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시라는 ‘가짜 결승선’ [편집장 레터]

명순영 매경이코노미 기자(msy@mk.co.kr) 2026. 4. 5.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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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생 A씨는 PD를 꿈꾸며 서울 소재 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에 들어갔습니다. 막상 전공이 맞지 않았죠. 졸업을 앞둔 무렵 자본 시장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요즘 금융권 입사는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상경계가 아닌 문과생에게는 더욱 가혹하죠.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중형 증권사 3개월짜리 인턴부터 파고들었습니다. 가장 밑바닥에서 실무를 익혔습니다. 틈날 때마다 공부해 만점에 가까운 점수로 투자자산운용사 자격증까지 취득했습니다.

짜여진 일정대로 내달렸지만…나 홀로 헤쳐갈 현실 냉엄
자립 근육 못 키우는 교육…현장직 청년 경로 이탈 응원
남다른 성실함은 좋은 평판을 남겼습니다. 이후 작은 투자자문사 마케팅 자리를 얻었고 몇 년 경력을 쌓아 더 큰 운용사로 옮겼습니다. ‘문송합니다(문과라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당연해진 요즘, 취업 문을 가볍게 뚫었습니다. 그것도 금융권을 말이죠.

여기까지는 전형적인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 모범생 스토리입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취업 후기인데 엄마는 이 자녀를 바라보기가 힘듭니다. 항상 불안해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회사에서 어떤 일을 맡아도 만족하지 못하고 쫓기듯 삽니다. 새 자격증에 매달리고, 새 직장을 찾습니다. 성공 욕구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걱정이라고 엄마는 말합니다. 또는 뒤처지지 않으려는 관성의 연속인 거죠.

젊은이의 불안감은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당장 일자리가 넉넉하지 않죠. 경쟁은 치열하고 누군가는 낙오됩니다. 내집마련 꿈은 너무 멀어보이고요. 두 가지 현실만 생각해도 충분히 골치가 아픕니다. 파울로 코엘료의 말처럼 젊음은 눈부시지만 가장 잔인한 계절입니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지만 동시에 아무 것도 결정된 게 없으니까요.

어떤 이는 다른 각도로 해석합니다. ‘대학 입학’이라는 결승선만 바라보고 살아온 대가라는 겁니다. 윤택해진 한국의 부모는 자녀 입시에 모든 걸 쏟아붓죠. “공부만 하라”며 부족한 것 없이 키웁니다. 학생은 그 어떤 고민도 필요 없습니다. 학원이든 선행학습이든 수행평가든 주어진 스케줄을 따르면 그만입니다.

자녀의 고민은 대학 문턱을 넘고나서부터죠. 부모의 일정표에서 벗어난 뒤 나 홀로 의사결정하며 험난한 현실을 헤쳐가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취업 불안, 가족 갈등, 인간관계, 자기 관리 등 각종 어려움을 호소하는 학생들로 교내 상담센터가 북적거립니다. 점집에 젊은이가 몰려드는 현상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됩니다.

조언이 마땅치 않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식의 말로는 위로가 안 될 겁니다. 다만 새로운 길을 개척한 ‘블루컬러’ MZ세대 청년을 소개하려 합니다. ‘위험물산업기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HD현대오일뱅크에 고졸 특채로 들어간 강 모 씨, 투자 실패로 좌절하다 용접기사로 전환해 연봉 8000만원을 버는 길 모 씨, 사무직을 버리고 도배사로 거듭난 이 모 씨 등입니다.

넥타이를 매든 용접봉을 들든 직업에 우열은 없습니다. 다만 현장직 젊은이는 우리 교육이 정해놓은 틀을 벗어난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 결단을 내리기까지 깊은 고민의 나날이 있었겠죠. 이들의 아름다운 경로 이탈이 ‘가짜 인생 결승선’에 올인하는 문화에 경종을 울리길 바랍니다.

[명순영 편집장·경영학 박사 myoung.soonyou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4호(2026.04.08~04.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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