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할머니와 나눈 긴 대화, 몰래 기록한 아들의 속사정

김성호 2026. 4. 7.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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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1310] 제4회 반짝다큐페스티발 <유정천리>

[김성호 평론가]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유정천리, 무정만리라 했다. 대단한 사자성어 같지만 벌써 80년은 족히 된 한국형 조어다. 1950년대엔 이를 본 뜬 영화며 유행가 가사까지 있었다니 당대의 유행어라 해도 좋겠다. 어려운 말은 아니다. 직역하면 정이 있는 천 리와 정이 없는 만 리다. 이를 다시 풀면 이렇다. 산다는 건 먼 길 떠난 나그네의 걸음과도 같은데, 정이 있다면 먼 길 가는 걸음도 가벼울 것이고 정이 없다면 고되고 고되기만 하리란 것. 요컨대 천 리와 만 리 길이 아니라 마음에 있고 없음이 중요하단 얘기다.

1리가 400미터에 조금 못 미치니, 1000리는 400킬로 가까운 먼 거리다. 한국 역사와 문학 깨나 판 사람은 알겠으나 한국서는 유달리 천 리라는 표현이 많이 쓰인다. 그건 이 거리가 반도 내 이곳과 저곳 사이를 잇는 데 꼭 적합한 단위인 때문이다. 서울부터 부산까지의 거리가 천 리쯤 되고, 된다. 서울에서 평양까지는 그 절반인 오백 리다. 남과 북으로 찢어진 두 나라는 고작 오백 리는 반세기가 훌쩍 넘도록 넘지 못하였다. 오백 리의 거리가 무정만리 만큼 멀다는 얘기.

북에 고향을 두고 남으로 떠나왔던 가까운 할아버지에게 자주 들었던 유정천리, 무정만리란 말을 오랜만에 마주했다. 정확히는 앞의 '유정천리'만이기는 하지만. 제4회 반짝다큐페스티발에서 소개된 영화의 제목이 '유정천리'였다.
▲ 유정천리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몰아치던 엄마의 말

섹션4에 소개된 안태현 감독의 <유정천리>를 호평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았다. 이 영화제의 특성상 다녀온 이들이 대개 다큐멘터리며 독립영화에 응원과 격려를 보내는 탓으로, 실상보다도 감상을 훨씬 부풀려 말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이 정도의 반응이라면 흔치 않은 '찐'일 수도 있으리란 기대감이 들었다. 제가 드러나길 꺼리고 배려심 많단 평을 받는 감독의 작품에서 그와는 전혀 다른 에너지를 느꼈단 이들 또한 있었다.

독특하다면 독특하고 평범하다면 평범한 영화다. 독특하단 건 형식이고, 평범하단 건 다루는 이야기다. 말하자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흔한 이야기를 저만의 개성 있는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뜻. 나와 같은 이야기를 너에게서 듣는 것, 때로 깊은 공감이 그로부터 일어난다.

시작은 어머니와 감독의 대화다. 이 세상은 돈이 있는 사람이 대우받고 돈 없으면 발바닥의 때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다고, 그러니까 너도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라고, 그런 말들이 쏟아진다. 아니에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문제란 걸 어머니는 왜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렇고 그런 반박이 이어진다. 격앙된 어조로 아들을 향해 쏟아내는 어머니의 말이 있고, 그에 응답하는 아들의 말 또한 있다. 그런데 앞의 것은 육성 그대로가 담기고, 뒤는 대사로 처리된다.
▲ 유정천리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삶은 어찌하여 간절한 이들을 내치는가

가족 간 내밀한 이야기를 바깥에 드러내는 게 꺼려졌기 때문일까. 적잖이 사적인 내용은 물론이고, 목소리의 진동이며 그에 담긴 심상까지가 관객 앞에 그대로 펼쳐지는 게 부담스러웠을 수 있겠다. 감독이 택한 어머니는 육성으로 말하고 아들의 말은 대사로 처리하는 방식이 독특하다. 영화는 마치 어머니에게 보내는 아들의 응답 같다. 그때 미처 전하지 못한 답 말이다.

30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영화는 영상과 소리를 대부분 달리 활용한다. 소리는 어머니, 또 할머니와 불과 몇 년 전 나눈 대화가 분명한데, 영상은 백 년도 더 된 무성영화 시절의 실험영화들에서 썼을 법한 장면으로 구현했다. 텅 빈 무대에 나와 있는 배우의 모습이 비치고, 그녀가 소리 없이 구르고 괴로워하는 장면들이 대화 내내 이어진다. 영상과 동떨어진 소리가 저마다의 효과를 구하는 방식인데, 둘을 자연스레 통합하는 방식이 일반적인 오늘의 자연스러운 연출법을 고려하면 도리어 이 같은 방식이 흔하게 쓰였을 당시보다도 실험적 효과가 크다고 하겠다.

배우가 연기하는 감정이 소리로 전달되는 어머니, 또 할머니의 지난 고된 삶과 절묘하게 이어진다. 그토록 열심히 살았는데, 열심히만 살면 모든 게 나아지고 해결되리라 믿었는데, 생이란 도무지 인간을 배려할 줄 모른다. 제 아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머니는 제 아들을 사랑해서 닥쳐오는 불행이며 팍팍한 현실 앞에 초연할 수 없다. 어머니를 이해하기 어려운 자식은 또한 어머니를 사랑하여서 저 멀리 도망칠 수도 없는 것이다.
▲ 유정천리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고전적 기법들로 새로움을 구하다

담긴 건 그저 어머니, 할머니와 나눈 대화들이다. 넉넉하지 못했고, 서럽거나 고되거나 괴롭거나 버거운 일들 또한 잦았다. 그런데도 열심히, 수고롭게 살았다. 제게 기댄 자식이 있어서였다. 가족이 있어서였다. 그들을 사랑했기 때문일 테다. 영화는 그렇게 어머니를 향한 아들의 이해와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으로 귀결된다. 유정천리, 정으로 메꾸는 천리의 먼 길이 된다. 중요한 건 천리의 떨어짐이 아니라 정이다. 이어짐이다.

텅 빈 객석 가운데 역시 텅 비어 있는 무대가 있다. 그곳에 배우 하나가, 이어 다른 배우 하나가 선다. 하나는 나이든, 그러니까 도입부에 엄마의 감정과 맞춘 듯한 연기를 펼친 이다. 뒤는 그녀의 자식쯤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다. 이들이 저마다 무성영화의 주연 배우가 된 듯 고전적 연출이 가해지는 영화 위에서 저마다의 감정을 연기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감독의 어머니와 할머니의 말이 끝나고 나면 이들 자신의 목소리가, 다분히 연극적인 대사가 돌출된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목소리가 더는 필요 없다는 듯이, 배우들이 그대로 어머니가 되고 또 감독 자신이 되어 감정이 담뿍 담긴 격한 대사들을 쏟아낸다.

표출되는 감정일랑 누구에게나 얼마쯤 있다. 누구에게나 고난이 있고 괴로움이 있고 기대가 있고 설움이 있다. 어머니 없는 이가 없고 어머니에 대한 감정 없는 이도 없다. 그와 같은 보편적 감정이 영화 가운데 극화되어 꺼내진다. 감독 개인의 폭발하는 감성일까. 현악기의 선율과 고전영화, 또 옛 실험영화에서나 볼 법한 연출 또한 이어진다. 과하지만 아주 과하지만은 않은, 색다르지만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시도다.
▲ 반짝다큐페스티발 포스터
ⓒ 반짝다큐페스티발
사람과 사람 사이 오가는 마음

어머니와 자식의 대화, 또 그 속에 담긴 이야기로부터 서사를 끄집어낼 수 있는 영화다. 그러나 동시에 서사는 중요치 않은 감정과 그 표현에 집중하는 영화로 볼 수도 있겠다. 다분히 실험적인 양식이라 말할 수도 있겠으나, 또 누구는 그와 같은 실험이 일찍이 있었고 새롭지는 않다는 점에서 그저 요즘엔 흔치 않은 표현방식일 뿐이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모두가 틀리지 않은 말이라고 여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삼백 년 전 어느 화가가 오늘에 살았다면 그저 화가이기만 하지는 않았을지 모를 일이다. 그림을 위해 음악을 연주하고, 그를 카메라로 찍어 영화로써 상영하며 그 곁에서 춤을 출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중요한 건 담긴 내용과 표현이지 양식화된 방식은 아니다. 그리하여 나는 이 영화가 그저 영화라고만 여길 뿐이다. 유정천리, 오래되고 아직 사라지지 않은 정과 거리에 대한 영화 말이다.

안태현 감독은 연출의도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몰래 기록한 어머니와 그 어머니 말소리에는 이미지가 부재했다"고, 그래서 "미도극장 뒤편 까추 단 방을 재현하고자 했던 처음 생각은 극장으로 향했다"고 말이다. 그렇게 "배우와 대사가 따라붙었고, 막무가내 욕심을 뒤로한 채 촬영은 진행됐다"고 전한다. "혼자 영상들을 재생하자면 너무 부끄러웠다"면서도 "이름도 없는 역할을 돌파하듯 수행한 문경희와, 막중한 밤을 산책하듯 거닐던 김서휘가 있었다"며 완성하여 발표할 수 있었던 이유를 말한다. "함부로 무마되려던 영화는 그들 존재의 견인에 의해 겨우 완성된다"고 하였으니, 이야말로 과연 유정천리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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