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왜 석유보다 태양을 사기 시작했나
호르무즈 충격으로 유가가 뛰는 순간, 태양광은 환경이 아니라 안보의 언어가 됐다. 한국은 여전히 남의 연료를 사 와 버틸 것인가, 아니면 K-에너지로 비용 구조를 바꿀 것인가. <기자말>
[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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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11일(현지시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아랍에미리트 라스알카이마 북부에서 바라본 호르무즈 해협 인근 걸프만에 화물선이 보이고 있다. |
| ⓒ 로이터 연합뉴스 |
석유패권의 본질은 단지 유전을 많이 가진 데 있지 않다. 바닷길을 지키고, 보험을 움직이고, 결제 질서를 쥐고, 동맹에게 질서 유지의 비용을 분담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패권은 작동한다. 그런데 이번 위기는 그 공식을 거꾸로 드러냈다. 총과 함대만으로는 더 이상 가격을 완전히 지배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지정학적 불안이 곧바로 산업비와 물가로 번진다는 사실이 한꺼번에 드러난 것이다.
청구서는 아시아로 몰린다
무엇보다 이번 충격의 청구서는 아시아로 집중된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2024년 호르무즈를 통과한 원유·콘덴세이트의 84%, LNG의 83%가 아시아로 향했다. 원유는 중국·인도·일본·한국이, LNG는 중국·인도·한국이 핵심 목적지였다. 호르무즈의 불안이 곧바로 아시아 제조업의 비용과 전기요금, 물가를 흔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이번 위기는 단순한 중동 분쟁이 아니다. 그것은 아시아 산업국가들이 여전히 '남의 연료'에 얼마나 깊이 묶여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장이다. 특히 제조업 중심 경제일수록 에너지 가격 충격은 무역과 생산, 가계의 삶까지 동시에 흔든다. 석유전쟁의 최전선은 전장만이 아니라 공장과 항만, 전기요금 고지서에도 있다.
반대로 유럽은 이 위기가 무엇을 증명하는지 이미 잘 알고 있다. 2025년 EU 전력에서 풍력과 태양광은 30%를 차지해 화석연료 29%를 처음 앞질렀다. 유럽이 전쟁이 터질수록 태양광·풍력·히트펌프·효율 투자에 더 집착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이 기후 도덕주의가 아니라 지정학적 보험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지금 태양과 배터리를 산다
스페인은 그 보험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준다. 스페인은 2025년 전력의 55.5%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했고, 자가소비까지 포함하면 56.6%에 이르렀다. 전기를 자국 안에서 더 많이 만들수록 중동의 포성이 전기요금과 산업비에 미치는 힘은 약해진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전쟁의 비용을 치르는 동안 중국은 전선 밖에서 청정기술 공급망과 제조 역량을 쌓으며 다음 질서를 준비하고 있다. 기후정책으로 보였던 것이 사실은 산업정책이었고, 산업정책으로 보였던 것이 사실은 안보정책이었던 셈이다.
일본도 이 변화를 매우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로이터(Reuters)에 따르면 일본의 원유 수입 가운데 약 95%가 중동산이다. 그래서 일본은 비축유와 단기 대응을 챙기면서도, 장기적으로는 태양광과 전력 전환 비중을 높이는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경제안보와 에너지전환을 더 이상 따로 보지 않는 것이다.
한국 역시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매우 높은 산업국가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과제는 단순한 공급선 다변화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더 근본적인 해법은 수입 연료의 자리를 국산 전력과 국산 기술로 바꾸는 것이다. 공장을 전기로 돌리고, 열을 전기로 전환하고, 배터리와 송전망을 확충하고, 원전과 재생에너지, 저장장치를 하나의 전략으로 묶어야 한다. 에너지전환(EX)은 태양광 패널 몇 장 더 까는 사업이 아니라 가격 방어선이자 산업 방어선이며, 21세기형 안보 인프라다.
K-에너지, 한국이 보여줄 다음 질서
한국에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배터리·반도체·조선·원전·전력기술을 함께 가진 한국은 에너지전환 시대에 드물게 산업과 인프라를 동시에 설계할 수 있는 나라다. SMR만 봐도 흐름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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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유전쟁의 역설, 세계는 지금 태양과 배터리를 산다. 출처: EIA(2025) · Ember(2026) · Reuters · 한국수력원자력 · 산업통상자원부 |
| ⓒ 제작: 김영근 |
결론은 단순하다. 이번 전쟁은 석유의 시대가 다시 강해졌음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석유에 묶인 나라가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미국은 더 많이 생산해도 모두를 안심시키지 못하고, 유럽은 자국 안에서 만든 전기로 충격을 흡수하며, 중국은 청정기술 공급망으로 다음 질서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도 이제 버티는 나라를 넘어 설계하는 나라로 나아가야 한다. 에너지전환(EX)은 환경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수입 연료의 자리를 국산 전력과 국산 기술로 바꾸는 국가 전략이며, K-에너지를 통해 한국이 새로운 산업안보 질서를 선보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무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파인에도 실립니다.글쓴이 김영근은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겸 인문학과동아시아문화산업과정 교수이며, 사회재난안전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도쿄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박사를 취득한 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및 계명대 일본학과 조교수를 역임하였다. "AI시대의 안전경제학: 글로벌 불확실성 및 위기관리" 및 "북핵 리스크 관리와 ‘국제안보레짐’의 변용: 한미일 ‘연계정치’ 및 정책조정 메커니즘을 중심으로", 『포스트 제국주의』(공저), 『한일관계사 1965-2015. II: 경제』(공저), 『한일 관계의 긴장과 화해』(편저) 등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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