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명을 삼십 분마다 한 명씩 사형, 그중에 남편이 있었다
[이태경 기자]
'강순희가 말하고 유시민 듣다'는 부제가 달린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2026년 3월 출간)는 박정희와 민복기 사법부에 의해 법살당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희생자 우홍선씨의 아내 강순희의 일대기이자 개인의 일생에 압축적으로 담긴 한국 현대사의 얼굴이다. 우리가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를 읽어야 하는 이유들은 수다하지만 폭력과 야만의 역사가 우리가 방심하는 사이 언제라도 현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는 지점은 단연 손에 꼽힌다.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는 강순희가 구술하고 유시민이 듣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유시민이 책에서도 썼듯 이 책은 집단 창작물이다. 김세라 작가가 이임하 박사가 만든 구술 기록을 사건이 일어난 시간에 따라 통합 정리해 초고를 만드는 작업을 했고, 유시민은 프롤로그를 쓰고 본문의 구조를 조정했으며 문장을 깔끔하게 다듬었다. 한국현대사에 생소한 독자들을 위해 필요한 역사정보를 간추려 편집자주 형식으로 넣는 작업은 4.9재단 이창훈 실장과 은빛기획 노항래 대표와 김세라 작가의 수고에 힘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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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 - 강순희 말하고 유시민 듣다, 유시민, 김세라(지은이) |
| ⓒ 은빛 |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중국군이 개입한 후 강순희와 그의 가족들은 평양에서 고향인 박천으로 피난 갔다 다시 평양으로 내려온 후 개성, 서울, 대전을 거쳐 부산까지 내려간다. 고단함과 핍진함과 위험으로 가득했던 피난길은 외부의 위협과 생계라는 이중의 적과의 생사를 건 고투였다.
하지만 강순희는 그 험난했던 시간들을 특유의 독립성과 지혜로 헤쳐나갔고 한국은행이라는 번듯한 직장에 입사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운명처럼 당시 육군 장교이던 우홍선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한다.
강순희의 술회에 따르면, 우홍선을 1954년 스물한 살에 처음 만났고, 스물둘에 약혼했고, 스물셋에 결혼했고, 스물넷에 큰딸을 낳았다. 강순희와 우홍선의 결혼은 남남북녀의 혼인이라 할 것인데, 두 사람은 20년이 넘는 혼인생활을 하며 슬하에 1남 3녀를 두었다.
강순희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우홍선과의 범어사 첫 데이트로 꼽을 정도로 남편 우홍선을 사랑했다. 두 사람은 서로 존중하며 금슬 좋게 살았다. 그리고 강순희와 우홍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사건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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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순희 구술 자서전 인터뷰 영상 화면 캡처. |
| ⓒ 은빛 |
그런데 1961년 5.16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박정희 정권은 4.19혁명 이후 분출하던 학생, 언론, 교사, 노동, 혁신정당, 통일운동 등 민주적 요구들을 소급입법까지 제정하며 탄압하였다. 그리고 박정희 정권은 굴욕적 한일회담에 대한 학생들의 반대 투쟁이 거세지자 1964년 6월 3일 계엄령을 선포하고,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1964년 8월 소위 '인혁당사건'을 발표한다.
학생 시위의 배후에 북괴의 지령을 받고 국가변란을 기도한 대규모 지하조직 '인혁당'이 있다는 것인데 물론 이는 김형욱의 중앙정보부 등이 혹독한 고문을 도구로 만들어낸 대표적 조작사건이었다. 워낙 무리한 수사였기에 무죄판결도 많이 나왔고 형량도 가벼운 경우가 많았다. 우홍선은 인혁당 사건에 연루돼 1년 남짓의 옥고를 치른다.
박정희 정권의 폭압 속에서도 일상은 지속됐고 강순희와 우홍선의 삶도 영위됐다. 하지만 박정희는 이들의 행복한 시간이 계속되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박정희가 사실상 왕이었던 유신 체제에서 반유신 움직임이 본격화 되자 박정희 정권은 1974년 4월 전국시위를 벌이려 했다며 대학생 조직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 사건을 조작하고, 민청학련의 배후에 '인혁당 재건위원회'가 있다는 황당한 발표를 한다. 공포통치의 일환으로 민청학련 연루자들과 인혁당 재건위 연루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 것인데, 물론 이들 사건은 중앙정보부의 완전한 날조였다.
놀랍게도 박정희 정권은 민청학련 연루자들과 인혁당 재건위 연루자들을 군법회의에 회부했고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불과 열달 만에 유죄확정판결한다. 중앙정보부는 상상도 못할 고문을 통해 인혁당 재건위 연루자들의 허위진술을 받아냈고 공판 기록까지 조작했다. 하지만 민복기 대법원장의 대법원은 이를 모두 무시하고 사형판결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마침내 '사법 역사상 암흑의 날'이 밝는다. 박정희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다음날 새벽, 사형선고를 받은 여덟 명을 삼십 분마다 한 명씩 살해했다. 서도원, 김용원, 이수병, 우홍선, 송상진, 여정남, 하재완, 도예종이 그들이다. 이들은 30대에서 50대 초반에 걸쳐 있었다. 강순희의 남편 우홍선은 당시 45세였다. 박정희 정권은 고문 흔적을 인멸하려 시신 탈취까지 했다.
강순희가 인생을 대면하는 자세
강순희의 삶은 인혁당재건위 사건 이후 완전히 달라진다. 그녀는 가장 전투적인 투사가 됐고 마침내 2007년 인혁당 사건 재심 무죄까지 쟁취한다. 강순희와 인혁당 재건위 부인들의 투쟁은 필설로 형언하거나 몇 마디로 압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면서도 강순희는 자식들을 잘 키워냈고 자신의 실존적 삶에도 충실했다.
한국현대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경험했을 뿐 아니라 박정희 정권의 악마성을 누구보다 직접 체험한 강순희는 그러나 세인들의 예측과는 달리 "사는 동안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아무 여한이 없다'고도 한다. 강순희의 이 말은 서글픈 정신승리나 어설픈 자기 위안이 아니다.
강순희는 "살아보니 인생이란 이런 거더라,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더라, 혹시 그런 거 있으세요?"라는 유시민의 물음에 "자기한테 주어진, 자기 앞에 펼쳐진 운명을 열심히 살아가는 거, 그게 인생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과 현실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서 극복하며 사는 거, 그게 인생이다. 어려운 문제가 생겨도, 장애물이 닥쳐도, 원망 같은 거 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거다. 그런 게 쌓여 인생이 된다. 얘들한테 늘 그렇게 얘기했어요. 나도 그렇게 살았고"라고 답한다.
거기에 강순희가 야만과 폭력의 세월을 건너올 수 있었던 비결이 숨어 있다. 인생을 대하는 강순희의 인식과 태도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울림과 지침을 준다. 강순희라는 인간존엄의 증좌를 발견하고, 12.3내란이 성공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를 생생히 그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는 숙독할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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