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수의 한반도 큐] ‘죽은 자’를 활용하려는 김정은의 묘지 건설 정치

정용수 2026. 4. 6.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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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전사자 묘역 조성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논설위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집권 이후 평양 현대화에 집중했다. 미래과학자거리, 위성과학자거리 등 대동강변을 따라 고층아파트를 짓고, 김일성 주석이 1970년대까지 생활하던 보통강변의 사저(5호택) 일대에 다락식(테라스형) 주택 단지를 조성했다. 2021년부터는 평양 외곽의 송신·송화지구, 화성지구 등에 매년 1만 세대의 살림집(아파트)을 건설하고 있다. 경제난 속에서도 평양판 뉴타운 공사를 통해 노후한 도시의 외관을 정비하고, 주민들의 생활여건 개선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허리띠를 졸라맸던 김정일 시대와 차별화를 강조하며 애민(愛民) 메시지를 발신하는 일종의 건설정치다.

「 김정은, 집권 후 평양 현대화
참전열사 묘역 등 새로 조성
주민결속·정통성 확립 활용
정상 국가 추구에는 걸림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월 건설 중인 해외 군사작전 전투 위훈 기념관 조성 공사장에서 지게차를 운전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집권 후 묘지에 관심
김정은의 대내 정책 가운데 살림집 건설과 함께 눈에 띄는 부분은 묘지 조성 사업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2011년 12월)하고 최고지도자에 오른 김정은은 곧바로 생모인 고용희의 묘지 성역화에 나섰다. 2004년 프랑스에서 사망한 고씨의 묘는 봉분만 덩그러니 만들어진 채, 바로 옆 북한의 국립묘지인 대성산 혁명열사릉에 비하면 ‘방치’ 수준이었다. 그런데 김정은이 집권한 직후 북한은 고씨의 묘지 봉분을 새로 만들고, 묘지 주변 정리는 물론 묘지 전방에 참배객들의 이동로를 내고 자그마한 광장 바닥에 대리석을 깔고 주차장까지 만들었다. 김정일의 후처였던 생모를 베일 속에서 꺼내고, 주요 인사들의 참배 접근성을 높이려는 차원이다. 김정일의 남산고등중학교 동창이자, 노동당 금고지기였던 전일춘의 사위인 류현우 전 쿠웨이트 대사대리(2019년 탈북)는 자신의 회고록(『김정은의 숨겨진 비밀금고』)에 “2014년 9월 추석을 기해 장인(전일춘)과 고용희 묘소를 찾았다”며 “지금은 혁명열사릉과 고용희 묘소 참배가 하나의 코스로 묶여 있다”고 썼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생모인 고용희의 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생모인 고용희의 묘. 김 위원장이 집권한 이후 새로 단장했다. 사진=구글 어스

여기에 더해 김정은은 집권 2년 차인 2013년 7월 평양 중심부의 북쪽에 위치한 서성구역 석박산에 조국해방전쟁(6·25전쟁의 북한식 표현) 참전열사묘역을 조성했다. 조성 당시 북한은 6·25전쟁과 베트남 전쟁 전사자, 1996년 강릉에 침투했던 무장 공비 등의 유해 600여 구를 이곳에 안치했다.

북한은 대성산 혁명열사릉과 신미리 애국열사릉 등 2개를 국립묘지로 삼아왔다. 혁명열사릉은 김일성 주석과 빨치산 활동을 함께했던 지휘관을, 신미리 애국열사릉은 해방 이후 고위 인사나 특별한 공로가 있는 순직자들을 안치했다. 기존 시설이 있었지만 김정은은 정전협정체결 60주년을 맞아 국립묘지급의 전쟁 추모 시설을 건설한 것이다. 김정일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전후해 소위 ‘적대 계층’으로 몰았던 월북자 60명을 안치한 재북인사묘역을 조성해 남북관계의 변화를 반영했는데, 김정은은 전쟁 관련 묘지를 통해 ‘혁명의 대(代)’를 잇는다는 식으로 정통성 확립에 나선 셈이다.

우크라 전사자 묘지도 별도 조성
김정은의 묘지 건설 정치는 집권 15년차인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북한 매체는 지난 3일 김정은이 해외 군사작전 전투 위훈 기념관 건설장을 현지지도했다고 전했다. ‘해외 군사작전’은 북한이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해 2024년 1만명 이상의 병력과 무기를 보낸 해외 파병의 북한식 표현이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다 사망한 전사자를 기리기 위해 기념관을 건립하고, 기념관 주변에 전자사의 유해를 안치했다. 사진 왼쪽이 화성지구 아파트 단지다. 사진=뉴스 1


해외 파병 사실을 함구하던 북한은 지난해 4월 “쿠르스크 해방작전을 성공했다”고 공식 확인했다. 이후 북한은 각종 열병식이나 정치 행사 때 해외 파병 사실을 지속적으로 언급하며 북·러 밀착을 과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김정은은 지난해 8월 파병 관련자 표창 수여식을 열고, 전투 위훈 기념관을 건립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리고 그 단지 바로 옆에 기념관을, 기념관 주위에는 전사자들의 유해를 안치하는 묘역 조성 공사를 진행 중이다. 김정은은 올해 들어서만 5차례 공사장을 찾는 등 묘역 조성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공사장을 찾아서는 기념관 경내에 심을 나무와 부인, 딸, 주요 간부들을 태운 지게차를 직접 운전하며 공사에 참여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국땅에서 희생된 전사자들을 자신의 정치 소재로 삼고 있는 것이다.

대외 정책에도 묘지 활용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자 그가 집무실 겸 거주 공간으로 사용하던 주석궁의 모든 창문을 없애고, 시신을 안치해 금수산기념궁전을 꾸렸다. 김정일 사망 이후 그의 시신도 이곳에 안치하고, 금수산태양궁전으로 이름을 바꿨다. 북한 주민들은 이곳을 ‘혁명의 성지’로 여기며 각종 기념일마다 참배하고 있다. 또 평양을 찾는 외부 인사들의 필수 방문 코스로 강요하기도 한다. 과거 남북 정상회담 때 남측 인사들의 참배를 강요할 정도다.

김일성 사망 후 권력을 넘겨받은 김정일은 “김일성 주석은 영생한다”거나 아버지의 생전 언급을 앞세운 유훈(遺訓) 통치로 위기를 넘겼다. 홀로서기에 나서는 김정은도 지난 2월 진행한 노동당 9차 대회 때 김일성과 김정일을 회의 대표자로 선정하는 등 ‘죽은 자’를 소환하는 모습은 선대와 유사한 모습이다.

차이가 있다면 묘지를 대외정책에 활용하려는 움직임이다. 북한은 이달 중순 쿠르스크 작전 종결 1주년을 기해 해외 군사작전 전투 위훈 기념관 완공을 예고했다. 북한은 기념관을 러시아와의 밀착의 상징으로 강조하며, 미국을 자극하는 소재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월 15일 딸 주애와 함께 러시아에 파병됐다가 전사한 참전군인 유가족을 위한 주택단지인 ‘새별거리’ 준공식에 참석했다. [노동신문=뉴스1]


김정은은 집권 이후 살림집 건설을 애민을 강조하고, 묘지 조성을 체제 유지와 대외 정책의 소재로 삼고 있는 셈이다. 김정은은 지난해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러시아 파병 전사자들의 유가족을 위한 아파트 건설과 기념관 건립을 위해 필요한 자금을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전사자들을 애도하는 주민들의 분위기를 전하려는 의도일 수는 있지만, 죽은 자들을 기린다면서 주민들의 주머니를 동원한 것이다. 북한은 김일성 시대부터 혁명 전통의 계승을 강조하며 대내 결속을 다지는 소재로 묘지를 활용했다. 그러나 묘지를 활용하는 정치가 대내외에서 얼마나 환영받을지는 의문이다. 그것도 주민의 돈으로 조성한 묘지라면 말이다.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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