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16~19세기 대표작 52점 통해 보는 세계 속 유럽 미술
회화를 감상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한 시대의 일반적인 사상의 흐름에 따른 분류인 사조(思潮)로 구분해 감상할 수도 있고, 풍경화·인물화·정물화 등 장르에 따라 구분할 수도 있죠. 서울시 영등포구 더현대 서울 6층 ALT.1 미술관에서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럽 회화사의 흐름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전시가 열리고 있어요. 바로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톨레도 미술관 명작전'(이하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인데요. 서양미술사의 슈퍼스타 렘브란트, 19세기 근대 회화의 출발점을 연 화가 고야 등 유럽 회화 거장들의 원화를 직접 볼 수 있죠. 1901년 설립된 미국 오하이오주 톨레도 미술관의 주요 소장품이자 유럽 회화사의 변곡점으로 거론되는 거장들의 작품 52점을 통해 3세기에 걸친 서양 미술사의 흐름을 살펴봅니다.

르네상스 후기와 바로크·로코코·신고전주의·낭만주의.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서양 미술사의 흐름을 압축한 미술사조인데요. 이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은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교과서는 물론 각종 매체에서도 쉽게 접하기 마련이죠.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에서는 3세기에 걸친 시간을 6개의 키워드로 분류해 새로운 시선으로 소개합니다.
첫 번째 키워드는 '회화와 권력'이에요. 명작을 남긴 예술가들은 개인적 삶의 안정과 직업적 성공을 위해 상류층·재력가와 관계를 구축하고, 이들의 후원을 받은 경우가 많아요. 이러한 사회적 관계를 작품에서도 엿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호라티우스 삼 형제가 공화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맹세하며 경례하는 로마 전설이 바탕인 프랑스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1786)는 루이 16세의 주문으로 제작됐어요. 톨레도 미술관이 소장한 버전은 당시 고위 귀족이었던 보드뢰유 백작의 요청에 따라 다시 제작한 판본이죠.

또 1807년 2월 프랑스군과 러시아·프로이센 연합군이 충돌한 아일라우 전투 직후의 장면을 그린 프랑스 화가 앙투안 장 그로의 '아일라우 전장의 나폴레옹'(1807)은 프랑스 정부가 전쟁에 대한 비판 여론을 잠재우고 나폴레옹의 지도자력을 강조하기 위해 열었던 작품 공모를 통해 세상에 나왔죠. 이외에 17세기 유럽 궁정 초상화의 형식을 확립한 플랑드르(현 벨기에 북부) 화가인 안토니 반 다이크의 '남자의 초상'(1630), 18세기 후반 유럽에서 가장 성공한 프랑스 여성 초상화가 엘리자베트 루이즈 비제 르 브룅의 '세레스 백작 부인'(1784)도 만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키워드는 '신화와 기억: 1600년대에서 1700년대'예요. 14세기 이후 서유럽의 예술은 수 세기 동안 중세의 신 중심에서 벗어나, 인간이 세계를 이성적으로 파악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인본주의 신념이 중심인 르네상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어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당시 회화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어요.

조반니 파올로 파니니는 로마 유적의 아치·기둥·박공·장식 요소를 조합해 새로운 공간을 구성한 화풍으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 화가입니다. '음악회가 있는 건축적 환상'(1716-17)은 이러한 파니니 화풍의 특징을 잘 보여줘요.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기둥은 코린트식 장식과 기단을 갖춰 실제 로마 건축물과 유사해 보이지만, 사실은 파니니가 새롭게 조합한 공간이죠. 위베르 로베르는 고대 유적과 건축 공간을 열성적으로 탐구한 프랑스의 화가인데요. 실제 장소를 화폭에 옮기는 것 외에도 고대 로마의 여러 건축 요소를 조합해 이상화된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을 즐겨 사용했죠. 반쯤 무너진 고대 건물을 개조해 만든 실내를 묘사한 '로마 고대 유물 복원가의 작업실'(1783) 속 장소 역시 실제가 아니라 로베르가 상상으로 구성한 공간입니다.
세 번째 키워드는 '예술의 비즈니스: 1600년대에서 1700년대'입니다. 흔히 명화를 남긴 거장 하면 홀로 고독하게 붓을 들고 캔버스 앞에 앉은 모습을 상상하는데요. 이러한 고립된 이미지와는 달리, 르네상스부터 19세기까지 유럽의 화가들은 선대의 업을 이은 가문의 일원, 혹은 시장의 수요에 기반한 생산자로서 상당히 체계화된 산업의 일원인 경우가 많았어요.

'흰색 다엽접시에 담긴 시트론과 퀴라소 오렌지가 있는 정물'(1630~34)을 그린 루이즈 무아용은 17세기 프랑스 정물화 분야에서 독자적 위치를 확립한 여성 화가인데요. 파리의 화가·화상 가문에서 태어나 아버지에게 그림을 배웠고, 새아버지 역시 화가였습니다. 당시 여성이 전문적 직업을 갖기 어려웠던 시대였음에도 무아용은 과일·유리잔·도자기·바구니 등을 소재로 한 정물화로 성공을 거뒀죠.
회화를 제작하고 판매하는 산업이 유럽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갖춘 비즈니스 시스템으로 자리 잡으면서, 국제적인 스타 화가들도 등장합니다. 서양미술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 하르먼스존 판 레인이 그 주인공이죠. 전시에서는 렘브란트가 고향 레이던에서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하던 1631년에 제작한 '깃털 모자를 쓴 청년'을 만날 수 있어요. 이는 그의 초기작 중 하나로, 특정 인물을 묘사한 초상이라기 보다 익명의 모델을 활용한 작품입니다. 화려한 깃털 모자와 금목걸이 등 연극적 의상을 입은 인물인데요. 이러한 시각적 호소력을 갖춘 작품들은 상인들에게 활발히 판매됐죠.

19세기 근대 회화의 출발점을 연 스페인의 화가 프란시스코 호세 데 고야 이 루시엔테스는 인간 내면의 어둠과 사회적 비극을 다룬 작품으로 잘 알려졌지만, 18세기에 스페인 궁정 대표 화가로 먼저 명성을 얻었어요. 고야는 1770년대 중반부터 마드리드 산타 바르바라 왕립 태피스트리 공장을 위해 60점이 넘는 대형 태피스트리 밑그림을 제작했는데, 이 작업은 그가 궁정 화가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어요. 이번에 전시된 '수레를 탄 아이들'(1778-79)이 고야가 제작한 밑그림 중 하나죠. 즉, 이 시기 고야의 작품은 스페인에서 다양한 용도의 그림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시장이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네 번째 키워드는 '삶을 비추는 아름다운 시선: 1600년대에서 1700년대까지'입니다. 이 시기 이탈리아와 네덜란드에서는 평범한 삶 속의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하는 풍속화가 인기를 얻었죠. 네덜란드 화가 헤라르트 테르 보르흐의 '음악수업'(1660년대)은 네덜란드 중산층의 음악 연주 장면을 담았는데요. 탁월한 묘사와 인물들 사이의 친밀한 분위기는 중산층 후원자와 고객들이 그림 속 장면에 자신들의 삶을 투영하도록 유도합니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무결점의 우아함과 세련미를 강조한 풍속화가 대세였죠.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주는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까막잡기 놀이'(1750~52)가 포함됐어요. 안대를 끼고 연인의 위치를 확인하려는 여인의 모습이 담긴 그림이죠. 프라고나르는 당시 귀족 사회가 추구했던 우아함과 유희, 세련된 감각을 회화로 잘 표현해 명성을 얻은 화가인데요. 술래가 수건 등으로 눈을 가리고 다른 사람을 잡는 까막잡기 놀이는 18세기 유럽 귀족 문화에서 구애와 연인들의 애정 행각을 상징하는 유희였죠.
다섯 번째 키워드는 '자연의 포착: 1600년대에서 1800년대까지'입니다. 자연은 늘 우리 곁에 존재하지만, 나뭇잎 사이의 햇살이나 파도의 움직임 등을 화폭에 잘 담아내는 건 쉽지 않죠. 또 유리·금속·직물·과일·갑각류 등 서로 전혀 다른 재료들을 담은 정물화는 각 사물의 특성을 잘 포착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해요. 그럼에도 이 시기 풍경화·정물화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룬 화가는 존재합니다.

얀 브뤼헐 1세는 플랑드르의 명망 있는 화가 가문 출신인데요. 정교한 자연 묘사와 다양한 소재가 한 화면 안에서 유기적으로 배치되는 화풍이 특징이에요. 그는 생선 시장의 활기찬 정경을 즐겨 그렸는데, '어촌이 있는 풍경'(1604)은 브뤼헐의 관찰력과 탁월한 구성 감각이 결합된 작품이죠. 붉은 지붕의 건물과 나무, 인물들이 어우러진 강가 마을부터 시작해 먼 수평선의 돛단배까지 넓은 시야가 한 화폭에 담겨있어요. 여기에 옅은 안갯속에서 하늘의 푸른 빛이 물 위로 퍼지는 순간까지 포착했죠.
프랑스 화가 안 발라예 코스테르의 '바닷가재가 있는 정물'(1781)은 새하얀 천 위에 있는 선홍색 바닷가재를 중심으로 대형 은제 수프 그릇, 포도 바구니, 빵, 유리병 등 여러 사물이 조화를 이룬 정물화인데요. 바닷가재의 강렬한 붉은색 갑각은 주변 사물의 투명함 및 반사광과 선명한 대비를 이룹니다. 은제 수프 그릇 표면에는 화가의 작업실 창문과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모습까지 반사돼 보여 코스테르가 얼마나 정밀하게 사물을 관찰했는지 담겨있죠. 그의 작품은 18세기 프랑스 정물화가 얼마나 정교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마지막 키워드는 '세계 속의 유럽 미술: 1600년대에서 1800년대까지'입니다. 앞서 다섯 개의 키워드로 17~19세기 유럽 회화사의 화려한 역사를 살펴봤는데요. 유럽 전역에서 발달한 예술 비즈니스 이면에는 식민 지배의 어두운 역사가 숨어있습니다. 영국·네덜란드의 무역 회사들은 17세기 초 아시아·오세아니아·아프리카·아메리카 대륙의 물자를 유럽으로 들여왔을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인들을 아메리카 대륙으로 강제 연행해 노예 노동에 투입했죠. 이러한 물자와 인력의 이동은 유럽 대륙에 부를 가져왔고, 지적·예술적 교류를 확장시켰어요.
프랑스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귀환'(1839)은 1493년 콜럼버스가 첫 카리브해 항해를 마치고 카스티야 궁정으로 돌아와 금·모피·무기·가죽·조각상과 포로로 잡아온 원주민 등을 바치는 장면인데요. 들라크루아는 콜럼버스를 승리한 탐험가로 묘사했지만, 실제 역사에서 콜럼버스는 유럽 대륙의 식민지 확장에 앞장선 인물이죠.

튤립이 꽂힌 도자기 화병과 조개껍데기, 작은 새 등을 배치한 네덜란드 화가 발타사르 판 데르 아스트의 '과일, 꽃, 그리고 조개껍데기'(1620년대)에선 당시 네덜란드가 축적한 부가 드러나죠. 전 세계와 교류하던 네덜란드는 남태평양과 인도양산 조개, 터키에서 유럽으로 전해져 귀하게 여겨진 튤립, 앵무새와 도마뱀, 귀뚜라미와 같은 이국적 동물을 소장하는 문화가 유행했어요. 또 동방과의 교역을 통해 아시아의 공예품 역시 유입됐죠.
지금까지 1600년대부터 1800년대까지 유럽 주요 지역에서 활동한 거장들의 회화를 권력(후원자)과의 관계, 시장 속 수요와 공급, 무역과 식민 지배 등 여섯 가지의 키워드를 통해 살펴봤는데요. 자신만의 독창적 화풍으로 미술사의 흐름을 바꾼 거장들의 작품은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 시대를 증언하는 시각적 기록이란 사실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글=성선해 기자, 사진=톨레도미술관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난 대통령 될거야, 당신은…” MB 경악한 정주영 폭탄 발언 [이명박 회고록] | 중앙일보
- "돌연 수족냉증, 암이었다" 흉선암 이겨낸 의사의 5:5 식단 | 중앙일보
- 포춘 10대 기업 중 8곳 쓴다…챗GPT보다 안전한 ‘AI’ 뭐길래 | 중앙일보
- '29금 영화' 따라하며 아내와 성관계…그 남편 법정 선 이유 | 중앙일보
- 외도로 아이 방임한 엄마에 되레 친권…‘아동탈취’ 논란, 무슨일 | 중앙일보
- "한국 드라마 때문에" 주민들 폭발…일본 '슬램덩크' 동네 무슨 일 | 중앙일보
- “나 못 내렸어”…1호선 지하철 문 열어버린 50대 황당 행동 | 중앙일보
- 수능 만점자 4명이 제자…‘만점 택시’ 기사님의 깜짝 정체 | 중앙일보
- “생활비 빼곤 모조리 주식 올인”…청춘들의 이유있는 투자 광풍 | 중앙일보
- RPM 4500 넘자 속도 못냈다…‘급발진 제동장치’ 고령자 반응은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