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선 시인, 제주4.3 추념 시집 두 권 잇따라 펴내

원성심 기자 2026. 4. 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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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일기 '법 아닌 법 앞에서', 4·3레퀴엠 '천둥의 밤을 지나온 자들이어서'

허영선 시인(전 제주4.3연구소장)이 제주4.3 78주년에 즈음해 두 권의 시집을 펴냈다. 

이번에 출간한 시집은 4·3 레퀴엠 성격의 '법 아닌 법 앞에서'(도서출판 마음의숲)와 '우린 천둥의 밤을 지나온 자들이어서'다.

두 시집은 제주 4·3이라는 거대한 비극을 '법정'과 '삶의 현장'이라는 두 축으로 재구성한다.

'법 아닌 법 앞에서'가 국가 폭력에 의해 훼손된 명예와 존엄을 법적으로 복원하는 '증언의 기록'이라면, '우린 천둥의 밤을 지나온 자들이어서'는 그 모진 세월을 견뎌낸 존재들의 내면과 생명력을 응시하는 '생의 기록'이다. 
'법 아닌 법 앞에서'
'우린 천둥의 밤을 지나온 자들이어서'

두 시집은 민족과 역사라는 조건에 묶여 있으면서도,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언어의 리듬과 이미지를 통해 우리 의식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진실을 붙들고 있는 시의 진술이 어떻게 오늘날의 우리를 깊게 떨리게 하는지 증명해 낸다.

'법 아닌 법 앞에서'는 4.3당시 영문도 모른채 군경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한 생존수형인과 행방불명 수형인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재심 재판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21년 3월 16일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 내란죄와 국가전복 음모라는 무시무시한 죄명 아래 70여 년을 숨죽여 살아야 했던 이름들이 다시 호명된다. '법 아닌 법 앞에서'는 4·3 당시 불법 군사재판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거나 행방불명되었던 이들이 재심을 통해 존엄을 회복하던 그 역사적 찰나를 시적 언어로 포착한 첫 시도이자, 진실을 향한 시의 첫 발걸음이다. 

허영선 시인은 재심 법정에 흐르던 유족과 생존자들의 피맺힌 증언, 그 가슴에 꾹꾹 눌러 담았던 말들을 시로 벼려냈다. 법정의 건조한 공기를 진실의 진동으로 바꾼 이 시집은, 시가 진실을 붙들고 있는 가장 뜨거운 진술의 현장이다.

'우린 천둥의 밤을 지나온 자들이어서'는 제주4·3을 '과거의 눈물'로 소비하기를 단호히 거부한다. 시인은 국가의 비수 앞에 학생복조차 입어보지 못한 채 산산조각 난 아이들의 시린 눈동자를 직시하며, 70년 전의 비극을 우리 곁의 '현재형 고통'으로 소환한다.

이 기록은 슬픔의 전시가 아니다. 주홍빛 테왁보다 뜨거운 불구름 속을 헤엄쳐 건너온 여인들의 고백은, 연민의 대상이 아닌 스스로 생을 밀어 올린 주체적 역사의 증명이다. 시집의 탁월함은 성급한 위로나 단정으로 사건을 매듭짓지 않는 데 있다.

이해받기보다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질문하며 작동하는 언어. 기억의 외딴집에 유폐되었던 진실을 마당으로 불러내는 시인의 문장은, 4·3을 과거의 감옥에서 해방시키는 거대한 종소리가 된다.

철 따라 그곳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 철을 잃어버린 아이들 / 노래를 잃어버린 새처럼 / 사랑을 잃었어 / 소년을 잃었어 / 학생복을 잃었어 / 어린 손가락을 뚫고 나갔어 / 물어뜯긴 철없는 산산조각 〈철을 잃은 아이들〉 中

이 시집은 단순히 울기 위해 쓰인 기록이 아니다. 홀로 던져진 허허벌판에서 자식의 손을 놓지 않기 위해, 주홍빛 테왁보다 뜨거운 불구름 속을 헤엄쳐 건너온 여인들의 고백이다. 시인은 그들의 삶을 '비극'이라는 박제된 단어에 가두지 않고, "한 숟갈 먹으면 살아지려나"라고 묻는 생존의 절박함을 보여준다. 기죽지 않고 스스로를 불태우며 생을 밀어 올린 여인들의 목소리는 4·3을 '살아낸 역사'로 치환하며, 그 자체로 거대한 역사적 심판이자 인간의 존엄을 시적 영역 안으로 기어이 획득해 낸 결과물이다.
'4.3북토크' 행사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 부부와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허영선 시인.

허영선 시인은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심상' 신인상을 통해 등단했고, 저서로는 시집 '추억처럼 나의 자유는', '뿌리의 노래', '해녀들', 산문집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 역사서 '제주4·3을 묻는 너에게' 등이 있다. 제주4·3연구소 소장을 역임했고 김광협문학상을 수상했다. 

한편, 허 시인은 이번 두권의 시집 발간에 따른 '4.3 북토크'가 제78주년 4.3희생자추념일인 지난 3일 오후 7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책방지기'로 있는 경남 양산시 평산책방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문재인 대통령 부부도 참석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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