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에 끌려간 '빼벌'...'양OO'라 불린 그녀를 아십니까
<국회에 온 '당신의 이야기'>는 사회적 갈등의 최전선이자 해법을 찾는 공간인 국회에서 생략되고 지워져 온 목소리에 주목합니다. 저마다의 이유를 품고 국회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마이뉴스 국회 출입기자가 전합니다. <편집자말>
[복건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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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 기지촌 '미군 위안부'로 살았던 이순자(가명·67)씨가 지난 3월 15일 경기도 한 공간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 ⓒ 복건우 |
이순자는 '이순자'이고 싶었다.
"양갈보", "양공주", "양색시"는 이순자(가명·67)가 '그곳'에서 불리던 멸칭이었다. 폭력과 범죄가 횡행한 그곳에서 그는 성매매를 강요당했고 수용소에 강제로 구금당했다. 그는 멸칭으로 불리다 '무연고 사망자'로 지워진 언니들처럼 죽고 싶지 않았다. 그는 67년 인생 처음으로 국회를 찾았다. 그는 국회에선 잘 이야기되지 않는 "미군 위안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
이순자는 2시간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자주 한숨을 쉬었다. 그곳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지금도 잊을 만하면 계속되는 고통을 증언하며 그는 자신을 멸칭이 아닌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했다. '이순자'로 불리지 못했던 기억들을 따라가며 이순자가 50년 전 어린 시절의 이순자와 마주했다.
"단발머리 열여섯 살 때 그렇게 된 거거든."
그가 기억을 비집고 '기지촌'으로 들어갔다.
벗어날 수 없고, 떨쳐낼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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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 기지촌 '미군 위안부'로 살았던 이순자(가명·67)씨가 지난 3월 15일 경기도 한 공간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 ⓒ 복건우 |
그곳은 "컴컴한 방"이었다.
"부서진 장롱, 얼룩진 침대, 그 쓸모없는 물건들을 내가 다 산 거래요. 그러면 그게 빚이 되는 거야. 빚을 갚아야 거기서 나갈 수 있는데 못 갚으니까 포주는 계속 나를 데리고 있는 거야. 맨날 울면서 집에 간다고 하면, 맨날 매를 맞고 욕을 듣는 거야."
10대의 어린 나이에 미군 위안부들은 잠잘 데나 일자리를 알아봐 준다는 말에 속아 기지촌으로 납치·인신매매되곤 했다. 열여섯 살의 이순자도 1975년 인신매매를 당해 빼벌(경기 의정부 고산동 옛 미군 기지촌)에 들어갔다. "어딘지도 모르고" 도착한 포주집에서 주인(포주)과 클럽 매니저는 이순자에게 약을 먹게 했다. "러미라"와 "세코날" 같은 마약류였다. 그는 약에 취한 몸으로 미군들을 상대했다. "분홍색 알약 30알"을 강요받고 자해도 해 봤지만 그곳을 벗어날 순 없었다.
빼벌에서 탈출한 지 한 달 만에 그는 다시 인신매매단에 붙잡혀 동두천으로 끌려갔다.
"동두천에선 내 이름이 없이 살았어요. 타인의 이름으로 산 거야. 미성년자다 보니까 남의 이름으로 만든 검진패스(보건증)를 내고 미군 부대 안에 들어가 몸을 팔았어요. 깡통같이 생긴 배럭스(막사), 거기가 우리가 몸을 팔던 곳이야."
이순자는 캠프 케이시(경기 동두천 보산동 미군 기지) 인근 보산리 기지촌에서 1~2년을 보냈다. 부대 안 "게이트웨이클럽"을 지나면 보이는 빈 막사에서 그는 미군들을 상대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떠올린 기억들 사이사이엔 "가슴 아픈 일"이 너무 많았다. "컨택"(성병에 걸린 미군이 성매매한 여성 지목)과 "토벌"(미군·경찰·보건소의 합동 단속)도 "멋대로" 벌어졌다.
동두천에서 팔려간 아메리칸타운(전북 군산 미군 기지촌)에서 폭행은 더 가혹해졌다. 하루는 "검은 미군"이 뒤에서 느닷없이 그의 목을 졸랐다. "살려달라"고 소리치자 한 여성이 미군 헌병을 불러왔다. 그러나 어떠한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 "아픔"과 "억울함"을 견딜 수 없던 이순자는 포주를 따라 턱거리마을(동두천 광암동 미군 기지촌)로 옮겨갔다. 옮겨간 뒤에도 미군을 상대로 "돈을 벌어와라"는 포주의 착취는 1년간 지속됐다.
"자갈밭"에서의 참혹한 기억도 떨쳐지지 않았다.
"미군들이 우리를 트럭에 태워서 간 자갈밭에 얇은 담요 하나를 깔아놓으면 거기서 몸을 팔아야 했어요. 그럼 등가죽이 다 까지는데, 얼마나 짐승 같아요. 우리도 인권이 있는데, 하나의 인간인데, 그건 아니잖아요. 너무 억울해요, 너무 힘들어요."
떨쳐지지 않는 기억들이 떠오를 때마다 입에선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
의정부로, 동두천으로, 군산으로, 다시 동두천으로, 4년간 미군에 끌려다닌 이순자가 "자유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미군과의 결혼이었다. 그는 미군 남성과 결혼해 1979년 미국에 간 뒤에야 기지촌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때 그의 나이는 스무 살이었다.
언니들이 도망치고 죽던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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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3월 15일 경기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낙검자 수용소) 건물이 철조망과 펜스에 둘러싸여 폐허로 남아 있다. |
| ⓒ 복건우 |
겨울이 가고 봄이 온 3월의 동두천에는 산을 오르려는 등산객들이 몰렸다. 소요산역을 나와 등산로를 지나면 철조망으로 출입을 막은 '성병관리소(낙검자 수용소)' 건물이 폐허의 모습을 드러냈다. 7개 방에 140명을 수용할 수 있던 2층짜리 건물이 앙상한 나뭇가지에 싸여 있었다.
이순자는 50년 전 이곳에서 세 차례 감금당했다. 짧게는 2~3일에서 어떨 땐 5~6일을 갇혀 있었다. 성병 검진에서 떨어진 '낙검자' 여성들이 철창 안에서 페니실린을 맞고 "쇼크하거나 죽기도 했다"고 당시 10대였던 그는 떠올렸다.
"왼쪽 엉덩이에 페니실린을 맞으면 다리가 끊어질 듯이 아팠어. 언니들은 거기서 도망치려고 2층에서 뛰어내리다 다리가 부러지고. 우리가 죽어야만 그 악몽이 없어지는 건데, 누가 그곳을 보존하고 싶겠어."
성병관리소 보존과 철거를 둘러싼 지자체(동두천)와 시민단체(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의 인식차만큼 미군 위안부들의 생각도 각기 달랐다. 공동대책위는 기지촌 여성의 인권침해를 상징하는 성병관리소를 문화유산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동두천은 "소요산 확대개발 사업의 핵심 입지"인 성병관리소 건물에 대해 "철거를 전제로 하는 입장"이다(손솔 진보당 의원실 자료). 이순자는 과거의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하는 성병관리소가 남아 있는 자체가 고통이라고 증언했다.
남편의 폭력을 피해 돌아온 한국
기지촌을 벗어났지만 이순자의 결혼 생활에서도 악몽은 다시 시작됐다.
"결혼 생활하면서 남자가 휘두르는 게 뭐겠어요?"
이순자가 인터뷰 도중 주먹을 쥐어 보이며 말했다. 두 손으로 목이 졸라지는 시늉도 했다.
9년간 이어진 남편의 폭력을 피해 1988년 한국에 돌아온 이순자는 체류기간 초과로 미국 영주권을 박탈당했다. 4살, 7살 때 헤어진 두 딸을 그 뒤로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본의 아니게 내가 아이들을 버렸다"며 "모든 게 내 잘못이고 미안하다"고 그가 지난날을 자책했다.
"겨우 목만 내놓고 숨만 쉬어요."
기지촌을 나온 뒤로는 우울증과 공황을 앓았다. "늘어나는 정신과 약"을 감당하기 버거웠고 "사람처럼 살지 못했던 악몽"에 시달렸다. 매달 수급비로 생활하며 "아이들을 보고 싶은 마음"으로 힘들어했다. '결심'을 한 건 2025년 9월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혹독하게 살았는지 세상에 알리기 위해" 이순자는 기지촌 여성들과 함께 주한미군을 상대로 소송에 나섰다. 지난 3월엔 처음으로 국회를 찾았다. 그는 국회와 국회의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죽기 전 이순자의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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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3월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주한미군 성착취 규명 국회 토론회'가 손솔·장철민·임미애·전진숙·이주희 국회의원과 주한미군성착취규명공대위의 공동 주최로 열렸다. 주한미군 기지촌에서 '미군 위안부' 생활을 한 여성들이 이날 토론회에 20명 가까이 참석했다. |
| ⓒ 복건우 |
'기지촌 언니들'은 손을 맞잡고 국회 안으로 걸어갔다.
지난 3월 6일 '주한미군 성착취 규명 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 20명 가까운 노년 여성이 국회의원회관을 찾았다. 백발의 곱슬머리를 하고, 돋보기 안경을 쓰거나, 스카프를 두른 평범한 여성들은, 나이와 지역은 다르지만 젊은 시절 기지촌에서 비슷한 피해를 겪었다. 이순자도 토론회장 중간 자리에 앉아 한 여성의 증언을 들었다. "그만큼 힘들었다는 거지, 우리는 다 알고 있어"라며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다른 위안부들하고 같이 미군 부대에 소송을 하고 있읍(습)니다. (...) 미군들은 위안부들 이야기가 과거 이야기라며 무시하는 것 갇(같)습니다. 미군들은 우리를 그렇게 만든 거에 대해서 이제라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 저는 미국에게 사과를 받을 때까지 이 소송을 끋가(끝까)지 할 겄(것)입니다." (기지촌 여성 지원단체 '새움터' 소속 한 미군 위안부의 증언문 일부)
기지촌 위안부 당사자들은 2014년 국가배상 소송 이후 2022년 대법원에서 기지촌 성매매에 대한 국가 책임을 8년 만에 인정받았지만, 거기서 머물지 않고 새로운 싸움을 시작했다. 이순자를 포함한 117명은 2025년 9월 주한미군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첫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이 소송의 피고는 '대한민국'이지만, 한국과 미군 당국을 "공동 불법행위자"로 규정하고 공동의 손해배상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다.
"지나가는 말로 '아임 쏘리(I'm sorry)'가 아니라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죠. 캠프 케이시에서 제일 높은 사령관이 우리한테 와서 사과해야 진정성이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진실된 사과라면 위안이 많이 될 테니까, 언니들도 남은 삶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살다 돌아가셨으면..."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기지촌 여성 피해자들에게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한국 정부 처음으로 사과했지만 이순자는 그 말을 믿지 못했다. 불신의 근거는 그동안 세상이 그들을 대해 온 태도였다. "양갈보", "양공주", "양색시"로 멸시받으며 "사람을 못 믿고 산다"는 이순자가 죽기 전 부탁을 말했다.
"우리는 죽으면 그동안 '번호'로 남았잖아요. 상패동 공동묘지를 보면 말뚝에 번호가 적혀 있는 곳이 많았어요. 그게 다 동두천에 있던 언니들, 자살한 언니들, 미군에 맞아 죽은 언니들의 번호예요. 저는 그렇게는 안 남고 싶어요. 죽으면 번호가 아니라 우리 이름을 장례식에서 써 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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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3월 15일 경기 동두천 상패동 공동묘지 일대에 공원 조성 공사가 진행 중이다. |
| ⓒ 복건우 |
상패동 공동묘지(경기 동두천 상패동 산18) 일대엔 현재 공원 조성 공사가 진행 중이다. 분묘 1007기(유연분묘 227기, 무연분묘 780기)가 2025년 12월 이전을 완료했다. 수풀에 싸여 있던 무연고 분묘들은 파묘 후 300㎞ 넘게 떨어진 추모공원(경북 경주 영호공원)에 봉안됐다. 두개골이 또렷하게 남아 있거나, 형태를 알아볼 수 없거나, 소수의 뼛조각만 수습되기도 했다. 그중 기지촌 여성 분묘의 비중은 확인되지 않는다(손솔 의원실이 동두천시에 확인한 결과, 공동묘지 일대 무연고 기지촌 여성 묘지 관련 자료 '부존재'). 봉안된 유골함은 10년간 보존·관리된다(2034~2035년까지 봉안 후 소멸).
국회와 국회의원들에게 이순자가 바라는 건 "인간 대접"을 위한 법이었다. 피해자의 남은 삶을 보호하고 가해자는 강력히 처벌해 달라는 법이었다. 새움터에선 미군 위안부 당사자들과 함께 만든 '군 주둔지역 성착취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가칭)'이 발의를 준비 중이다. 미군 위안부 문제의 진상규명과 피해자 지원을 위한 법안은 지난 19대 국회부터 발의와 폐기를 거듭하다 이번 22대 국회에선 발의조차 되지 않았다.
그동안 남의 이름과 멸칭으로 불려 온 이순자는 남은 생을 온전한 '이순자'로 살길 바랐다. "달러 버는 기계"가 아니라 "대한민국 한 사람"으로서 자신을 불러 달라며 그는 마지막 부탁을 남겼다.
"우리를 짐승으로 몰지 않고 한 인간으로 대해줬으면 해요. 우리의 고통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국회의원 300명이 힘을 합쳐 주세요. 미군 위안부들을 제발 좀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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