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라면 분명히 고쳤을 텐데 건드리지 않은 문장

최은경 2026. 4. 5.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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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썼으면 고쳐야지] 맥락과 의도 살리기

시민기자가 쓴 글을 매일 고치고 다듬는 사람의 이야기. 인공지능(AI)이 쓰고 고치는 시대에, 인간이 쓰고 고치는 마음을 찬찬히 담아 봅니다. <기자말>

[최은경 기자]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만든 이미지.
ⓒ 오마이뉴스
"많이들 사용하시는구나."

인공지능(AI) 이야기다. 글쓰기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하고 있다면 그 사실을 밝혀달라는 공지를 내보냈더니 '문장 다듬기, 제목 뽑기' 등에 인공지능을 쓰고 있다고 답한 경우가 많았다. 편집기자의 주 업무인 '퇴고'도 인공지능에게 맡길 날이 곧 올지도 모르겠다.

'쓰고 고치는 마음'이 뭔지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생각이 더 많아진다. 인공지능 훈련용으로 쓰고 있는 글이 아닌데, 글 쓰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기획한 건데... 내 글의 쓸모를 한 치 앞도 모르겠는 그런 상황. 그래서 인공지능에게 물어봤다.

"나는 24년차 편집기자고 현재 '퇴고의 마음'이라는 글을 쓰고 있어. 그런데 요즘 많은 사람들이 퇴고를 인공지능에 맡기는 경우가 많더라. 그래서 내 글의 쓸모에 대해 고민하게 돼. 인공지능의 퇴고와 편집 전문가인 내 퇴고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인공지능은 이런 이야기들을 해줬다. 인공지능의 퇴고는 기술적이며 통계적 확률로 고치는, 즉 평균값에 근거한 수정이라는 것. 반면 24년차 편집기자의 퇴고는 글의 관점을 생각하고, 메시지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드러낼 것인지를 고민하는 등 독창적인 스타일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문장으로 'AI는 정답을 내놓지만 편집자는 해답을 찾습니다'라고 정리했다.

나는 즉문했다. 정답과 해답은 어떻게 다른 거냐고. 인공지능은 즉답했다. 퇴고에서의 정답은 '규칙과 표준'에 근거하여 맞춤법, 띄어쓰기, 주술 호응, 비문 수정처럼 누가 봐도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을 바로잡는 것이고, 퇴고에서의 해답은 '맥락과 의도'에 근거하여 최적의 수를 찾는 사람이라고. 그러더니 이번엔 인공지능이 나에게 물었다.

"기자님께서 최근에 보신 글 중에, AI라면 분명히 고쳤을 텐데 기자님은 '이게 맞다' 싶어 그대로 두거나 오히려 더 파격적으로 고치셨던 문장이 있을까요? 그 사례가 바로 기자님만이 줄 수 있는 '해답'의 좋은 예시가 될 것 같습니다."

쉐프의 레시피와 할머니 손맛 차이

마침 떠오르는 예시가 있었다. <오마이뉴스> 2025년 12월 1일 자 기사 '만 56세의 실직 1년 기록... 구직 급여 하루 6만 6000원'이다. 만 56세 퇴직 노동자가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3월부터 10월까지 서울서부고용지원센터에 네 번 간 이야기를 담담하게 적어 내려간 글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에 그만의 글 습관이 보였다. 가령, 명사로 끝나는 문장이라든가, '~터'로 끝나는 문장들. 이런 습관들은 독자가 읽기에 다소 어색하고 튀어 보일 수 있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고 글쓴이의 개성으로도 볼 수 있기에 굳이 고치지 않고 두었다. 이렇게.

1995년 4월 1일부터 29년 10개월 동안 이어진 언론 노동 이력. 만 56세. 오십 대 한국 노동자 발걸음이 무겁기 때문이었을 터. <어쩔 수 없다> 속 '만수'처럼 재취업하기가 녹록지 않다. 만수는 총을 들었지만 나는 구직 급여 하루 6만 6000원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나마 '어쩔 수' 있던 버팀목. '만수' 손에도 총 말고 구직 급여를. - 기사 원문.

만약 인공지능에게 '일반 독자들이 읽기 쉽게 문장을 다듬어줘'라고 요청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글쓴이의 이런 글맛을 독자들은 전혀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평균값에 근거해서 문장을 고쳤을 테니까. 이렇게.
1995년 4월 1일부터 시작된 언론 노동자의 삶이 29년 10개월간 이어졌습니다. 어느덧 만 56세. 쉰을 넘긴 한국 노동자의 발걸음이 유독 무거웠던 건 아마 이 때문이었을 겁니다. 영화 <어쩔 수 없다> 속 '만수'처럼 다시 일자리를 구하는 일은 결코 녹록지 않았습니다. 극 중 만수는 절망 끝에 총을 들었지만, 현실의 나는 하루 6만 6,000원의 구직급여를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것이 내가 '어쩔 수 있게' 버틸 수 있었던 최소한의 보루였습니다. 부디 '만수'의 손에도 총 대신 삶을 지탱할 구직급여가 쥐여지기를 바라봅니다. - 인공지능이 고친 문장.

내 눈엔 글쓴이의 의도와 다르게 바뀐 문장들과 문장부호 오류들이 보인다. 이 상태라면 또다시 글쓴이가 의도에 맞게 퇴고해야 한다. 이러느니 내가 직접 하고 말지 소리가 나올 법하다.

하나의 사례를 통해 보았듯 글쓴이의 개성과 의도를 살리는 편집은 내가, 또 인간이 잘할 수 있는 일이다(물론 앞으로 점점 더 뛰어난 버전이 나오겠지만). 이를테면 레시피와 할머니 손맛 같은 차이랄까. 아무리 뛰어난 쉐프라도, 완성도가 높은 레시피라 해도 할머니 손맛은 당할 수 없는 것처럼. 그런 생각도 하게 된다. 누군가는 평균값에 근거한 편집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손을 거친, 그 맛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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