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의 흔적을 자산으로 삼은 도시
[여경수 기자]
3월 15일, 내가 탑승한 비행기는 브루나이에서 출발하여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까지 두 시간 남짓 운행했다(BI642). 이번 헌법 기행은 레이오버를 이용해서, 브루나이를 방문한 이후 보르네오섬을 넘어 말레이시아 반도로 향하는 경로였다. 싱가포르는 서울과 비슷한 면적이며, 지금도 간척사업으로 조금씩 면적이 넓어지고 있다. 인구는 611만여 명이다. 오늘날 싱가포르가 중개무역과 금융도시로 번영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입국 절차는 간소했다. 여권 인식이나 수하물 처리도 신속했다. 입국 전에 전자입국서를 접수하니, 대면 입국심사를 하지 않았다. 브루나이 입국심사에서는 숙소와 돌아가는 비행기편을 확인했었다. 나는 창이공항의 버스정류장에서 36번 공영버스를 타고 숙소인 힙스터시티 호스텔로 향했다.
버스를 탈 때는 트래블카드를 이용하니 우리나라에서 발급받은 교통카드가 호환이 되었다. 요금은 2달러가 조금 안 되는 금액이었다. 숙소는 시티홀역과 래플스 플레이스역 중간쯤에 위치한 곳이었다. 시티홀역에서 내려 엘진 브리지를 지나 숙소로 향했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숙소를 향하니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동남아시아 여행에서는 늘 호텔을 이용했지만, 싱가포르 호텔 가격은 서울보다 비쌌다. 혼자 하는 여행인 만큼 공용 세면실을 감수하고 호스텔을 택했다. 막상 들어서니 잠 자는 공간은 생각보다 쾌적했다. 숙소가 자리한 곳은 싱가포르에서 올드 시티 지구라 불리는 곳이다. 영어로 구도심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지금도 가장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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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싱가포르 야경 |
| ⓒ 여경수 |
오늘날의 싱가포르를 계획도시로 만든 것은 1819년 동인도회사 소속으로 이곳에 도착한 래플스였다. 그는 싱가포르를 국제적인 무역도시로 만들었다. 1867년 싱가포르는 영국 해협 식민지로 편입되었고,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경험도 했다.
1963년 말레이시아 연방 합류를 통해 영국 식민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1965년 8월 9일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로부터 분리되었다. 당시 말레이계 중심의 연방정부와 화교 중심의 싱가포르 주정부 사이의 갈등은 처음부터 깊었다. 결국 2년도 채 되지 않아 싱가포르는 연방에서 축출되는 형태로 독립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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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5년 싱가포르 독립 |
| ⓒ 여경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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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싱가포르 래플스 동상 |
| ⓒ 여경수 |
싱가포르에 도착한 첫날 이곳을 산책하면서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동남아시아 대부분의 나라들은 식민지 시절의 이름을 지우려 한다. 거리 이름을 바꾸고, 동상을 철거하고, 역사를 재구성한다. 그런데 싱가포르에서 '래플스'라는 이름은 여전히 살아 있을 뿐 아니라 명품의 상징처럼 통용된다.
래플스 호텔, 래플스 플레이스, 래플스 시티. 식민의 흔적을 지우는 대신 자산으로 전환한 것이다. 심지어 식민지 통치자인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따온 건물도 그대로 이름을 이어가고 있다. 도시가 식민 유산을 자산으로 전환했듯, 헌법도 그렇게 구축되었다. 이것이 싱가포르 헌정 질서의 첫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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