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196도 사과였나...방송 못 나간 요리과학자의 이 말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순위를 남깁니다. 출연자의 이미지도 남깁니다. 그 이미지는 때로 한 사람을 대변하기도 합니다. 노출 시간이 짧은 탈락자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방송에서 다하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습니다. 제작진과 심사위원의 의견도 기다립니다. <편집자말>
[이선필, 정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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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3월 26일 오후 서울 신사동에서 만난 신동민 셰프. 그는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시즌2에 출연, '-196도 사과' 디저트를 선보였다. |
| ⓒ 정채빈 |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시즌2 첫 화의 한 장면이다. 백수저 자리에서 그를 내려다보던 셰프들은 웅성거렸다. 그리고 첫 번째 탈락자로 그가 지목되자, 웅성거림은 탄식으로 바뀌었다. 2006년 한국에 분자요리를 처음 소개한 걸로 알려진 '요리과학자' 신동민 셰프가 방송에 나온 분량은 약 5분. 방송을 통해 안성재 셰프는 "굉장히 오래된 테크닉이잖아요. 20년 전에 요리하던 걸 생각나게 하는 거라서"라는 심사평을 전했다. 재료로 택한 생사과가 요리된 사과보다 더 맛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25년이 넘는 경력의 그에겐 분명 뼈아픈 탈락이었을 터다.
그가 왜 가장 자신 있는 요리라는 과제에 '미온향(味溫香) –196도 사과'를 선보였는지, 어떤 이유로 이 서바이벌 프로에 출연했는지 방송만으론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지난 3월 26일 오후, 직접 운영하는 디저트 카페(서울 신사동 당옥)에서 만난 신동민 셰프는 "혹시 첫번째 탈락자라서 가장 먼저 섭외한 거 아닌가"라고 웃으며 기자를 맞이했다.
왜 그는 '사과'를 다시 꺼냈나
신동민 셰프가 <흑백요리사> 출연 제안을 받은 건 시즌1 때부터였다. "그때는 (넷플릭스 예능 프로) <피지컬: 100>처럼 그냥 한데 모여서 생존을 겨루는 오락 위주의 요리 프로라고 생각해 거절했다"는 사연부터 전했다. 그러다 자신이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 <마스터셰프 신동민> '감칠이'(구독자들을 부르는 애칭)들의 끊임없는 요구로 시즌2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메뉴 선정 이유와 당시 상황에 대해선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이미 어느 정도 설명한 내용이기도 하다. 제작진 인터뷰 당시 흑과 백을 선택하라는 상황에서 일부러 흑을 택했고, 사과를 메뉴로 선정한 것은 오래 알고 지낸 경상북도 안동 지역 농부와의 인연 때문이었다. 그 역시 지금은 기술 중심의 분자요리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 요리가 '구식'이라는 평가에도 일정 부분 동의한다고 했다. 기자에게 그는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면 그때부터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요리를 하겠다 생각하면서 처음부터 준비하고 간 메뉴였다"고 귀띔했다.
"흑으로 나간다고 하니 제작진들이 정말 괜찮겠냐고 물어보더라. 난 재밌을 것 같았다. 오히려 내 입장에선 백수저가 들러리일 수 있겠다는 느낌이었거든. 현장에 가니 다른 참가자분이 '감칠이에요'라며 반가워하더라(웃음). 현재 예전의 트로트 노래가 유행이듯 제가 처음 했던 분자요리를 보여주면서 추억을 소환하고, 그 농부분에게도 도움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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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3월 26일 오후 서울 신사동에서 만난 신동민 셰프. 그는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시즌2에 출연, '-196도 사과' 디저트를 선보였다. |
| ⓒ 정채빈 |
"모양은 비슷하지만 안에 들어가는 내용물이 다르다. 레시피도 다르고. 그리고 이후 제가 한국에 레스토랑을 차렸을 때 류긴 측에서 와서 협업도 했었다. 지금은 류긴이 미슐랭 쓰리 스타인데, 그땐 미슐랭을 받지 않았던 때였다. 물론 분자요리를 처음 접한 게 류긴이기에 많은 영향을 받긴 했지."
고심 끝에 준비해 간 메뉴였지만, 현장에서 온갖 화려한 재료를 가지고 온 다른 셰프들을 보고 위축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요리 도중에 어느 정도 탈락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현장 여건과 촬영 방식이 예상과 달랐기 때문이다.
"재료는 사과 하나였지만, 준비해간 도구는 천만 원을 훌쩍 넘기는 것들이다. 생각보다 만드는 게 쉽진 않다. 제 의도는 –196도에서 200도까지 오가는 요리의 질감과 식감을 느끼게 하는 거였는데 (완성 후) 1시간 정도 심사가 지연됐다. 준비한 액화질소는 거의 바닥났고, 뜨거웠던 잼 요리는 식어가고 있었다. 손을 막 흔들며 빨리 와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조금 짜증이 나긴 했다. 그때 내심 절반 정도는 포기했다. 사과잼은 너무 졸여졌고, 내가 봐도 만족이 안되는 상태였거든. 다른 요리로 준비할 걸 좀 후회되더라. 다음 참가자들에게는 식어도 맛있는 요리를 준비하라고 말해주고 싶다(웃음)."
서바이벌 결과 자체를 두고 그는 "수능 시험을 열심히 준비했는데 결과가 안 좋을 수도 있지 않나. 하나의 해프닝으로 생각한다. 쿨하게 받아들인다"면서도 "다만 방송 홍보 포스터에 제가 담기는 바람에 '감칠이'들께 너무 기대감을 심어주고 부응 못 한 게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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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민 셰프가 직접 밤타래 치즈 케이크를 만들고 있다. |
| ⓒ 정채빈 |
"트로트를 두고 올드하다고 하진 안잖나. 하나의 문화가 됐듯이 분자요리도 비슷한 것이라 생각한다. 저도 좀 젊었을 땐 기술적 부분만 강조한 면이 있다. 분자요리가 일종의 재미(fun) 요소거든. 이게 사실 대중에 매우 가까이 다가와 있다. 뻥튀기나, 솜사탕, 구슬 아이스크림 등 이런 게 다 분자요리다. 근데 그때 당시엔 익숙하지 않았던 새로운 모양, 기술을 보고 분자요리라고 칭했고, 업계에선 하나의 유행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안성재 셰프 같은 분들이 어렸을 땐 동경하고 좋아하기도 했겠지만, 이미 지나버린 것처럼 느낄 수 있다. 마치 '두쫀쿠'처럼 말이다. 엄청 유행하다 푹 꺼졌잖나. 셰프들에게도 (분자요리가) 그런 느낌인 거다. 전 앞서간 분자요리 기술을 보여주고자 한 게 아니라 그때 유행이던 감성을 요즘엔 잘 모를 수 있으니 한번 선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 라운드에서 더 깊은 요리를 보여주자는 전략이었다."
경력에 비해 신동민 셰프의 대중적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대중매체에 많이 노출되지 않은 탓도 있다. 실제로 이번 <흑백요리사>를 빼면, 그가 본격 예능에 출연한 사례는 없다시피 하다. 생활 정보 프로그램이나 어린이 과학교실 같은 프로를 제외하고 방송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일본 가정식 개발과 재료 공부, 약선 음식에 매진해왔다. 서바이벌 예능 출연 자체가 그에겐 하나의 이벤트인 셈이다.
"(2006년 이후로 여러 출연 제안이 있었지만) 전 다 거절했다. 당시 최현석 셰프 등 동료들이 열심히 방송 활동을 했는데 전 하고 싶진 않았다. 셰프테이너(셰프와 엔터테이너의 합성어)란 단어도 있지만 나름 진정성으로 승부하고 싶었다. 물론 출연자들이 진정성 없다는 게 아니다. 유명세에 휩쓸려 중심을 잃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저도 여러 사례들을 봤을 거 아닌가. 유명해진 셰프들이 투자를 받아서 레스토랑을 차려도 운영이 쉽지 않은 경우가 꽤 있었다. 지금이야 반짝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저도 예전엔 테크닉에만 꽂혀있었는데 지금은 본연의 재료를 최대한 살려서, 가공하지 않고도 맛을 내는 데에 집중하려 한다. 좋은 술과 좋은 음식을 성심껏 내주면서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요리를 하고 싶다. 그게 서바이벌 프로 출연 전후로 내린 답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 그래도 후배들에겐 출연해보라고 적극 권한다. 본인이 하고 싶은 걸 지키려면 생계를 이어야 하니까. 제가 아는 작가들을 소개해주기도 하고 한다."
그가 2014년부터 꾹꾹 쌓아온 유튜브 콘텐츠들도 그를 닮았다. 주의를 끄는 자극적 내용이나 출연자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이 개발한 레시피로 요리한 영상을 올리거나 동료 셰프들의 식당을 방문해 담소를 나누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흑백요리사> 시즌1 출연자였던 간귀(현상욱), 이번 시즌에 함께 출연한 무쇠팔(박주성 셰프) 등의 업장을 찾아가 요리를 소개하거나 신진 셰프들의 경연 대회를 찾아 소식을 전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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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26일 오후 서울 신사동 카페 당옥에서 신동민 셰프를 만났다. 그의 매장 벽에 있는 문구들. |
| ⓒ 정채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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