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기 주문이 취소됐다... 동네 의원까지 덮친 중동전쟁

엄두영 2026. 4. 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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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건강 161] 나프타 수급 불안이 부른 의료소모품 품절, 의원급 현장은 혼란 직전 상황

복수면허의사(의사+한의사). 한국의사한의사 복수면허자협회 학술이사. 의학과 한의학을 아우르는 통합의학적 관점에서 올바른 건강 정보를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기자말>

[엄두영 기자]

6일 오전, 주사기를 주문했던 업체에서 문자가 하나 왔습니다. 3월 말에 넣은 발주가 일방적으로 취소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물량을 확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주사기를 주문했다는 것은 주사기의 병원 재고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문자를 읽는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지금 남은 물량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나'였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코로나19 때가 떠올랐습니다.

그때도 이랬습니다. 완제의약품을 만들 능력은 있는데 원료 하나가 막히자 해열제 아세트아미노펜조차 제때 구하지 못했습니다. 약국마다 재고가 바닥났고, 병원에서도 처방을 아끼며 버텼습니다.

같은 구조의 위기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약이 아닙니다. 주사기입니다.
 의료기관들이 일상적으로 소모품을 발주하는 온라인 유통플랫폼을 열어 보면, 의료기관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3ml은 물론이고 사실상 모든 규격의 주사기에 '품절'이 떠 있습니다. 주문 버튼 자체가 눌리지 않는 상태입니다
ⓒ 미소몰닷컴
호르무즈 해협에서 동네 병원까지, 생각보다 짧은 거리

2026년 2월 말,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본격화된 중동전쟁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이어졌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와 나프타의 핵심 통로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나프타 수요의 45%가 수입에 의존하고, 그중 77%가 중동산입니다. 정부는 3월 27일부터 나프타 수출 제한에 들어갔습니다.

나프타는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석유화학 기초 원료입니다. 일회용 주사기, 주사바늘, 수액 백, 수액 세트, 멸균 포장재, 의료용 장갑... 병원에서 매일 수십 번 손이 가는 이 물건들이 전부 나프타에서 시작됩니다.

업계에서는 국내 석유화학 원자재 재고를 2~3주 분량으로 보고 있습니다. 전쟁이 시작된 지 한 달이 넘었으니, 재고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은 시간의 문제였습니다.

저희 의원 이야기를 좀 더 하겠습니다. 의원급 의료기관은 보통 한두 달치 재고를 확보해 두고, 한 달 정도 남았을 때 다음 물량을 발주합니다. 이번에도 그 시점에 맞춰 3월 말에 주문을 넣었지만, 일주일 가까이 기다린 끝에 받은 것은 주사기가 아니라 '취소 통보'였습니다.

지금 병원에 남은 주사기는 대략 한 달치 여유분뿐입니다. 다음 입고가 언제 가능할지 아무도 답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한 달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의 전부입니다.

"어디서 구할 수 있나요?" 의료현장 곳곳의 목소리
 의료기관들이 일상적으로 소모품을 발주하는 온라인 유통플랫폼을 열어 보면, 주사기는 물론이고,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는 거의 모든 제품들에 '품절'이 떠 있습니다. 주문 버튼 자체가 눌리지 않는 상태입니다.
ⓒ 미소몰닷컴
이 불안이 저희 의원만의 일은 아닙니다. 서울특별시의사회는 4월 3일 성명에서 일부 의료소모품의 구매 제한과 기존 주문 취소가 이미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대한의사협회도 4월 2일 정례브리핑에서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물품 공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현장 지적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의사들이 모여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단체 대화방에서도 같은 우려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주문을 넣어도 출고 예정일조차 뜨지 않고,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서로 물어보는 상황입니다.

수액 쪽 경고도 나오고 있습니다. 수액이 담기는 비닐 백 역시 석유화학 원료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수급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일부 의사들은 미리 주문을 넣어야 한다며 서두르고 있습니다. 실제로 의료기기 포장재 업체 관계자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수액 외포장재 재고가 4월 안에 소진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를 곧바로 수술이나 항암치료 차질로 단정할 단계는 아니지만, 이런 우려가 업계 내부를 넘어 공개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은 가볍지 않습니다.

의사·한의사 복수면허자인 저의 입장에서 한 가지 더 짚자면, 이 문제는 양방 진료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한의원에서 널리 사용하는 일회용 플라스틱 부항컵 역시 같은 원료로 만들어집니다. 한의사들 사이에서도 플라스틱 부항컵을 구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주사기가 양방의 문제이고 부항컵이 한방의 문제라고 따로 볼 일이 아닙니다. 플라스틱 원료 하나가 흔들리면 의료현장 전체가 흔들리는 것입니다.
 한의원에서 널리 사용하는 일회용 플라스틱 부항컵 역시 같은 원료로 만들어집니다. 한의사들 사이에서도 플라스틱 부항컵을 구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 한의몰
주사 한 대에 1310원, 가격이 올라도 청구할 곳이 없다

여기서 한 가지 구조적인 문제를 짚어야 합니다.

대한정형외과의사회와 의료계에 따르면, 일부 업체는 일회용 주사기와 주사바늘 가격을 15~20% 올리겠다고 일방적으로 통지했습니다. 그런데 건강보험 체계에서 주사기, 주사바늘, 수액 세트, 의료용 장갑, 마스크, 거즈 같은 필수 소모품은 '별도 산정불가' 항목으로 묶여 있습니다. 이 물건들의 비용이 이미 의사의 행위별 수가에 포함되어 있다는 논리입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2026년 병원급 기준, 환자가 감기로 엉덩이 근육 주사를 맞을 때 책정되는 수가는 1310원입니다. 이 안에 약 100원짜리 일회용 주사기, 주사바늘, 소독솜, 그리고 간호사 인건비가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공급이 흔들리고 단가가 뛰어도 의료기관은 그 부담을 진료 현장에서 그대로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코로나19 때도 같은 문제가 드러났고, 지금 다시 반복되고 있습니다. 평상시에도 빠듯한 이 구조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는 위기 상황에서는 의료기관을 '보이지 않는 적자'로 내몰게 됩니다.

정부가 아무 조치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보건복지부는 3월 31일 의약계·의료제품 공급업계 등 11개 단체와 긴급 점검 회의를 열었고, 당시까지는 국내 의약품과 의료제품 수급이 전반적으로 안정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4월 6일에는 수액제 포장재, 수액세트, 주사기, 주사침, 혈액투석제통 등을 집중관리 품목으로 지정하고, 사재기 신고센터 운영과 치료재료 수가 조정 계획까지 발표했습니다. 식약처도 4월 5일, 포장재 변경 허가 절차를 법정 처리기간의 70% 이상 단축하는 '신속 규제지원 가이드라인'을 시행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3월 말 "전반적으로 안정적"이라고 하던 단계에서 불과 며칠 만에 집중관리 품목 지정, 신고센터 운영, 수가 조정 계획까지 내놓았다는 사실 자체가 상황이 빠르게 변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서울시의사회는 정부에 대해 "선제적 조치는 물론 최소한의 위기관리 체계조차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불과 한 달가량의 원유 공급 불안으로 이러한 사태가 발생한 것은 매우 심각하다"는 지적입니다. 지금 문제는 "정부 발표가 맞느냐, 현장 호소가 맞느냐"의 선택이 아니라, 두 현실 사이의 간극이 너무 빠르게 벌어지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지금 당장 병원 진료가 멈추지는 않지만...
 수급 불안이 길어질 경우, 꼭 필요한 환자 중심으로 주사 처치를 우선 시행하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 mufidpwt on Unsplash
지금 당장 모든 병원에서 진료가 중단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의료기관이 보유한 재고로 당분간은 진료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다만 수급 불안이 길어질 경우, 꼭 필요한 환자 중심으로 주사 처치를 우선 시행하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채혈이나 일부 검체 관련 업무도 원활하지 않을 수 있어, 검사 일정이 조정되거나 지연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모든 검사가 중단된 것이 아니라, 필수 진료와 필수 처치를 우선 배분하는 방식으로 현장이 버티고 있는 것에 가깝습니다.

만성질환으로 정기적인 주사 치료를 받고 계시거나, 인슐린 주사를 매일 사용하시는 당뇨병 환자분, 예방접종 일정이 잡혀 있는 분들은 평소보다 조금 더 일정에 여유를 두시고, 담당 의료기관에 미리 확인해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한 달치 재고가 바닥나기 전에, 답이 와야

전쟁은 멀리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원유와 나프타, 포장재와 플라스틱, 주사기와 수액세트라는 긴 공급망을 따라 어느 날 동네 의원의 발주 화면에까지 도착합니다.

주사기와 주사바늘은 단순한 소모품이 아니라 기본 진료의 출발점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주사를 놓을 수 없고, 채혈을 할 수 없고, 수액을 연결할 수 없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의료행위의 물리적 토대가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사태가 남긴 질문은 단순히 "주사기가 부족하냐"가 아닙니다. 필수 의료소모품을 시장의 재고와 개별 의료기관의 버티기에만 맡겨도 되는가. 이제는 그 질문에 정부와 의료계가 함께 답해야 합니다. 한 달치 재고가 바닥나기 전에, 답이 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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