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이탈리아가 몰락하는 원인 '완전 한국이네!' 교훈 얻지 못하면 대한축구협회도 같은 함정에 빠진다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강팀이 한 번 부진하면 이변이지만, 12년 연속으로 부진하면 몰락이 진행 중이라고 봐야 한다. 이탈리아 축구대표팀이 처한 상황이다.
이탈리아는 지난 1일(한국시간)까지 진행된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유럽 예선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며 본선행이 좌절됐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승부차기까지 가는접전 끝에 탈락했다.
3개 대회 연속 탈락인데, 갈수록 내용이 나빠진다는 게 문제다. 이탈리아는 2018년, 2022년 대회에 이어 또 예선 탈락했다. 그런데 흐름을 보면 2006년 월드컵 우승 이후 2010년과 2014년은 본선에 갔지만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고, 이후에는 아예 예선탈락하면서 우하향 그래프가 분명히 보인다. 선수 구성을 봐도 멤버는 좋은데 탈락했던 2018년과 공격 자체가 답답했던 2026년 사이에는 격차가 크다. 2018년 즈음 멤버의 개인역량에 문제가 없었다는 건 유로 2020(2021년 개최) 우승을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유로 역시 2024년 대회에서는 고작 16강 진출에 그치면서 떨어지는 그래프를 보이고 있다.
현재 이탈리아 선수단의 평균적인 경쟁력은 나쁘지 않다. 축구 이적관련 포털 '트랜스퍼마크트' 기준으로 지난 3월 당시 각국 대표팀 선수 몸값 총합을 비교해 봤더니, 이탈리아는 놀랍계도 세계 5위나 됐다. 특히 골키퍼, 수비수,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세계적으로도 비싼 선수가 많았다. 스트라이커의 경우 몸값이 비싸진 않지만 '애국자형' 모이스 킨, 중동으로 갔지만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마테오 레테기, 급성장 중인 유망주 프란체스코 피오 에스포시토가 있어 준수하다.
문제는 2선이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비싼 2선 자원 자코모 라스파도리가 이번 시즌 스페인 아틀레티코마드리드에서 적응에 실패한 뒤 자국 구단 아탈란타로 이적했다. 그 다음으로 비싼 2선은 볼로냐 윙어 니콜로 캄비아기인데 축구 강국의 주전 윙어가 될 정도의 기량은 전혀 아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로베르토 바조, 알레산드로 델피에로, 프란체스코 토티, 로베르토 만치니는 물론 안토니오 카사노, 잔프랑코 졸라 등을 배출한 국가라고 하기에는 형편없어졌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이 질문의 답은 유망주 육성의 실패에서 찾아야 한다. 이탈리아의 연령별 대회 성적만 보면 유망주에는 문제가 없는 듯 보인다. 이탈리아는 최근 3년간 U17 대표팀(2024 유로 우승, 2025 월드컵 3위, 2025 유로 4강), U19 대표팀(2023 유로 우승, 2024 유로 4강), U20 대표팀(2023 월드컵 준우승) 모두 성공을 거뒀다. 이들이 A대표팀에 올라오기만 하면 암흑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듯 보였다. 그러나 진짜 재능의 소유자라면 이미 A대표팀에서 활약해야 하는데, 연령별 대회의 주역이었던 2선 자원 중 성인 무대에서도 주전이 된 선수는 없다.
▲ 성적을 보는 근시안적 유소년 정책
이탈리아가 연령별 대회만 잘 하고 성인 무대에서 그만큼 위력을 내지 못하는 선수 투성이인 건 근시안적인 유소년 정책과 축구 풍토에서 비롯한다. 이탈리아 세리에A는 지금 어느 리그보다도 힘과 체격을 중시한다. 작년 9월 국제스포츠연구소(CIES) 통계에서 세리에A는 전세계에서 가장 평균신장이 큰 리그였다. 평균 184.7cm였는데 독일 분데스리가의 184.2cm(3위)보다도 조금 컸다. 국가별 남성 평균신장은 독일이 이탈리아보다 약 6cm나 크다는 점을 볼 때 이탈리아가 얼마나 덩치 큰 선수를 선호하는지 알 수 있다. 구단별로 보면 전세계 10걸 중 빅리그 구단이 단 셋인데 1위(칼리아리)와 3위(아탈란타)가 이탈리아 팀이었다.
덩치를 중시하는 건 유소년 육성에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4년 이탈리아축구협회(FIGC)는 TIPSS라는 유소년 평가 기준을 도입했다. 유소년 육성 명문 아약스의 전통적인 가치 TIPS(기술, 통찰, 개성, 스피드)에 체격(Struttura)를 추가한 것이다.
또한 선수평가를 계량화하고 등급화하기 위해 TIPSS 점수와 더불어 색깔 구분을 도입했다. 예를 들어 유소년팀 선수 명단을 보며 파란색은 주전, 하늘색은 후보 혹은 약팀 상대용, 노란색은 성장시킨 뒤 재평가, 빨간색은 스카우트할 가치가 없는 선수로 나눈다. 물론 선수들은 각 단계를 오르내리며 평가를 뒤집을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당장 경기에 최선의 팀을 짜기 위한 방식이지, 장기적으로 성장시키려는 시스템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접근법 때문에 '지금은 팀에 녹아들지 못하지만 장래 대성할 수 있는 재능'보다 '당장 팀에 도움이 되는 성실함'을 더 높이 치곤 한다. 대표적인 예가 라스파도리다. 뛰어난 전술지능으로 일찍 데뷔해도 1인분이 되는 선수였지만 테크닉과 스피드가 평범해 장래성은 비교적 낮은 선수였고 성인 선수가 된 뒤 고전 중이다.
▲ 유소년 육성 강국들은 일찍 알아챈 '1월생의 눈속임 효과' 이탈리아는 아직 착각 중
이탈리아의 유소년 정책이 육성보다 당장 성적에 매몰돼 있다는 건 대표 선수들의 생일을 보면 단적으로 드러난다. 2025 U17 월드컵 이탈리아 엔트리 21명 중 1월생 7명, 2월생 4명으로 절반이 넘었다. 비정상적인 수치다. 반면 9월생은 단 1명이었고, 10~12월생은 없었다. 월반한 선수는 2명이었다.
어린 나이일수록 단 몇 개월 앞서 태어난 선수가 그만큼 많이 자라 더 키가 크고 힘이 세기 마련이다. 이를 고려하지 않고 현재 실력만으로 경쟁을 붙인다면 생일이 빠른 선수들이 대체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체격에서 비롯되는 이 실력은 선수의 성장 가능성과는 무관하다. 다 컸을 때는 12월생 선수가 더 큰 키를 갖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벨기에 등 유소년 육성법 연구를 오래 해 온 국가들은 생일의 착시효과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보완책을 써 왔다. 하반기(7~12월) 출생 유망주들은 평가에서 가산점을 주는 경우도 있고, 이들을 묶어 연령별 대표 B팀처럼 따로 운영하기도 한다.
본지가 벨기에 축구협회의 황금세대 육성 비결을 취재했을 때, 그들이 밝힌 최대 성공작 중 한 명은 드리스 메르턴스였다. 에덴 아자르같은 독보적 천재는 별다른 배려가 필요 없었다. 반면 메르턴스는 다 커도 170cm일 정도로 왜소한 선수였다. 그럼에도 기술적으로 재능이 있다고 본 벨기에 축구협회는 연령별 대회 본선에 쓰지도 못할 메르턴스를 자주 선발해 관찰하며 독려했다. 어른이 된 메르턴스는 결국 세리에A 득점 2위 공격수로 발전했고, 두 차례 월드컵에서 벨기에 대표로 골을 넣었다.
메르턴스의 어린 시절만 해도 지금만큼 체계적이지 않았던 벨기에의 유소년 육성은 이제 '퓨처팀' 제도로 체격 작은 선수들을 더 배려하는 방향이 정착됐다. 2009년 도입된 퓨처팀은 U15, U16, U17에서 운영한다. 대회에 나가는 대표팀과 별도로 체격 작은 선수들을 선발하는 연령별 대표 2군 개념이다.
▲ 공염불에 그치는 개혁
FIGC는 지난 2022년 "전문가들이 이끄는 유소년 육성 전문 부서 신설, 지역별 센터 50개 설립"을 골자로 한 유소년 육성 개혁안을 내놓았다. 실행을 질질 끌다가 2025년 프로젝트를 공식 선포했고, 지난달에야 출범시켰다. 그 내용은 센터를 다수 세우는 게 아니라 유소년 육성의 새로운 기준을 만드는 가이드 작업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 가이드 작업을 주도하는 인물이 영 불안하다. 마우리시오 비시디 테크니컬 디렉터가 실무 책임자로 보인다. 스타 선수 출신 시모네 페로타, 잔루카 참브로타는 얼굴마담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비시디 테크니컬 디렉터는 유소년 육성 외길을 걸어 온 대표적 이탈리아인이다. 1980년대 파도바에서 알레산드로 델피에로를 가르쳤을 정도다. 오랫동안 FIGC에 소속돼 각급 대표팀에서 일해 왔다. 그런데 '오래 일한 전문가'란 '이탈리아 유소년 육성의 병폐를 만들고 실행해 온 인물'이라는 뜻도 된다. 그를 디렉터로 앉힌 것이다. TIPSS도 비시디의 작품이었다.
비시디 디렉터는 지난해 칠린드라타(엔진출력)라는 선수 평가 지표를 새로 개발했다. 이는 키, 체중, 30m 기록을 반영해 선수 피지컬을 평가하는 지표다. 폭발력을 훨씬 중요하게 취급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체격 위주 관점보다 한발 나아갔다고는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신체능력에 사로잡혀 있다는 건 여전하다.


▲ 이번엔 한국과 똑같은 함정에 빠질 위험이 높다
비시디 디렉터는 기술적인 2선 자원의 씨가 마른 이탈리아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이번 육성은 "기술 위주"라고 선언했다.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공을 더 많이 만지게 해야 한다"고 선언한 점을 볼 때 체격보다 기본기 위주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불안해 보이는 건 기술 발전을 위한 방법론이 '기본기 매뉴얼의 확립과 반복 훈련'이라는 것이다. "전문가 팀의 도움과 최첨단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훈련을 정확하게 반복함으로써 볼 컨트롤 능력을 향상시키고, 실전에서 최대한 활용하게 하며, 이를 위해 전국적으로 통일된 훈련 체계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술적인 선수가 단순히 공을 잘 다루는 게 아니라 경기장 내 판단이 빠르고 능동적인 선수를 의미한다는 점을 망각한 듯한 매뉴얼이다.
다시 유소년 육성 성공 사례인 벨기에로 돌아가 보면, 벨기에는 기술적인 2선을 육성하는데 철저하게 초점을 맞춘 국가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유망주가 따라야 할 획일적인 교본 같은 건 만들지 않았다. 대신 선수들이 공을 많이 만지게 하고, 더 좁은 공간에서 늘 상대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볼 컨트롤이 가능한 환경에 최대한 노출시켰다. 이를 위해 어린 나이에는 11 대 11이 아니라 5 대 5, 8 대 8 등 적은 인원으로 경기를 편성했다. 또한 전국적으로 유소년 팀이 4-4-2나 3-5-2 대형이 아닌 4-3-3 대형을 쓰게 했다. 이 모든 조치의 방향성은 '실전 속에서 드리블을 자주 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의 프로 및 유소년 지도자들은 선수 육성에 있어 불안한 점으로 '지나치게 성행하는 축구 사교육'을 꼽곤 한다. 일대일 과외 형태의 스킬 레슨이 유행하는데, 이는 사방에 상대 선수가 있는 상황이 아니라 코치와 일대일로 돌파하는 연습이기 때문에 오히려 실전에 대한 적응도를 떨어뜨린다. 한 프로 구단 코칭 스태프는 "어려서 일대일 스킬 트레이닝에 길들여져서 그런지, 어린 선수들 중 공은 잘 다루는데 일대일 상황을 만드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상대가 뒤에서 덤비면 쉽게 빼앗기는 선수가 많다"라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실전에서 쓸 수 없는 기술교육이라는 측면에서는 한국의 사교육과 이탈리아의 새로운 정책이 비슷한 함정에 빠질 우려가 있다.
이탈리아의 이 모든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눈에 보이는 성과에 집착하기 때문인데, 이 점도 한국 축구의 병폐와 비슷하게 들린다. 유소년 육성을 개혁할 때 굳이 눈에 보이는 매뉴얼을 만드는 건 '일한 티를 내야 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유소년팀의 성적을 중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렌초 울리비에리 축구지도자협회 회장은 "우리 유소년 대표팀은 좋은 성적을 내고 있으니 육성 시스템은 바꿀 필요 없다. 유망주들이 세리에A에 적응하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현상과 동떨어진 해결책을 내놓았다. 공교롭게 울리비에리는 대한축구협회 초청으로 여러 번 한국을 찾아 지도자 강습을 진행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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