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담보 없이 '데이터'로 대출... 중국은 이미 시작했다
[임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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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하이데이터거래소 홈페이지. 중국의 데이터 규정, 상품화, 시장, 거래에 관련 가장 선진화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
| ⓒ 홈페이지 캡처 |
지금 이 순간에도 대부분의 한국 기업과 개인은 부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통장 잔고, 현금, 부동산, 주식.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 값이 오르내리는 것을 시세표로 확인할 수 있는 것. 수천 년 농경 문명이 쌓아온 이 관념은 산업 문명을 거치며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그런데 이 전제가 지금 무너지고 있습니다.
농업 문명에서 핵심 생산 요소는 토지와 노동력이었습니다. 공업 문명에서는 자본과 기술이었습니다. 지금 도래하고 있는 AI 문명에서 핵심 생산 요소는 데이터입니다. 중국 국가데이터국(国家数据局)이 공식 문서에서 명시한 표현입니다. 데이터를 토지·자본·노동력과 동등한 법적 생산 요소로 규정하고 그에 맞는 소유·거래·수익 분배 제도를 설계하는 실행 계획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전환의 속도를 심각하게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데이터를 '잘 수집하고 활용하면 되는 도구'로 보고 있습니다. 중국은 데이터를 '소유하고 경영하고 자본화해야 하는 자산'으로 재정의했습니다. 이 출발점의 차이가 앞으로 10년 안에 국가 산업 경쟁력의 격차를 결정할 것입니다.
2. 자원, 자산, 자본... 이 세 단어가 미래를 가릅니다
중국 국가데이터국이 제시한 데이터 가치 실현의 3단계 전환 개념은 단순하지만 명료합니다.
자원(资源, Resource)에서 시작합니다. 데이터가 서버에 쌓여 있지만 누가 소유하고 누가 사용하고 누가 수익을 가져가는지 규정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 단계에서 데이터는 활용할 수 있지만 담보로 쓸 수 없고, 거래할 수 없고, 수익을 분배할 수 없습니다. 한국 기업과 공공기관 대부분이 지금 여기 있습니다.
자산(资产, Asset)은 소유권이 확정되고 가치가 평가되어 재무제표에 등재된 상태입니다. 중국에서는 이를 '데이터 자산 입표(数据资产入表)'라고 부릅니다. 2024년부터 시행된 재정부 규정으로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를 대차대조표에 자산으로 올릴 수 있게 됐습니다. 2025년 4월 기준 중국 A주 상장기업 100개사가 총 21억 6400만 위안(한화 약 4100억 원) 규모의 데이터를 자산으로 등재했습니다. 비상장 기업까지 합치면 330개사, 융자 확보액 14억 1700만 위안(한화 약 2700억 원)입니다. 데이터가 담보가 된 것입니다.
2026년에는 '데이터 요소 X' 정책의 본격적인 확산과 국유기업의 자산 등재 의무화 흐름에 따라 참여 기업이 1500개사 이상으로 급증하고 데이터 자산 가치 평가 방식이 단순 원가 측정에서 미래 수익 가치 중심으로 고도화되면서 등재 총액과 융자 규모가 전년 대비 수 배 이상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데이터가 기업의 장부상 수치를 넘어 실질적인 자본 유동성을 창출하는 핵심 금융 자산으로 완전히 안착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자본(资本, Capital)은 자산이 투자·융자·거래의 수단이 되는 상태입니다. 상하이 데이터거래소(上海数据交易所)가 2025년 7월 제안한 RDA(Real Data Assets, 실제 데이터 자산)가 이 단계의 청사진입니다. 블록체인(Blockchain)과 스마트 컨트랙트(Smart Contract, 조건 충족 시 자동 실행되는 계약 코드)를 통해 데이터 자산을 토큰화(Tokenization)하고 실제 경영 수익에 직결시킵니다. 이것이 토큰 이코노미(Token Economy)의 실체입니다. 암호화폐 투기의 세계 이야기가 아닙니다. 데이터라는 새로운 자산이 실물 경제의 인프라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 세 단계를 구분하지 못하면 다음 시대의 경쟁에서 출발점 자체가 달라집니다.
3. 중국이 설계한 데이터 시스템
중국이 이 3단계 전환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구축한 제도 체계는 세 개의 축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데이터 3권 분리(数据三权分置)입니다. 데이터 자원 소유권·데이터 가공 사용권·데이터 제품 경영권을 분리합니다. 쉽게 예를 들자면 농부가 배추를 생산하고(소유권), 이를 공장이 가져다가 김치를 만들어(가공사용권), 이를 카페에서 김치볶음밥을 만들어서 팔면 제품경영권을 지니게 된다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배추가 누구의 것인지를 따지다가 김치도 만들지 못하고 볶음밥도 만들지 못하게 하게 되는 것을 막고자 3권 분리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하나의 데이터에 여러 주체가 서로 다른 권리를 갖고 각자의 기여에 따라 수익을 나눕니다. 데이터를 생산한 사람, 가공한 사람, 유통시킨 사람이 모두 다른 수익을 갖습니다. 이것이 토큰 이코노미에서 스마트 컨트랙트가 자동으로 수행하는 수익 분배 논리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둘째, 데이터 자산 카드 시스템(数据资产卡片系统)입니다. 상하이 데이터거래소가 2025년 4월 전국 최초로 출시했습니다. 블록체인 기반으로 데이터 자산에 고유 명세를 부여하고 전 생애주기를 추적합니다. 부동산 등기부와 같은 역할입니다. 데이터에 주소를 부여하고 소유자를 기록하고 거래 이력을 남깁니다. 소유권이 투명하게 확인되어야 거래가 가능하고, 거래가 가능해야 시장이 형성됩니다.
셋째, 데이터 가용 불가견(数据可用不可见) 원칙입니다.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고도 그 가치를 실현한다는 원칙입니다. 중국이동통신(CHINA MOBILE)의 사기 탐지 시스템에서 실증됩니다. 통화 내용과 개인 정보는 읽히지 않으면서 사기 패턴만 탐지합니다. 영지식 증명(Zero-Knowledge Proof,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도 그 정보가 사실임을 증명하는 암호 기술)의 실물 적용입니다. 프라이버시와 데이터 가치 실현은 충돌하지 않는다는 것을 국가 차원에서 증명하고 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현장 사례는 저장성(浙江省) 리수이시(丽水市)의 사례입니다. 리수이 출신 상인 6만여 명이 전국에 흩어져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담보로 내세울 부동산이 없어 사업 확장 자금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리수이시 데이터국이 공공 정무 데이터·상점 경영 데이터·은행 신용 데이터를 융합해 플랫폼을 구축했고, 2026년 1월 기준 3만 2900개 소상공인에게 79억 5,300만 위안(한화 약 1조 5000억 원)의 신용을 공여했습니다. 부동산 담보 없이 데이터로 대출받은 것입니다. 데이터가 부동산을 대체했습니다. 이것은 실험이 아닌 현실입니다.
4. 우리는 AI 경제는 받아들이지만 과거의 패턴으로 사고하고 있습니다
이 변화를 기술 트렌드로 읽으면 핵심을 놓칩니다. 이것은 생산 관계의 전환입니다.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의 전환 때, 토지를 가진 자에서 공장과 자본을 가진 자로 권력이 이동했습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전환에서는 데이터를 소유하고 경영하는 자로 권력이 이동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아직 이 이동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시세는 매일 확인하면서 자사 데이터의 자산 가치는 한 번도 평가해본 적 없는 기업이 대부분입니다. AI를 도입하면서 그 AI가 학습하는 데이터의 소유권을 묻지 않는 조직이 대부분입니다.
AI 기반 토큰 이코노미에서 데이터는 인프라스트럭처(Infrastructure, 경제 활동의 기반 구조)입니다. 도로와 항만이 물류의 인프라이듯, 소유권이 확정되고 거래 가능한 데이터 생태계가 디지털 경제의 인프라입니다. 이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 나라와 기업은 AI 도구를 아무리 잘 활용해도 그 수익의 구조적 분배에서 소외됩니다. 효율은 올라갈 수 있지만, 그 효율이 만들어내는 가치의 귀속이 자신에게 오지 않습니다.
중국은 2026년을 공식적으로 '데이터 요소 가치 해방의 해(数据要素价值释放年)'로 선언했습니다. 신화사는 2026년 30개 이상의 국가 데이터 표준을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데이터 거래 시장 규모는 2030년 7159억 위안(한화 약 136조 원)을 목표로 합니다. 데이터 자산 입표 시장은 같은 해 8278억 위안(한화 약 157조 원)에 달할 전망입니다. 이것은 AI 도구 시장의 성장이 아닙니다. 데이터라는 새로운 자산 시장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5. 한국은 지금 어느 단계에 있습니까
기업의 대차대조표에 데이터가 자산으로 올라가 있을까요. 우리가 매일 생산하는 데이터는 자원으로 소비되고 있는지, 자산으로 축적되고 있는지요. 그리고 기업이나 개인이 AI 서비스를 통해 생산하는 데이터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한국에는 데이터 자산 입표를 가능하게 하는 회계 기준이나 데이터 3권을 분리하고 보호하는 법적 근거가 있을까요. 그리고 개인이 만드는, 서비스가 생산하는 데이터는 누구의 자산이 됩니까. 사용자입니까, 기업입니까, 국가입니까.
데이터를 쓰는 나라와 데이터를 소유하고 경영하는 나라의 차이는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10년 뒤에는 명확히 보일 것입니다. AI가 학습하는 데이터에 소유권이 붙고, 그 소유권에서 수익이 발생하고, 그 수익이 자동으로 분배되는 순간, 그 인프라를 갖춘 나라가 다음 시대의 데이터 주권을 갖게 됩니다. 중국은 그 인프라를 설계하고 집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늦지 않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 임선영씨는 중국전문가로 <중국경제미래지도>의 저자입니다. 이 글은 본인의 페이스북에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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