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가득한 추사고택, 수선화와 벚꽃이 한 자리에

김정아 2026. 4. 6.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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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의 노란 물결... 봄의 향연을 느껴보세요

[김정아 기자]

4월의 봄은 늘 같은 순서로 찾아오지만, 그 느낌은 해마다 조금씩 다르게 스며든다. 겨우내 굳어 있던 시간의 표면이 풀리듯 열리고, 사람들의 시선과 발걸음은 어느새 바깥을 향한다. 예로부터 '상춘(賞春)'이라 한 것은 단순히 꽃을 보는 일이 아니라, 계절의 이행 속에서 삶의 리듬을 가다듬고 새로운 기운을 받아들이는 일종의 사유였다. 이어 자연을 향해 길을 내고, 그 안에서 잠시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순간들 또한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어, 봄은 사람들을 밖으로 이끄는 가장 자연스러운 계절의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추사고택은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서예가, 역사학자인 추사 김정희(1786~1856)가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그의 묘소까지 함께 자리한 의미 깊은 공간이다. 예산군 제3경으로 꼽히는 지역의 대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그는 북학파 박제가의 제자로 학문을 닦고, 청나라 유학을 통해 고증학을 익히며 현실에 바탕을 둔 학문을 펼쳤다. 특히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의 정체를 밝혀내는 등 굵직한 업적을 남겼고, 관직에 오른 뒤에도 학문과 예술을 함께 넓혀갔다. 무엇보다 유배라는 긴 시간을 견디며 완성한 '추사체'는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지난 4일, 봄 기운을 따라 충남 예산 신암면에 자리한 추사고택을 찾았다.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고 예산 전역이 형형색색 꽃으로 물들 준비를 마친 가운데, 이곳은 수선화와 벚꽃이 가장 먼저 봄 소식을 전하는 대표적인 봄 꽃 명소다. 한발 먼저 도착한 봄이 고택 곳곳에 조용히 내려앉아 있었다.

한 사람의 삶이 켜켜이 쌓인 이 고택은 단순히 둘러보는 공간을 넘어,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늦추고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곳이다. 동서로 길게 이어진 건물 배치와 서쪽의 안채, 동쪽의 사랑채, 그리고 약 100m 떨어진 묘소로 이어지는 길은 한 사람의 생을 따라 천천히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인근 추사기념관과 체험관에서는 유물 관람 뿐 아니라 추사체 쓰기, 탁본, 난초와 세한도 그리기 등 다양한 체험이 가능해, 머무르는 시간 자체가 하나의 경험으로 이어졌다.

추사 고택의 봄
 지난 4일, 경기도 화성과 수원, 충남 서산·태안, 예산·홍성 등지에서 찾은 가족 단위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진 가운데, 추사고택 초입에 들어서자 활짝 핀 수선화가 가장 먼저 눈길을 끌었다. 노란 꽃길 앞에 방문객들은 하나둘 사진을 남기며 봄의 한 장면을 담아내고 있었다.
ⓒ 김정아
고택으로 들어서는 길목에서는 오래된 기와와 세월이 묻어난 담장이 먼저 눈길을 끈다. 바람을 따라 흩날리는 목련 꽃잎의 은은한 향이 스치고, 마당 한편에서는 노란 수선화가 햇살을 받아 잔잔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무엇보다 백송과 매화, 산수유 등 다양한 봄 꽃이 어우러진 이곳은 해마다 많은 상춘객이 찾는 이유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꽃들은 담장과 마루를 따라 이어지며 공간을 채우고,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꽃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래서 이곳의 봄은 한순간의 풍경이라기보다, 머무는 동안 천천히 스며드는 계절에 더 가깝게 다가온다.

이날도 봄을 따라 찾아온 방문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경기도 화성과 수원, 충남 예산과 서산, 보령, 천안 등지에서 온 사람들은 고택 곳곳을 걸으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봄을 담고 있었다. 누군가는 사진으로 순간을 남겼고, 누군가는 마루에 앉아 바람을 느끼며 잠시 쉬어갔다. 그런 가운데, 고택 한편에서는 또 다른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방문객들의 봄 풍경을 취재하기 위해 찾은 추사고택에서, 또 다른 봄의 장면을 마주했다. 오는 12월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과 신부가 삼각대를 세워 두고 사진을 촘촘히 담고 있었다.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인 이들이었다. 사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삼각대 하나로 사진을 촬영하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봄꽃을 보러 온 방문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두 사람은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소한 순간을 담아내고 있었다.

예비 신부 조현경씨는 "아침까지 비가 내려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막상 와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수선화 뿐 아니라 개나리, 목련, 벚꽃까지 한자리에서 볼 수 있어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어 "지나가던 분들이 건네준 축하 인사와 꽃다발 덕분에 예상하지 못한 따뜻한 순간까지 더해졌다"고 전했다.

특히 올해는 기존보다 꽃봉오리가 작던 재래종 대신, 색감이 한층 선명한 신품종 수선화를 심어 보다 다채로운 봄 풍경을 선보였다. 추사고택 관계자는 "이번 주부터 수선화가 본격적으로 피기 시작하면서 이를 보려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며 "개화 시기와 관련한 문의도 꾸준히 들어올 만큼 관심이 높다"고 전했다. 이어 "현재는 햇볕이 잘 드는 곳을 중심으로 먼저 꽃이 피었고, 이번 주말과 다음 주 사이에는 대부분 만개해 고택 전체가 노란 꽃으로 물들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봄은 해마다 어김없이 돌아오지만, 같은 느낌으로 남지는 않는다. 어떤 날은 노란 꽃의 색으로, 어떤 순간은 그날 스쳐 간 사람들의 온기로 오래 기억된다. 이날, 꽃을 따라 찾은 추사고택에서 쉽게 지나치기 어려운 한 장면과 마주했다. 수선화와 벚꽃이 어우러진 자리에서, 각자의 시간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이날의 추사고택은 풍경 자체보다, 그 시간 안에 머문 사람들의 온기가 더 깊은 여운으로 남았다. 오는 11일 전후에는 벚꽃이 흩날리며 마치 '꽃 눈'이 내리는 듯한 봄의 절정을 한층 더 드라마틱하게 그려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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