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계족산에서 만난 팔순 할머니의 예사롭지 않은 말
[김병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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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암사적공원 |
| ⓒ 김병모 |
화사한 꽃길 따라 남간정사 뒷산 계족산으로 발길을 잡아 오르는데, 정사 연못에도 둥근 원을 그린 연잎들이 벌써 생기가 돈다. 낙엽 사이로 간간이 삐져나온 쑥들도 아낙을 기다릴 기세다. 문득 도다리쑥국이 생각난다. 바위틈에 기댄 굴참나무도 봄 향기를 맡았나, 나뭇가지 끝에 생기가 돈다.
계곡 건너편엔 예사롭지 않게 쌓아놓은 돌무덤이 보인다.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아주머니들이 멈춰 서서 뭔가 이야기를 나눈다. 서낭당이다. 서낭당은 마을의 안녕과 길손의 행운을 가져다주는 신령이 있다고 믿는 우리 전통문화이다. 옛 조상들은 서낭당을 지날 때마다 왼발을 세 번 구르고, 돌무덤에 돌을 하나씩 올렸다고 한다. 재미있게도 이 서낭당은 대전광역시 초등학교 사회과 탐구 교과서에 소개가 될 정도로 희귀한 민족 문화재라고 한다.
계족산 중턱으로 한참을 오르다 보니, 목이 마르던 참에 밭탕골약수터가 보인다. 약수터에서 한잔의 물을 마시고 숨을 고른 후, 높지 않은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여기저기 지천으로 보여야 할 생강나무꽃이 보이질 않고, 그 자리에 진달래가 판을 치고 있다. 산앵두나무꽃도 드문드문 보이고.
계족산은 하루가 다르게 쉼 없이 변화하고 있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을 다시 한번 피부로 느낀다. 계족산은 지금 생강나무꽃은 지고 진달래꽃이 대세를 보인다. 한번 성한 것은 얼마 가지 않아 쇠해 짐을 어찌 몰랐단 말인가.
드디어 계족산 정상이다. 그런데 웬일인가. 계족산 뒤로 펼쳐진 대청호수가 보이질 않는다. 물안개가 갑자기 몰려온 바람에 한 치 앞을 볼 수 없다. 생강나무꽃도 보고 계족산 정상에서 바라본 멋진 대청호수 경치를 기대했건만, 어느새 생강나무꽃은 지고, 대청호수는 물안개 속으로 숨어 버렸다. 세상일이란 항상 예상치 않은 변수가 있기 마련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렸다.
계족산 중턱에 내려오니 팔순쯤 들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허리를 숙이고 뭔가를 뜯고 있다. 산나물이라도 뜯는가. 호기심이 발동한다. 뭐 하고 계시냐고 물었더니, 홑잎 나물을 뜯고 있단다. 산나물 중 가장 먼저 싹이 나고, 슬쩍 데쳐서 먹으면 제맛이란다. 집 나간 입맛이 되살아난다고 한다. 옛날 친정엄마가 봄이 되면, 해주었던 추억의 나물이란다. 그 할머니도 옛날 옛적 꽃다운 소녀 시절이 있었겠지.
그 할머니의 보폭에 맞춰 하산하는데, 예상치 않은 말을 건넨다. "저 나무들 봐요. 겨우내 죽은 듯하다가 다시 살아나 새순 틔우는 것을.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죽으면 영영 그만이거든." 팔순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 말씀이 예사롭지 않다. 오래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간의 영원한 화두이다.
불사(不死)를 꿈꾼 영웅, 기원전 길가메시도 그러했고 불로초를 찾아 헤맨 진시황도 그러했다. 만물의 영장, 인간 죽음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태초부터였을지도 모른다. 물론 자기 성찰을 통해 죽음을 초월한 사람도 있겠지만,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생물학적 죽음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욕구로 인간이 신이 되려 한다고 설파한다. 호모 데우스이다.
계족산을 하산하여 그 할머니와 눈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다 그 할머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쉽지만 생강나무꽃은 내년 봄에 다시 보면 될 것이고, 대청호수 파노라마는 어느 주말 화창한 날에 보면 그만이다. 하지만, 꽃 피는 내년 봄날에도 그 할머니의 순수철학이 숨 쉬는 말씀을 다시 들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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