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시절 건물들이 남아 있는 싱가포르

여경수 2026. 4. 7.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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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6일, 싱가포르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나는 싱가포르의 예술만큼이나 이 건물이 걸어온 시간이 궁금했다.

예전 시청 건물은 싱가포르의 역사적인 사건들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1827년에 지어진 싱가포르 최초의 정부 건물로, 1999년까지 의회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문화 공간으로 바뀌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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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경수 기자]

3월 16일, 싱가포르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6인실 방에서 침대하나 정도를 이용한 공간이었지만 편안한 잠자리였다. 특히 숙소의 2층 공용 공간의 창가 자리가 좋았다. 그 자리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창밖을 바라보니 거리를 빗질하는 소리, 푸르른 가로수, 싱가포르를 즐기는 사람들의 담소, 상쾌한 공기까지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오래된 거리의 야외 식탁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 이들도 많았다.

나도 밖으로 나가, 아침식사로는 인도 음식점에서 프라타와 밀크티를 주문했다. 프라타는 밀가루 반죽을 겹겹이 쌓아 부쳐낸 납작한 빵으로,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한 식감이었다. 카레에 찍어 먹는 맛은 정말 좋았다. 나는 원래 밀크티를 좋아하여, 집에서도 컵에 홍차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은 후, 우유와 얼음을 넣고 나름의 밀크티를 만들어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
 싱가포르의 아침 풍경
ⓒ 여경수
나는 '싱가포르 내셔널 갤러리'로 걸어갔다. 이곳은 20세기 초반 식민지 건물 양식인 시청과 대법원이었던 각각의 건물을 하나로 이어서 만든 공간이다. 지금은 미술관으로 운영되나, 건축물 자체로도 방문할 만한 공간이다.

싱가포르는 예전 건축물을 재단장하는 실력이 탁월하다. 나는 싱가포르의 예술만큼이나 이 건물이 걸어온 시간이 궁금했다. 예전 대법원으로 쓰이던 당시의 내부도 일부는 그대로 두어, 법정이나 감옥도 보전되어 있다.

영국이 이곳에 이토록 웅장한 법원 건물을 지은 배경이 있다. 영국의 식민지 정부는 1868년부터 페낭, 말라카 등 해협식민지들의 통치공간을 이곳으로 삼고자 했으며, 특히 이곳에 해협식민지를 관할하는 최종 법원을 두었다. 즉 영국은 동남아시아 해양부 국가들의 통치의 핵심지로 싱가포르를 정한 것이다. 그러한 배경에서 영국의 군대도 싱가포르에 많이 주둔했다.
 싱가포르 내셔널 갤러리
ⓒ 여경수
예전 시청 건물은 싱가포르의 역사적인 사건들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패전한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장소이며, 1965년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로부터 분리 독립되는 것을 발표한 장소이다. 두 건물은 윗부분이 서로 연결되어 내부가 상당히 넓다. 옥상에는 싱가포르 바다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 개방되어 있었다.

많은 이들이 올라와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 역시 휘날리는 싱가포르 국기를 배경으로 바다를 찍었다. 과거 이 자리에는 한때 영국 국기, 일본 국기, 말레이시아 연방 국기가 차례로 휘날렸다. 이제는 싱가포르 국기가 게양되어, 많은 싱가포르인들의 자랑이 되고 있다.

이 건물 앞에는 원래 항구가 바로 있었으나, 현대에 들어와 간척사업으로 초고층 건축물들이 들어섰다. 쌍용건설이 시공한 것으로 유명한, 배를 머리에 이고 있는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건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싱가포르 내셔널 갤러리에서 바라본 싱가포르
ⓒ 여경수
밖으로 나와 옛 국회 건물인 디자인하우스에도 들렀다. 이곳은 1827년에 지어진 싱가포르 최초의 정부 건물로, 1999년까지 의회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문화 공간으로 바뀌어 있다.
 싱가포르 예전 의회 건물
ⓒ 여경수
식민지 시절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 건물을 둘러보니, 영국의 헌정주의가 지향하는 대의제, 법의 지배, 권력의 분립이 식민지 시절에도 적용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그렇지 않았다. 식민지 피지배민에게 헌정의 원칙은 선별적으로만 적용되었다.

그나마 식민지 시절 많은 싱가포르인들이 영국에서 유학하여 영국의 학문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였다. 그러한 지식의 축적이 독립 이후 자체적인 헌정 질서를 구축하는 토대가 되었다. 식민지의 건물들은 허물어지지 않았다. 그 안에서 새로운 국가의 헌법이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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