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는 동학군과 일본군 최초 전투지

김명희 2026. 4. 6. 18:0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은 전라도만이 아니라 경상도에서도 치열했다

[김명희 기자]

 '상주 동학농민혁명 기념탑'(도로변 작은 공원 전경과 기념탑의 모습)
ⓒ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경북 상주시 무양동 1-189번지 천변 공원에 '상주 동학농민혁명 기념비'가 있다. 그만큼 상주 지역의 1894년 역사가 치열했다는 뜻이다. 상주 동학 농민군의 활동을 시기순으로 요약,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5월 : 상주 지역 동학 농민군, 활발히 활동하기 시작
5월 10일 : 일본 영사관, 상주·선산·유곡 등을 '동학농민군 소굴'로 파악
9월 22일 : 상주 지역 동학 농민군, 상주 관아 점령
9월 29일 : 일본군 공격에 농민군 100여 명 희생, 상주에서 후퇴함.
10월 이후 : 동학 농민군 42명, 상주 소모영으로 끌려와 처형됨.

상주 최초의 농민군과 일본군 사이 전투는 8월 29일에 있었다. 이 전투는 전국 단위에서도 농민군과 일본군이 벌인 최초의 전투였다. 8월 25일 전투의 단초가 된 일이 일어났다.

농민군이 상주시 합창읍 태봉리 109-1 일대 태봉 병참부 공격을 도모하고 있을 때, 그 정보가 일본군의 귀에 들어갔다. 다케우치(竹內) 대위가 정찰에 나섰다. 다케우치 일행은 순회 중 농민군에게 발각되었고, 다케우치는 목숨을 잃었다.

9월 22일 상주 관아를 농민군이 점령했다. 그러나 9월 29일 낙동 병참부 주둔군과 부산에서 파견된 후지타(藤田) 부대의 공격을 받은 농민군은 전사 50명, 포로 2명의 피해를 입은 끝에 성을 돌려주고 말았다.

상주성 빼앗긴 뒤 계속 처형된 농민군

진주강씨 집성촌인 경북 상주시 화남면 임곡리는 농민군 지도자 강선보가 살았던 마을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누리집에 '상주 동학농민군 근거지'로 소개되어 있다. 가파른 고개를 넘어야 들어갈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관계로 임진왜란 당시 피난처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양반 출신 강선보는 평소 "거괴(두목급 우두머리)"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 때문에 소모사 정의묵은 그를 가장 먼저 체포했다. 11월 7일, 강선보와 함께 붙잡힌 강홍이와 김경준은 남사정(상서문1길 127 일대)으로 옮겨져 총살되었지만, 강선보는 주민들을 경계하려는 목적에서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태평루(관아 문루) 앞에서 효수되었다.
 (사진 위, 왼쪽) 낙동 병참부 터 (오른쪽) 광주원 터 (사진 아래, 왼쪽) 태봉 병참부 터 (오른쪽) 중모 장터
ⓒ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도로 옆 광주원 터도 농민군 처형지

상주시 화남면 상용리 588-16번지는 '상주 동학농민군 처형지(광주원 터)'이다. 25번국도를 따라 화남에서 화서 방면으로 1km 정도 가면 오른편 도로변에 버스 승강장이 있는데, 그 뒤편 풀이 우거진 곳이 광주원 터이다. 이곳에서 1894년 11월 20일 동학 접주 원성팔, 상주 농민군 김달문, 강만철, 김철명 등이 처형되었다.

농민군 체포와 처형을 주도한 인물은 김석중이었다. 김석중은 스스로 자원하여 소모영의 유격대장에 임명되었다. 그는 상주와 경상도 북부 지역만이 아니라 충청도 영동·청산·보은 등지까지 진출해 농민군 진압에 앞장섰다. 1896년 2월 24일 이강년 의병대장은 의병 창의를 하면서 당시 안동 관찰사로 있던 김석중을 공개 처형했다.

농민군 처형 주도 김석중, 이강년 의병장에 죽음

상주시 상서문1길 127 일대(남성동 118-1, 118-4, 118-3, 140-3 일대)도 '상주 동학농민군 처형지(남사정터)'이다. 경상도 북부 지역 소모사 정의묵은 1894년 10월 20일 상주를 농민군 진압의 거점으로 삼았다. 정의묵은 관아 문루인 태평루 앞과 남사정(군사 훈련장)을 주로 농민군 처형장으로 사용했다.

10월 22일 태평루 앞에서 농민군 9명이 처형되었다. 12월 12일에는 정의묵이 직접 남사정으로 가서 11월 29일 이후 체포된 7명을 처형했다. 12월 14일에도 4명을 태평루 앞에서 효수했다. 12월 22일에는 10명이 남사정에서 처형되었고, 12월 24일에도 3명이 남사정에서 처형당했다. 같은 날 태평루에서도 6명이 총살되었다.
 1894년에 상주 동학농민군이 많이 처형되었던 태평루(상주 관아 정문)가 임진왜란 북천 전적지에 옮겨져 있는 모습
ⓒ 김명희
북천 전적지에 옮겨져 있는 태평루

상주시 도시재생지원센터가 있는 남성동 1-4, 1-129번지 일대도 '상주 동학농민군 처형지'이다. 상주관아가 있던 곳이기 때문이다. 상산관과 태평루는 '상주 임란 북천 전적지' 기념공원으로 이전되었고, 이곳 태평루 터에는 표지석만 남아 있다. 어느 곳에도 동학혁명 관련 안내문이나 표지석은 없다.

상주시 모동면 용호1길 26-3(용호리 50-1) 모동면 노인회관 뒤편 공터의 주차장도 '상주 동학농민군 처형지(중모장터)'이다. 11월 13일 밤 10시쯤 모동에 도착해 5명의 농민군 지도자를 체포한 김석중은 이튿날 시장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보는 데서 포살했다.

화령 버스터미널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공터만 남아 있는 상주시 화서면 신봉리 153-1 , 153-2 일대도 '상주 동학농민군 처형지(화령장터)'이다. 11월 16일 김석중은 조왈경을 처형한 데 이어, 19일에도 3명을 화령 장터에서 총살했다. 김석중은 11월 22일에도 화령장터에서 8명을 총살했다.

살아서 계속 동학 활동을 한 김현영 집터

상주시 모서면 삼포리 164 , 165번지 일대(삼포1길 27)는 '상주 동학 대접주 김현영 집터'이다. 김현영은 강선보와 마찬가지로 양반 출신이었다. 상주관아를 점령했던 농민군이 일본군의 기습공격에 밀려 해산된 뒤에도 김현영은 상주성 탈환을 도모했다.

하지만11월 14일 김석중 부대의 습격을 받아 동지 4명이 포살되고, 호송 중 탈주했던 다른 1명도 11월 27일 처형되었다. 김현영과 그의 동생 김현양은 그때 체포되지 않고 몸을 피했다. 그들은 농민혁명전투가 끝난 뒤에도 계속 동학 활동을 하다가 1911년과 1945년에 각각 세상을 떠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상주 지역 1894년 농민군 활동은 전라도만이 아니라 경상도 지역에서도 동학의 포교가 대단했음을 증언해준다. 외세 침탈과 부패 권력에 맞서 싸운 평범한 백성들의 민족자주 평등공동체 사상은 오늘날의 후대인들이 계승해야 할 소중한 정신문화이다. 하지만 동학 유적지에서 '동학'이라는 글자를 보기가 '우물에서 숭늉찾기'보다 어려우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상주 동학 유적 일람

상주 동학농민혁명 기념비 : 무양동 1-189번지 천변 공원
상주 관아 터 : 남성동 1-4, 1-129번지 '상주시 도시재생지원센터'
태봉 병참부 터 : 합창읍 태봉리 109-1 일대
낙동 병참부 터 : 낙동면 낙동리 111 (낙동파출소)
광주원 터(처형지) : 화남면 상용리 588-16번지 일대
남사정 터(처형지) : 상서문1길 127 일대(남성동 118-1, 118-4, 118-3, 140-3 일대)
중모 장터(처형지) : 모동면 용호1길 26-3(용호리 50-1) 노인회관 뒤편 공터 주차장
화령 장터(처형지) : 화서면 신봉리 153-1 , 153-2 일대
대접주 김현영 집터 : 모서면 삼포리 164 , 165번지 일대(삼포1길 27)
농민지도자 강선보 거주 마을, 머리 무덤 : 화남면 임곡리
동학교당(경북 민속문화유산) : 상주시 우기1길 64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