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 자폭 로봇에 항복"...'터미네이터 전술'로 버티는 우크라

이근평 2026. 4. 5.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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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은 스타워즈가 아니라 터미네이터에 가깝다.”

우크라이나군 드론 조종사는 소모전으로 굳어진 최근 전황을 외신에 이같이 표현했다. 화려한 미래전보다 무인기계를 앞세운 버티기식 지상전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선의 양상을 바꾸고 있다는 게 영국 일간 가디언의 분석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점령을 주장하는 상황에서도 우크라이나는 로봇과 드론을 통해 반격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9월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랜드 드론(UGV)을 옮기고 있다. AP=연합뉴스


보급 90%를 대체한 UGV


우크라이나군의 생명줄로 자리매김한 전투 자원은 이른바 ‘랜드 드론’으로 불리는 무인지상차량(UGV)이다. 매체 따르면 우크라이나가 2024년 봄 이후 투입을 늘려온 UGV는 궤도형, 바퀴형, 지뢰 탑재형 등 여러 형태로 현재 전선을 누빈다. 1회 충전으로 약 8시간 운용이 가능하며 장갑차보다 크기가 작아 적의 자산에 포착될 확률이 낮다. 병력의 직접 이동을 어렵게 만드는 1인칭 시점(FPV) 드론에 대응이 가능한 셈이다.

우크라이나 제3군단의 빅토르 파블로프 중위는 “이것이 현대전의 모습”이라며 “모든 군대가 로봇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군 지상 보급의 90%가 로봇으로 대체됐다. 올해 1월 한 달간 UGV 작전 횟수는 7000건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고 한다.


자폭 로봇에 항복한 러시아 병사들


임무도 늘고 있다. 원격 기관총과 유탄발사기를 장착한 UGV는 45일간 단독으로 진지를 방어한 적이 있다. 지난해 여름에는 폭발물 200㎏을 실은 자폭형 로봇이 20㎞를 주행해 러시아군이 사용하던 학교 건물을 파괴하기도 했다.

당시 전쟁 사상 최초로 러시아 병사들이 무장 UGV에 항복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피투성이가 된 병사들이 무너진 건물에서 걸어 나왔고 제3군단은 해당 지역을 탈환했다.

지난해 9월 우크라이나군이 랜드 드론(UGV)을 시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가디언은 우크라이나 전선을 놓고 “더 이상 값비싼 탱크가 돌파하는 곳이 아니다”고 봤다. 값싸고 소모 가능한 드론과 지상 로봇이 얼마나 끈질기게 밀고 들어가는지가 핵심이 됐다는 의미다.

야전에서 체감하는 무기와 전술 변화는 더욱 생생하다. 우크라이나 제25공수여단 드론 조종사는 가디언에 “사람은 가슴에 총을 맞으면 사격을 멈추지만 지상 로봇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포크로우스크 인근 참호 입구까지 굴러온 이 로봇을 보고 원시인이 외계 기술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며 “2년 전에는 상상도 못 했을 광경”이라고 털어놨다.


보급·전투·공병·후송 등 다방면 활용 "손실률 25%는 작은 비용"


UGV는 전장에서 벌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임무에 활용되고 있다. 최신형 모델은 지뢰 부설·제거, 철조망 설치, 파손 차량 견인 같은 공병 임무까지 수행한다. 한 대당 최대 3명의 부상병도 후송할 수 있다. 파블로프 중위는 “하루 평균 3대가 러시아 공습에 파괴돼 25%의 손실률을 기록하지만 보병의 생명을 지키는 대가로는 작은 비용”이라고 말했다. 미하일로 페도로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도 “6개월 전만 해도 로봇을 이용한 부상병 후송은 드물었다”면서 “지금은 투입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가디언은 시뮬레이터와 설원 주행 훈련을 갖춘 훈련소에서 UGV 조종사를 교육시키는 시스템도 조명했다. 한 교관은 “게이머 출신이 이 기술에 가장 빠르게 적응한다”며 “일반 군인보다 효과적”이라고 평가했다.


러, 루한스크 점령 선언에 우크라 "만우절 장난 같다"


우크라이나를 UGV의 선두주자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러시아와 소모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는 지난 1일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주 전역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CNN은 “루한스크주 대부분은 개전 첫해부터 러시아가 장악해왔다”며 “루한스크주 점령 주장은 2022년, 2024년에 이어 세 번째”라고 보도했다.
지난 1월 우크라이나군이 자포리자 전선에서 랜드 드론(UGV)을 시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일각에선 러시아의 선전전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 소재 전쟁연구소(ISW)는 이번 발표에 대해 “미미한 전선 변화를 부풀려 러시아군이 빠르게 진격하고 있다는 허상을 심기 위한 목적”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우크라이나 방어선이 붕괴 직전이라는 인상을 강화해 미국 등 파트너국이 우크라이나에 불필요한 영토 양보를 강요하도록 유도하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군도 “전선은 6개월간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며 “만우절 장난 같은 발표”라고 일축했다. 제3군단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루한스크주 내 마을 2곳을 점령하기 위해 144차례 돌격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안드리 빌레츠키 제3군단 사령관은 “새로운 전술적 접근이 궁극적으로 승패를 가를 것”이라며 “공중 드론 혁명에 이어 (UGV라는) 또 한 번의 혁명이 임박해 있다”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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