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조 원 걸린 광역 통합, 마·창·진 사례가 던지는 경고
[이영광 기자]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간 행정 통합이 이슈로 떠올랐다. 행정 통합은 예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예전엔 기초 자치 단체의 통합이었다면 이번엔 광역 자치 단체의 통합이다. 가장 큰 이유는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지역 소멸 때문이다. 그런데 통합하면 지역 소멸이 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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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 |
| ⓒ KBS |
- 방송 끝낸 소회가 어떤가요?
"복합적인 마음이 드는데요. 지금 전국적으로 다시 불붙고 있는 행정 통합 논의를, 이미 통합을 겪었던 마산·창원·진해의 사례를 통해 차분하게 짚어봤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었고요. 취재하면서 느낀 건, 통합이라는 게 단순히 행정구역을 합치는 문제가 아니라 주민의 삶과 정체성, 그리고 지역의 미래가 걸린 문제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방송이 끝났다고 질문이 끝난 게 아니라, 오히려 이제부터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 다큐멘터리 중간에 애니메이션을 넣으셨더라고요.
"행정 통합이라는 주제가 굉장히 추상적입니다.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야 하는데, 사실 눈에 보이는 대상이 없어요. 현장을 찍는다고 해서 이 정책이 설명되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이걸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시청자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마침, 함께 작업한 촬영기자 선배가 이전 작업에서 만화 형식의 표현을 활용했던 경험이 있었고, 요즘은 영상툰 같은 형식도 익숙하잖아요. 그래서 비유적인 서사를 하나 만들어서 중간에 넣으면, 이 복잡한 논의를 조금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다 싶어서 장치를 끼워 넣었어요."
- 왜 행정 통합을 취재하게 됐나요?
"이미 마·창·진(마산·창원·진해)처럼 한 번 통합을 경험한 사례가 있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지금도 평가가 엇갈리고 있잖아요. 그걸 보면서 '왜 다시 통합일까'라는 질문이 먼저 들었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20조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재정이 걸려 있잖아요. 이건 단순한 정책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결단이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중앙정부가 왜 지금 통합 카드를 다시 꺼낸 건지, 과거와 무엇이 다른지 그 배경을 먼저 따져보고, 이 선택이 미래에 잘못된 결정으로 남지 않으려면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까지 짚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 1990년대 김영삼 정부에서 시와 군이 통합했잖아요. 그때와 지금 논의하는 통합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김영삼 정부 때 통합은 지방자치제가 부활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이른바 도농 통합이었어요. 전국적으로 시와 군을 묶어서 행정구역을 정비하고, 중복된 행정조직을 줄이거나 도시와 농촌 간 격차에 대해 완화하려는 목적이 컸죠. 반면 지금은 그때와는 결이 다릅니다. 지금의 행정 통합 논의는 '효율을 높이자'는 차원을 넘어서, '이대로 두면 지역이 버티지 못한다'는 위기 인식 속에서 등장한, 일종의 생존 전략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같은 '통합'이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당시와 지금은 출발점 자체가 다르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 지금 창원 분위기가 어때요?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었어요. 촬영하면서 어느 인물이 자기소개를 하는데, '마산에 사는 누구입니다'라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사실 행정적으로는 마산이라는 이름이 사라진 지 오래됐잖아요. 근데 그분 감각 속에는 여전히 마산이 살아 있는 거예요. 이게 단순히 말버릇이라기보다, 그 지역에서 쌓아온 시간과 기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거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행정은 한 번에 바꿀 수 있지만, 사람의 정체성까지 한 번에 통합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합쳐졌다'는 거와 '섞였다'는 건 전혀 다른 얘기예요. 흥미로운 건, 세대가 바뀌면서 이 경계가 조금씩 흐려지고 있다는 겁니다. 젊은 분들은 마산이냐 창원이냐를 크게 구분하지 않는 모습도 있었거든요."
- 마·창·진 통합할 때 주민 투표를 하지 않았나요?
"당시 통합은 주민 투표 없이 시의회 의결로 이뤄졌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치권의 영향력이 상당히 컸다는 증언들이 이번 방송에 그대로 담겼고요. 당시에는 지방의회 구조상 국회의원의 공천권 영향력이 굉장히 강했던 시기였습니다. 게다가 통합 의결 직후가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었기 때문에, 시의원들 입장에서는 공천에 대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요. 실제로 전직 시의원들이 그 압박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걸 특정 정치인의 문제로 보기보다는, 주민 의견을 충분히 묻지 못한 채 속도전으로 추진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구조적인 한계로 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옛 마산·창원·진해 출신 세 명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찍으셨더라고요.
"사실 이번 작업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던 시퀀스입니다. 아이템을 준비할 때 가장 먼저 떠올렸던 장면이기도 하고요. 통합이라는 정책은 보통 숫자와 제도로 설명이 되잖아요. 인구가 얼마가 되고, 경제 효과가 얼마라는 식으로요. 그런데 현장에 가보니까 전혀 다른 언어로 나타나더라고요. 사람들 사이에서는 감정으로 드러납니다. 누가 더 손해를 봤다고 느끼는지, 누가 소외됐다고 생각하는지, 또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런 미묘한 긴장으로요. 마산, 창원, 진해 출신 세 분을 한 자리에 앉힌 건 그걸 가장 생활적인 언어로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세 분의 대화 안에, 통합 이후 16년의 감정과 관계가 굉장히 압축돼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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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BS1 ‘시사기획 창’은 ‘마산아재와 20조’ |
| ⓒ KBS |
"취재 과정에서 그런 정서를 많이 느꼈어요. 처음에는 '이름이 사라진 도시'라는 측면에서 마산에 좀 더 집중해서 봤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까 창원도 불만이고, 진해도 불만이더라고요. 주민들이 말하는 불만의 핵심을 들어보면, '왜 합쳤느냐'가 아니라 '합친 뒤에 왜 이렇게 운영됐느냐'에 더 가까웠어요. 약속이 어떻게 이행됐는지, 지역 간 균형이 제대로 유지됐는지, 주민 의견이 얼마나 반영됐는지, 그 부분에 대한 불만이 쌓여 있는 거죠."
- 방송을 보면 마산 지역은 쇠락하는 것 같아요.
"저는 이걸 마산만의 문제로 보지는 않아요. 마산은 그 변화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일 뿐이고요. 통합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규모를 키워 경쟁력을 높이자는 논리인데, 실제로는 통합 이후 어떤 지역에 자원과 기능이 집중되고 어떤 지역은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문제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통합 그 자체가 아니라, 통합 이후에 어떤 계획을 세우고 어떤 균형 장치를 두는지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마산 사례는 특정 지역의 하소연이 아니라 통합 정책 전반에 던지는 질문이라고 봅니다."
- 지금 관심 중 하나가 광주와 전남의 통합이잖아요. 원래 광주가 전남 안에 있었고 분리된 거니까 통합해도 마·창·진처럼 이질적이진 않을 것 같은데.
"광주와 전남은 역사적, 생활권적 연결성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점에서 마·창·진과는 조금 다른 조건이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통합 이후 갈등이 자동으로 사라진다고 보긴 어렵다고 봐요. 결국 핵심은 정체성의 유사성보다도, 통합 이후 재정과 권한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중심 도시와 주변 지역의 관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주민들이 그 과정을 얼마나 납득하느냐에 있다고 보거든요."
- 원래 하나였던 때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요?
"겉으로 보면 '원래 하나였으니까 다시 합치면 되지 않느냐'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중요한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그때는 하나의 행정구역 안에서 도시와 농촌의 역할이 자연스럽게 나뉘어 있었고, 광주가 중심이 되는 것에 대한 견제심이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한 번 분리된 경험이 있잖아요. 각 지자체가 자체 재정과 권한을 갖고 운영해 본 시간이 있기 때문에, 다시 합쳤을 때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통합 이후에 인프라나 자원이 광주로 집중되는, 이른바 '빨대 효과'가 나타나게 되면, 주변 지역에서는 '우리가 가진 게 다 빨려 들어간다'는 불만이 생길 수 있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이건 단순히 '예전에 하나였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한 번 나뉘어 운영된 이후에 다시 합치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훨씬 더 복잡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이재명 정부 방향은 균형발전이잖아요.
"맞아요. 지금 정부가 행정 통합을 지방 소멸에 대한 생존 전략으로 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저도 그 문제의식 자체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효과를 단정하긴 어렵습니다. 창원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단순히 규모를 키운다고 해서 인구 감소나 산업 쇠퇴가 자동으로 멈추는 건 아니거든요. 지금 지방 소멸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고 강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인데, 결국 중요한 건 통합이라는 형식이 아니라, 그 안에 어떤 산업 전략과 재정 전략, 생활권 재편 전략이 실제로 들어가느냐고 생각해요. 저희가 만났던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서 강조했거든요. 통합은 출발점일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답은 아니라고요."
- 지역을 통합하면 4년간 20조를 지급한다는 건데 재원 마련도 문제 아닌가요?
"맞아요. 이번 다큐에서도 전문가들이 굉장히 중요하게 지적한 대목 중의 하나가 그 재원 문제였거든요. 20조 원이라는 건 진짜 엄청난 돈이에요. 그리고 그 숫자 자체는 굉장히 강력한 유인책이지만, 이 재원을 어디서 어떻게 마련하는지 명확하지 않다면 결국 다른 지역의 예산 줄이는 제로섬 문제가 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이 문제는 단순히 그냥 큰돈을 준다는 발표에 그칠 게 아니라 어떠한 형태로 지속 가능한 재원 구조가 가능한지까지 검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 일본 사례도 나오던데, 배울 점이 있다면요.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지방 소멸 문제를 겪었고, 1999년부터 2010년 사이 이른바 '헤이세이 대 합병'을 추진했어요. 기초지자체 수를 크게 줄이면서 규모를 키우고 행정 효율을 높이려 했던 건데, 그런 점에서 마·창·진과 닮은 면이 있습니다. 방송에서 취재한 후쿠오카현 가마시 사례도 원래 여러 지역이 합쳐진 곳이었고, 주민들 역시 '이름이 사라졌다'는 감정을 갖고 있었어요. 일본 사례는 우리와 비슷하면서 어쩌면 조금 다른, 그래서 우리가 지금 가는 길에 인사이트를 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일본의 통합이 지방 소멸을 근본적으로 해결했다고 보긴 어려워요. 실제로 인구 감소는 계속됐고, 상권 쇠퇴나 공동화도 여전했으니까요. 다만 현지 관계자들이 공통으로 말한 건 '통합이 없었으면 더 빨리 무너졌을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통합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쇠퇴를 늦추거나 버틸 시간을 벌어주는 전략일 수는 있다는 거죠. 그 점에서 한국도 지나친 기대나 공포보다는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취재하며 느낀 점이 있을까요?
"통합은 숫자나 행정구역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사람의 문제라는 점이에요. 어떤 이름으로 살아왔는지, 어디에 세금이 쓰이는지, 누가 중심이 되고 누가 주변이 되는지에 따라 주민들이 느끼는 감정은 아주 크게 달라지더라고요. 동시에 지방 소멸이 더 이상 지방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합치느냐 마느냐' 자체보다, 그 과정을 얼마나 민주적으로 설계하고, 통합 이후의 약속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제도화하느냐인 것 같습니다."
- 취재할 때 어려운 점은 뭐였어요?
"초광역권 행정 통합은 전례 없는 이야기예요. 그래서 참고할 수 있는 결과나 정답이 없거든요. 결과가 없는 상태에서 과정을 설명하고, 그 안의 쟁점을 짚어야 한다는 게 쉽지 않았던 지점이었어요. 또 수도권에서는 이 문제가 '내 일'로 잘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많잖아요. 지방 소멸과 행정 통합이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걸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큰 고민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영방송으로서 지금 이 시점에 꼭 짚어야 할 어젠다라는 판단이 있었고, 그 필요성 때문에 이 작업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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