사)
ⓒ 로이터/연합뉴스
지금 창밖에는 벚꽃이 만발해 있다. 자연은 이토록 변함없이 아름다운데, 왜 인간은 폭력 앞에 고통받아야 하는가. 이 극명한 대비는 우리를 더욱 무력하게 만들지만, 역설적으로 그 연약한 꽃잎은 매년 다시 피어남으로써 죽음과 파괴가 결코 생명을 이길 수 없음을 증명한다.

우리 역시 이 실낱같은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한다. 인간의 잔혹함에 몸서리 치면서도 끝내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작가의 시선을 따라, 필자 또한 고민해 본다. 우리가 지켜야 할 마지막 금실은 바로 "타인의 고통에 멈춰 서는 용기"다. 그 작은 용기들이 모일 때, 만발한 꽃잎처럼 인간의 존엄성도 이 폭력적인 세상 위에서 다시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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