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얻어먹지 못한 게 미안하고, 부끄러웠다"는 기자의 고백

임미리 2026. 4. 6.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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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탐사그룹 셜록' 최규화 지음 <유희 언니>

[임미리 기자]

저자 최규화는 2024년 6월 페이스북에 올라온 수많은 부고에 관심을 갖게 됐다. 췌장암 투병 끝에 향년 65세로 세상을 떠난 유희씨가 주인공이었다. 유명인이 아닌 데도 그녀를 기억하고 애도의 글을 올린 수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그녀의 밥을 먹어본 사람들이었다.

"춥고 외로운 투쟁을 해 본 사람치고 유희 동지의 밥을 안 먹어 본 사람이 있을까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주 지도위원이 쓴 '추모의 글'의 한 대목이다. 저자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유희씨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얻어먹어서 미안한 게 아니라, 얻어먹은 적이 없어서 미안했다. 그녀가 '춥고 외로운 투쟁을 해본 사람'들의 곁에서 밥을 짓고 나눈 30년 세월. 그 세월 동안 나는 그녀의 현장에 가 본 적 없다는 게 부끄러웠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저자는 유희를 기억하는 15명을 인터뷰했다. 그밖에도 유희가 쓴 글, 유희에 대해 쓴 많은 글을 읽었고 유희가 노점상을 하고 전국노점상연합(아래 연합) 연대사업국장과 부의장을 했던 시절, 그리고 유희가 밥을 지어준 사람들과 노조, 단체에 관한 공부를 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유희 언니>(빨간소금)다.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들어 있는 소설을 액자소설이라 한다면, 이 책은 '액자인생'이라 할 만하다. 책에는 유희의 삶뿐 아니라 유희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삶도 함께 담겨 있다.
 <유희 언니>(빨간소금) 표지.
ⓒ 빨간소금
밥으로 조직된 연대, 투쟁의 현장을 지탱하다

유희가 처음으로 사람들을 위해 밥을 지은 것은 연합 연대사업국장 시절이다. 함께 굶는 날이 다반사였던 시절 유희는 김치찌개로 시작해 노점상 회원들이 가져다주는 채소로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연합 사무실에 상근하며 몇 달만 용돈을 번 뒤 그만두리라 마음먹었던 서선정(송파주거복지센터장, 위례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유희의 밥을 먹고 "이 길이 내 길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노점상 동지들을 위해 밥을 짓던 유희가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밥을 하게 된 계기는 1995년 3월 최정환 열사의 죽음이었다. "복수해 달라"는 처절한 유언을 남기고 몸에 불을 붙인 장애인 노점상 최정환의 영안실에는 1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유희는 노점상, 장애인, 학생들이 모인 집회 현장에 솥을 걸고 밤새 국을 끓였다.

그해 11월 28일 유희가 밥짓기를 멈출 수 없는 상황이 다시 벌어졌다. 스물여덟살의 장애인 노점상 이덕인의 주검이 인천 앞바다에서 발견됐다. 구타의 흔적이 선명했고 몸은 밧줄에 묶여 있었다. 강제 부검 이후 경찰은 사인을 '익사'라고 밝혔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최인기(민주노점상전국연합 수석부의장)에 따르면 "유희의 진가가 발휘된 때"였다. 유희는 밥 연대에 그치지 않았다. 열사의 가족 옆에서 같이 울고 밤을 새우며 용기를 북돋아 줬다.

유희는 1992년 연합 부의장이 됐다. 여성으로는 최초였다. 부의장을 맡은 뒤 유희는 공구 노점을 접고 포장마차를 시작했다. 낮 시간을 온통 활동에 쏟기 위해서였다. 조덕휘(전 전국빈민연합 의장)는 그녀의 깡다구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기억했다.

김영삼 당선인 시절 노점상들은 그가 장로로 있는 교회로 몰려가 호소문을 건넸다. 김영삼은 문서를 받았지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곧장 수행원에게 넘겨버렸다. 그걸 본 유희가 소리를 질렀다.

"너 같은 게 대통령이면 나는 영부인이다!"

노래하는 유희와 머리 깎고 목욕봉사 하는 자매들

유희는 네 자매의 둘째다. 첫째 언니 유덕희가 기억하는 유희는 훨씬 다채롭다. 유희가 태어난 1959년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집에 전축이 있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부모가 별표전축을 틀어놓고 사교춤 추는 걸 보고 자랐다. 아버지는 둘째 딸을 가수로 키우고 싶어 이름도 그렇게 예쁘게 지었다.

아버지를 닮아 노래를 잘했던 유희는 부평역의 스타였다. 노점상을 접고 2000년대 초반 인천에 자리잡은 유희는 부평역 광장에 모금함을 놓고 공연을 했다. 노래하며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모인 기금으로는 노인 분들 연탄도 사 드리고 쌀도 사 드렸다.

유희를 뺀 나머지 세 자매는 모두 미용사였다. 자매들이 요양원에 찾아가 노인들 머리를 깎고 목욕봉사까지 직접 했다. 물론 유희는 노래공연으로 한바탕 웃음꽃도 피웠다. 봉사만 한 게 아니다. 유희를 따라 집회에도 나갔고 "손 올리는 것"(팔뚝질)도 많이 했다.
 집회 현장에서 노래로 연대하는 유희 씨.
ⓒ 유희 페이스북
열아홉 나이에 "납치당하다시피" 결혼한 유희는 두 살 터울로 아들 셋을 낳았다. 막내가 태어난 해부터 갓난아이를 포대기에 싸서 업고 닭똥집을 팔았다. 노점상운동을 시작한 건 1980년대 후반, 2000년 전후로 노점상을 접을 때까지 유희는 많은 어려운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을 만난 것에 감사했다고 생전에 말했다.
"많이 못 배운 게 한이지. 그렇다고 그게 지금까지 원망스럽고 그렇지는 않아. 왜냐면 내가 서울대를 안 나왔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어려운 사람들을 더 많이 알지 않았을까. 그러면(서울대를 갔으면)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었겠나.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 참 감사합니다."(유희)

유희는 노점상을 접고도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노점상운동은 접었지만 운동하는 사람들을 찾아갔고 그들에게 밥을 해주었다. 그 중에서도 2007년 정리해고 이후 11년 간의 장기농성을 이어간 콜트·콜텍은 유희에게 매우 각별한 현장이었다.

콜트악기 인천공장은 유희의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었다. 매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노동자들을 보고 "가슴이 막 찢어졌다"고 말했던 유희는 자신이 지은 밥을 "정말 감사하게 먹은 그 마음이 눈에 보여서", "내 자식들 먹는 것만큼 너무 이쁘고 너무 고마운" 마음에 연대를 멈출 수 없었다.

유희가 장기간 밥 연대를 한 투쟁 현장으로는 한국지엠도 있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한 달쯤 지났을까. 유덕희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지긋지긋하게 오래" 투쟁한 한국지엠 노동자들은 2024년 7월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판결을 받았다. 2015년 시작해 3475일 만이었다.

그동안 유희의 밥을 먹은 게 너무나 고마워서 어떻게든 인사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유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물어물어 유덕희에게 연락한 거였다. 유희의 이런 공로는 세상도 알아줬다. 2025년 제33회 전태일노동상 공로상 수상자는 유희였다. 이 책이 보여준 연대는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을 기록한 저자 역시 지금 다른 방식으로 그 연대를 이어가고 있다.
 유희 씨(왼쪽에서 두번째)가 결성한 ‘십시일반음식연대 밥묵차’ 활동가들이 이동식 급식 차량 앞에 서 있다.
ⓒ 유희 페이스북
기록을 넘어 '해결'로, 셜록이 던진 질문

여러 신문사를 거치며 수차례 수상한 기자인 최규화는 현재 <진실탐사그룹 셜록>에서 활동하고 있다. 셜록은 "알리고, 퍼트리고, 해결한다"는 모토를 내걸고 단순한 폭로를 넘어 문제 해결까지 목표로 한다.

최근 셜록의 조아영 기자가 아동학대 가해자로부터 고소를 당한 사건은 이러한 방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구 피겨코치 아동학대 사건'을 보도하면서 가해자의 실명을 공개했고, 그 과정에서 법적 논쟁이 촉발됐다. 이는 기록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에 개입하는 저널리즘이 어떤 충돌을 감수하는지를 드러낸다.

유희가 밥으로 연대를 만들었다면, 셜록은 기록으로 그 연대를 확장한다. 방식은 달라졌지만, 타인의 고통 곁에 서는 방식이라는 점에서는 같은 계보에 놓여 있다.

덧붙이는 글 | 셜록 조아영 기자 불기소 탄원 구글폼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doCPhB2kKc8b3i1gVgitzEk_iQ64AG86qbxeJE9F5lN-ovHg/view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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