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아이를 껴안은 어미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안소민 2026. 4. 6.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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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들이 전사했습니다."

케테 콜비츠는 1914년 10월 22일 아들 페터의 전사 소식을 듣는다.

케테 콜비츠는 페터를 전쟁에 아들을 보낸 후 이런 일기를 쓴다.

케테 콜비츠는 둘째 아들 페터를 제1차 세계대전에서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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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케테 콜비츠> 평전

[안소민 기자]

"당신의 아들이 전사했습니다."

케테 콜비츠는 1914년 10월 22일 아들 페터의 전사 소식을 듣는다. 케테 콜비츠 부부는 애초 아들의 입대를 반대했다. 그러나 그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죽음을 예감했던 걸까. 케테 콜비츠는 페터를 전쟁에 아들을 보낸 후 이런 일기를 쓴다.

'다시 한번 이 어린 것의 탯줄을 잘라내는 심정이다. 살라고 낳았는데 이제 죽으러 가는구나.' - 1914년 10월 10일(p.145)

케테 콜비츠는 둘째 아들 페터를 제1차 세계대전에서 잃었다. 약 30년 후인 1942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손자 페터를 잃는다. 두 번의 전쟁은 케테 콜비츠에게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남겼다. 그러나 케테는 이 커다란 시련에 굴하지 않았다. 죽는 순간까지 예술을 통해 이 세상의 거대한 불평등과 폭력을 고발하고 저항해 왔다.
 카테리네 크라머가 쓴 <케테 콜비츠>
ⓒ 이온서가
<케테 콜비츠>(2023년 10월 출간)는 예술가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인간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짊어지려 했던 케테의 삶과 작품 세계에 대해 쓴 책이다. 케테의 탄생과 성장기부터 시작해서 그의 작품이 어떻게 달라지고 더욱 깊어졌는지 그 과정을 따라간다. 콜비츠는 누구보다 민중적인 작가였다. 그에게 예술작품은 하나의 예술적 재능과 영감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사회에 필요한 또 하나의 목소리였는지 모른다.

이 책의 저자 카테리네 크라머는 케테 콜비츠의 평생 예술 활동을 두고 '강요된 의무처럼 일했다'라고 기술한다. 즉 어떤 작품의 예술성이나 완성도와 같은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어떤 작품이 반드시 지녀야만 하는 필연성을 고심'했다. 그 필연성이란 무엇일까. 그의 작품이 꼭 보여줘야만 했던 것은. 그것은 어떤 이념이나 사상이 아닌, 보편적인 인간의 평등과 평화, 인간다움 아니었을까.

프롤레타리아의 고통과 비참함을 작품의 주요 소재로 다룬 콜비츠는 아이러니하게도 프롤레타리아와 혁명의 여성 예술가로서 정치적 입장을 선택하길 강요받는다. 그러나 케테는 자신의 예술작품이 어떠한 정치적 이념이나 사상의 도구로서 인식되고 활용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녀의 작품은 물론이고 그녀 존재 역시 어떠한 정치적 입장에 위치 지어지길 거부했다. 이러한 케테의 입장은 그녀가 쓴 일기에 잘 드러난다.

'실로 사람들은 한 예술가에 대해, 더구나 그가 여성인 경우에는 요즈음처럼 어처구니 없이 복잡한 상황에서 정확하게 자신의 입장을 세우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 1920년 10월(p.84)

민중적이었던, 민중이 되려 했던 케테 콜비츠

케테는 사회주의자였던 부모 아래에서 자랐다. 그녀의 부모는 매우 진보적이었고 진취적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온 가족이 한데 둘러앉아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었다. 여자의 학교 교육이 보편적이지 않았을 때, 그녀는 부모님 덕분에 미술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케테의 남편 카를 역시 사회주의자였으며, 민중을 위해 무료 진료소에서 일했던 의사였다. 두 사람은 늘 하층민의 고통과 불행을 함께 하려 했다. 케테는 철저한 사회주의자였지만 그 이념에 봉사할 뜻은 없다. 그녀의 작품은 어떤 이상이나 이념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미술 작품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그 깊은 울림이란 인간으로서 겪는 보편적인 슬픔, 고통, 비통함이다. 새끼를 잃은 어미의 고통, 전쟁에서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의 비통함, 인간답게 대우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비애.

케테는 아들 페터를 잃고 난 이듬해 일기를 쓴다.

'나의 아가야, 봄이 왔다.' -1915년 4월 11일(p.148)

케테의 작품은 그가 살았던 20세기 초에 국한되지 않는다. 죽은 아이를 껴안고 창자가 끊기는 듯한 고통으로 울부짖고 있는 저 어미의 고통은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위험한 산업 현장에서, 살인적인 감시와 통제가 지배하는 일터에서, 아무런 명분도 이유도 없는 전쟁터에서.

요즘의 실상을 보면 케테는 뭐라 할 것인가. 그가 평생 추구하고자 했던 인간다운 삶, 평화와 평등과 같은 보편적 이념은 아직도 요원한 일일까. 케테가 꿈꾼 '봄'은 언제쯤 올 것인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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