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집값만 거품 꼈다? 메가 트렌드 보는 눈 가져야

2026. 4. 6.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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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혁우의 부동산 읽기]


평범한 소득으로는 가질 수 없는 아파트 가격을 보면서 우리는 투기 세력이 만들어낸 비정상적인 거품이라 치부하며 무력감을 느낀다. 물론 단기간에 급등하는 부동산 가격은 주거 안정을 해치고 경제에 부담을 준다. 하지만 감정적 대응이나 막연한 폭락론을 잠시 내려놓고 글로벌 경제 시스템을 차분히 들여다보면, 화폐 가치 하락과 거시적 변수에 따른 부동산 가격의 우상향은 자연스러운 경제 현상이기도 하다.

우리가 흔히 ‘거품’이라 부르는 인기 도시의 집값 상승은 한국 시장에만 존재하는 특수 현상일까. 시야를 넓혀 세계 지도를 펼쳐보면, 자본과 수요가 집중되는 핵심 지역의 부동산 가격 상승은 전 세계 주요 도시가 다 함께 겪는 ‘글로벌 동조화 현상’이자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메가트렌드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각국을 대표하는 주택의 거래 사례를 살펴보면 이런 현상은 뚜렷하다. 서울 강남의 ‘PH129’가 평당 약 2억3000만원 수준으로 거래돼 화제를 모았을 때, 미국 뉴욕 맨해튼의 ‘432 파크애비뉴’는 평당 약 3억8000만원, 영국 런던의 ‘원하이드파크’는 약 3억4000만원, 일본 도쿄의 ‘아자부다이힐스’는 평당 5억원 선에 거래됐다. 장기 경기 침체와 인구 감소를 겪은 일본조차 세계의 자본과 양질의 일자리가 집중되는 도시 인기 지역 가격만큼은 크게 상승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바다 건너 뉴욕이나 런던, 도쿄의 집값이 서울의 핵심지 집값과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가격 흐름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중심에는 전 세계를 촘촘하게 연결하며 국경을 넘나드는 ‘거대한 자본의 흐름’이 자리하고 있다. 글로벌 자본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예컨대 세 가지 경로를 통해 우리의 실물 경제에 침투하여 장기적으로 부동산 가치에 영향을 미친다.

첫 번째는 ‘직접 투자 채널’이다. 해외 연기금이나 대형 사모펀드, 국부펀드 등 막대한 자금력을 갖춘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은 지속적으로 안전하고 우량한 투자처를 찾는다. 이들은 강남이나 여의도 등 주요 도시의 핵심 오피스 빌딩, 대형 상업시설, 고급 호텔 등을 직접 매입하며 수백억, 수천억 단위 뭉칫돈을 유입시킨다. 이러한 거대 자본이 상업용 부동산의 가격을 한 단계 올려놓으면 자산 시장 전반의 활황 심리가 자극되며,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대형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들의 주변 토지 가격과 최종 분양가를 연쇄 상승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두 번째는 우리 일상과 대출 이자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금융 시장 채널’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국채나 회사채, 우량 주식 등 금융 자산을 대규모로 매입하면, 달러 등 외화가 대거 유입되면서 시중 통화량이 급격히 증가한다. 은행 금고에 유동성이 풍부해지면 개인과 기업에 자금을 빌려줄 수 있는 대출 여력이 늘어나고, 이는 결과적으로 우리가 체감하는 대출 금리의 하락을 유도한다. 금리가 낮아진다는 것은 곧 가계의 주택 구매력이 증가함을 의미하며, 늘어난 유동성은 결국 부동산 가격을 밀어 올리는 엔진이 된다.

세 번째는 ‘심리적 기대와 부의 사다리 채널’이다. 해외 고액 자산가나 글로벌 기업의 주재원들이 국내 최상위 고급 주택이나 레지던스를 매입하여 가격 상한선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키면, 이른바 대장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던 국내 상위 계층에게는 자신의 자산 가치가 늘어났다고 느끼는 ‘부의 효과’가 발생한다. 자산 규모가 커진 이들이 더 넓고 비싼 주택으로 갈아타기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최상급지에서 밀려난 대기 수요는 인접 자치구로, 또 거기서 밀려난 수요는 그 아래 중·상급지로 연쇄 이동을 시작한다. 최상단에서부터 시작된 이 촘촘한 연쇄 이동은 주택 시장 전반에 사다리 효과를 일으켜 결국 중저가 주택 가격까지 도미노처럼 상승시킨다.

실물 경제에서 발생하는 ‘글로벌 물가 상승(인플레이션)’ 역시 부동산 가격을 견인하는 요인이다. 코로나 팬데믹부터 최근 미·이란 전쟁 등 글로벌 공급망 붕괴와 지정학적 갈등은 원유 등 필수 재화 가격 급등을 초래했다. 이는 곧바로 철근, 시멘트, 인건비 등 건물을 짓는 데 필요한 기초 비용의 폭등으로 이어졌다. 즉 동일한 집이라도 투입하는 원가 자체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으며, 이는 정책만으로는 쉽게 통제하기 어려운 글로벌 공통의 현상이다. 이로 인해 신축 공급은 줄어들었고, 대부분 선진국들은 주택 공급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블랙록이나 캐나다 연기금 같은 거대 글로벌 투자 펀드들 역시 세계 주요 도시의 핵심 부동산을 하나의 거대한 ‘공통 투자 포트폴리오’로 편입시켜 운영하고 있다. 런던의 고급 주택, 뉴욕 맨해튼의 초고층 주택, 서울 강남 펜트하우스 등이 동일한 글로벌 자본의 지휘 아래 함께 움직이는 시대다. 좋은 곳에 거주하고픈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 전 세계를 떠도는 막대한 규모의 유동성, 그리고 금융의 톱니바퀴가 정교하게 맞물려 선호 지역의 부동산 가치는 중장기적으로 꾸준히 우상향하고 있다.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에서 부동산 가격의 상승은 세계 선진국들의 공통현상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부동산 가격, 정책 등을 살펴보는 것뿐만 아니라 미국 기준금리, 글로벌 부동산 펀드의 자금 유입 여부 등 거시적 변수에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글로벌 현상을 긴밀하게 관찰하고, 긴 호흡으로 경제의 큰 그림을 읽어내는 연습을 하는 것이 내 집 마련 또는 부동산 투자에 있어 가장 필요한 덕목일 것이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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