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의 흔적을 자산으로 삼은 도시

여경수 2026. 4. 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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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헌정 질서의 첫인상

[여경수 기자]

3월 15일, 내가 탑승한 비행기는 브루나이에서 출발하여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까지 두 시간 남짓 운행했다(BI642). 이번 헌법 기행은 레이오버를 이용해서, 브루나이를 방문한 이후 보르네오섬을 넘어 말레이시아 반도로 향하는 경로였다. 싱가포르는 서울과 비슷한 면적이며, 지금도 간척사업으로 조금씩 면적이 넓어지고 있다. 인구는 611만여 명이다. 오늘날 싱가포르가 중개무역과 금융도시로 번영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입국 절차는 간소했다. 여권 인식이나 수하물 처리도 신속했다. 입국 전에 전자입국서를 접수하니, 대면 입국심사를 하지 않았다. 브루나이 입국심사에서는 숙소와 돌아가는 비행기편을 확인했었다. 나는 창이공항의 버스정류장에서 36번 공영버스를 타고 숙소인 힙스터시티 호스텔로 향했다.

버스를 탈 때는 트래블카드를 이용하니 우리나라에서 발급받은 교통카드가 호환이 되었다. 요금은 2달러가 조금 안 되는 금액이었다. 숙소는 시티홀역과 래플스 플레이스역 중간쯤에 위치한 곳이었다. 시티홀역에서 내려 엘진 브리지를 지나 숙소로 향했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숙소를 향하니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동남아시아 여행에서는 늘 호텔을 이용했지만, 싱가포르 호텔 가격은 서울보다 비쌌다. 혼자 하는 여행인 만큼 공용 세면실을 감수하고 호스텔을 택했다. 막상 들어서니 잠 자는 공간은 생각보다 쾌적했다. 숙소가 자리한 곳은 싱가포르에서 올드 시티 지구라 불리는 곳이다. 영어로 구도심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지금도 가장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곳이다.

래플스가 처음 발을 디딘 곳도, 독립 이후 그를 기리는 동상이 세워진 곳도 모두 이 올드 시티 안에 있다. 오래된 이름과 달리 이곳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싱가포르의 중심으로 읽혔다. 책과 영상으로 보던 이상으로 발전된 곳이다. 우리나라 여의도, 잠실, 강남을 모은 것 같다. 이곳의 경제적 번영이 헌정 질서와는 무슨 관계일까. 깊은 질문에 생각이 잠겼다.
 싱가포르 야경
ⓒ 여경수
싱가포르의 역사는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곳은 오래전 테마섹이라 불렸다. 13세기 무렵 말레이인들이 지금의 싱가포르를 산스크리트어로 '사자의 도시'를 뜻하는 싱가푸라라고 이름 붙였고, 영국이 들어오면서 싱가포르로 불리게 되었다.

오늘날의 싱가포르를 계획도시로 만든 것은 1819년 동인도회사 소속으로 이곳에 도착한 래플스였다. 그는 싱가포르를 국제적인 무역도시로 만들었다. 1867년 싱가포르는 영국 해협 식민지로 편입되었고,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경험도 했다.

1963년 말레이시아 연방 합류를 통해 영국 식민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1965년 8월 9일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로부터 분리되었다. 당시 말레이계 중심의 연방정부와 화교 중심의 싱가포르 주정부 사이의 갈등은 처음부터 깊었다. 결국 2년도 채 되지 않아 싱가포르는 연방에서 축출되는 형태로 독립을 맞이했다.

말레이시아 연방헌법에는 주정부 탈퇴에 관한 명시적 규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싱가포르 총리였던 리콴유는 독립 선언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렸다. 싱가포르인들이 원했던 독립이 아니었다. 그러나 싱가포르인들은 이곳을 세계가 주목하는 도시국가로 만들었다. 헌법상 의원내각제를 채택했고, 영국 보통법의 전통을 계수하면서도 싱가포르만의 독자적인 법체계를 구축해 나갔다.
 1965년 싱가포르 독립
ⓒ 여경수
싱가포르 건국의 공헌자인 리콴유는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자서전을 읽었을 때, 그가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을 부러워한 문구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와 그의 부인 모두 영국 유학생 출신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리콴유와 아시아적 민주주의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아시아 국가들도 현대 입헌주의적 가치가 구현될 수 있다고 한 반면, 리콴유는 아시아 고유의 특성상 권위주의적 통치가 아시아의 헌정 질서에 수용될 수 있다고 맞섰다. 그 논쟁의 답을 싱가포르 거리를 걸으면서 조금씩 찾고자 했다.
 싱가포르 래플스 동상
ⓒ 여경수
나는 짐을 풀고 래플스가 처음 상륙한 자리를 찾아 강변을 걸었다. 물론 싱가포르에는 중국인이나 서양인들이 오기 전부터 살아온 원주민들이 있었고, 그들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다. 하지만 영국의 식민지를 거치고 중국계 이주민들이 경제권을 장악하면서, 싱가포르는 국제도시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싱가포르에 도착한 첫날 이곳을 산책하면서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동남아시아 대부분의 나라들은 식민지 시절의 이름을 지우려 한다. 거리 이름을 바꾸고, 동상을 철거하고, 역사를 재구성한다. 그런데 싱가포르에서 '래플스'라는 이름은 여전히 살아 있을 뿐 아니라 명품의 상징처럼 통용된다.

래플스 호텔, 래플스 플레이스, 래플스 시티. 식민의 흔적을 지우는 대신 자산으로 전환한 것이다. 심지어 식민지 통치자인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따온 건물도 그대로 이름을 이어가고 있다. 도시가 식민 유산을 자산으로 전환했듯, 헌법도 그렇게 구축되었다. 이것이 싱가포르 헌정 질서의 첫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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