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순 효과 어디까지…한국기원의 골든타임 [데스크 창]

제29회 LG배에서 벌어진 ‘커제 사태’ 관련 뉴스를 접한 사람이라면 왜 그런 결정이 내려졌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른바 ‘사석룰’ 파동으로 촉발된 커제의 패배 판정에 불복한 중국은 30주년을 맞은 LG배에선 선수단이 전원 불참했다. 30회 LG배는 ‘반쪽 대회’로 개최되면서 메이저 세계대회 위상에 큰 손상을 입었다.
한국기원 측에서는 LG배 폐지 이유에 대해 말을 아끼면서도 “(커제 사태) 여파가 없지 않다”는 말을 전했다. 그런데 4월 들어 바둑 기전 일정표에 슬그머니 LG배 국내 선발전 날짜가 잡혔다. 한국기원은 오는 25일부터 30일까지 제31회 LG배 예선을 진행한다.
폐지설이 돌았던 LG배가 갑자기 부활한 배경에는 정태순 장금상선 회장이 있다. LG배 개최 일정을 홈페이지에 올리고 있는 한국기원 직원들조차 ‘폐지 확정’까지 갔던 LG배가 왜 다시 열리는지 이유를 모르는 상태다. ‘정 회장이 메인 스폰서인 LG를 어떤 방식으로든 잘 설득한 게 아니겠나’라는 추측만 무성하다.
정 회장은 지난해 9월23일 한국기원에서 열린 ‘2025년 제2차 이사회’에서 신임 총재로 추대됐다. 총재 직제는 ‘이사장’으로 변경됐다. 한국기원 신임 이사장으로 부임한 정 회장은 연일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정 회장이 한국기원 부총재 시절이던 2024년 12월30일, 한국기원은 정 회장의 기부금 130억원을 바탕으로 한서항공빌딩 잔금 132억원을 지급하면서 ‘쌍둥이 빌딩’을 모두 갖게 됐다. 한국기원 본관 옆에 나란히 서 있던 한서항공빌딩 건물은 현재는 ‘한국기원 신관’으로 불리며 각종 바둑 행사 개최지로 거듭났다. 바둑 교육과 관련된 사업에도 흔쾌히 지갑을 열었고, 여성바둑연맹 등 바둑 단체들 역시 정 회장의 후원을 받았다.
정 회장의 행보는 금전적인 지원에 그치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LG배는 비교적 최근 일이고, 시계를 돌리면 신한은행이 우승 상금 4억원을 걸고 개최한 ‘기선전’ 유치도 정 회장의 작품이다. KB국민은행이 떠나면서 큰 공백이 생길 뻔 했던 바둑리그 또한 하나은행이라는 새로운 타이틀 스폰서를 확보할 때까지 정 회장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
최근에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해졌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3월14일 “이란 전쟁이 글로벌 에너지 시장을 뒤흔드는 가운데 한국 ‘은둔형 해운 사업가’가 이번 혼란에서 가장 큰 승자 중 한 명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타전했다. 은둔형 해운 사업가는 정 회장을 지칭한다. 정 회장은 이란 전쟁이 터지기 전 VLCC(초대형 원유운반선)를 대량 매입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자 장금상선은 하루 용선료 50만 달러(약 7억6000만원), 평시 대비 약 10배 이상의 수익을 창출했다.
장금상선이 날개를 달면서 동시에 한국기원 역시 숨통이 트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 회장은 한국기원 이사장에 취임한 지 채 1년도 안 된 현 시점에서 이미 150억원이 넘는 기부금을 한국기원과 바둑계 전반에 쾌척했다. 이는 한국기원이 매년 정부로부터 받는 지원금 약 17억원의 8배가 넘는 금액이다. 이에 더해 폐지 위기에 놓인 대회를 살려내거나 후원사를 설득해 새로운 대회를 개최하도록 하는 일은 금전 가치를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중차대한 일이다.
다만 향후 숙제는 있다. 정 회장이 한국기원 살리기에 올인하면서 한국기원의 재정 여건은 크게 개선됐지만, 고질적인 행정 난맥상과 운영 미숙은 여전하다. 2026년 기준 80명의 직원을 거느린 한국기원이지만 실무 능력은 프로 스포츠 종목을 운영하는 여타 협회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장금상선을 대한민국 재계 순위 32위, 세계가 주목하는 해운사 반열에 올린 정 회장이 한국기원을 든든하게 지원하고 있는 지금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길 기대해본다.
이영재 기자 youngja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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