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패배 용납 못 해”…중국이 중재외교 나선 이유 5가지 [VIEW]

신경진 2026. 4. 6.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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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2월 베이징을 방문한 에브라힘 라이시(왼쪽) 이란 대통령이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 이란 전쟁에서 이란이 패배하지 않도록 돕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AP=연합뉴스

중국이 이란의 패배를 막기 위한 중재 외교에 나서고 있다. 지난 2일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바레인·사우디아라비아·독일·유럽연합(EU) 외교장관과 연쇄 통화를 갖고 미국과 이란을 동시에 겨냥하며 조속한 적대행위의 중단을 촉구했다.

중국은 중재 외교를 중동을 넘어 유럽으로 확대했다. 왕 부장은 2일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대표와 통화 후 “유엔 안보리의 역할은 승인되지 않은 군사행동에 합법성을 부여해서는 안 되며 긴장 완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31일 왕이(오른쪽) 중국 외교부장이 이샤크 다르 파키스탄 부총리 겸 외교장관(왼쪽)과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요한 바데풀 독일 외교장관에게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며 “독일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장을 유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왕 부장은 앞서 지난달 31일에는 파키스탄 외교장관과 즉각적인 적대행위 중단을 앞세운 ‘중동평화 5대 이니셔티브’를 발표한 뒤 지지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6주째 접어든 가운데 중국은 “서두르지 않으면서 이란의 패배를 용납하지 않는 태도를 굳혀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개전 초 개입을 꺼리던 중국은 이란이 미국과 이스라엘에 패배해 친미정권이 들어서는 상황을 막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가 패배하지 않도록 암묵적으로 지원하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중국이 이란 지원에 나선 이유로는 크게 다섯 가지가 꼽힌다.

첫째, 미국의 호르무즈해협 장악 방지다. 이란에 친미 정권이 들어설 경우, 미국이 중국의 핵심 에너지 수입 통로를 차단할 수 있어서다.

둘째, 미국의 달러 패권 흔들기다. 중국은 이란과 석유 거래의 최소 80% 이상을 위안화로 결제하며 페트로위안화를 시험하고 있다. 이란 전쟁은 페트로위안의 정착을 위한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 24일 도이체방크는 이란전쟁이 불러온 달러 패권의 균열을 다룬 보고서 제목을 ‘이란이 달러에 미친 영향: 페트로달러의 퍼펙트 스톰(초대형 위기)’으로 붙였다.

송유관 이미지 뒤로 호르무즈해협과 이란의 지도가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셋째,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지키기다. 이란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핵심 글로벌 전략인 일대일로의 핵심 허브이자 파키스탄 과다르항에서 불과 100㎞ 떨어진 요충 국가다. 만일 이란이 붕괴한다면 중국은 과다르항 방어가 어려워지고, 일대일로의 서부 축이 무너진다.

넷째, 중국 서부 국경의 완충지대 확보다. 중국이 소수민족 거주지인 신장·티베트에 테러 집단의 유입을 막는데는 인접한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이란의 협력이 필수다. 중국이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에 지난해 이란의 가입을 추진한 것도 완충지대 확보가 핵심 이유였다.

다섯째, 이란에 투자한 기존 국가 이익의 사수다. 지난 2021년 3월 왕 부장은 테헤란을 방문해 향후 25년간 4000억 달러(약 604조원)를 투자하고 대가로 이란산 원유를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받는 ‘25년 협정’을 체결했다. 만일 이란이 미국에 패배한다면 중국의 투자는 무위로 돌아간다.

이란 역시 중국의 도움이 절실하다.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하면서 전세를 돌린 이란은 “적의 적은 친구”라는 통일전선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미국이 요구하는 ‘무조건 항복’을 거부하고 종전을 이끌어내야 하는 이란으로서는 중국의 개입을 원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미국의 의도와 달리 이란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중국은 전략적 우위를 확보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갤럽은 3일(현지시각) 지난해 130여 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중국 지도부에 대한 지지율이 36%로 미국 31%를 앞섰다고 발표했다. 갤럽조사는 이란 전쟁이 반영되지 않은 수치여서 이 차이는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경제적으로도 이란과 관계를 이용해 에너지 공급망 유지도 노리고 있다.

지난해 10월 30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부산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양자 회담 후 회담장을 나서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약 5주 앞으로 다가온 베이징 미·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새로운 협상 카드를 보탰다는 분석도 나왔다. 궈충룬(郭崇倫) 대만 연합보 부편집인은 4일 “이란 분쟁의 종식을 돕는 것은 중국의 핵심 이익에 부합한다”며 “이는 중국의 국제적 영향력을 높일 뿐만 아니라 5월 트럼프 방중을 앞두고 미국과의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동시에 이란 전쟁은 미국을 상대하는 중국의 패러독스(역설)도 드러냈다. 쭝위안 조이 류 미국외교협회(CFR) 펠로는 최근 포린 어페어스에 “단순히 약해진 미국은 관리할 수 있지만, 예측불가능하고 폭력적인 미국은 훨씬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류 펠로는 “시 주석이 가장 원하던 ‘신뢰할 수 없고, 자신감을 잃고, 힘도 없는 미국’과, 가장 두려워하던 더욱 불안정해진 국제 시스템을 모두 얻는 거대한 패러독스에 빠졌다”며 중국의 긴장감을 전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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