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부족하면 '메롱', 셔터를 거부하는 카메라

이재필 2026. 4. 5.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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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화가 지원된 Olympus Trip 35와 3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대구 갓바위

사진가이자 작가로 활동하며 전통시장과 주변의 일상을 기록해왔다. 오래된 필름카메라를 통해 사라져 가는 풍경과 기억, 기록의 의미를 묻는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기자말>

[이재필 기자]

▲ iphone 15촬영 올림푸스 하프카메라 pen시리즈와 같은 외형이지만 35 숫자가 풀프레임이라는걸 알려준다.
ⓒ 이재필
빛이 먼저 말을 걸어오는 순간

한동안 카메라를 멀리하던 내 손에 Olympus Trip 35가 쥐여졌다. 배터리 없이 오직 셀레늄 광전지가 읽어낸 빛으로 노출을 결정하는 이 투박한 기계는, 어쩐지 그날 내가 향하던 산과 닮아 있었다. 산이라는 공간은 예측할 수 없는 순간들로 가득하다. 갑자기 동물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누군가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찰나가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그런 장면을 붙잡기 위해서는 복잡한 설정으로 작동하는 카메라보다, 곧바로 반응할 수 있는 자동화가 지원된 카메라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작고 가벼운 몸체는 짧은 산행이라 할지라도 마음의 부담을 덜어준다. 아마도 그런 이유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생각보다 먼저, 자연스럽게 손이 그 카메라를 향해 있었다.

나의 유년은 대구라는 거대한 분지에서 시작되었다. '분지'라는 단어는 교과서의 정의보다 몸의 감각으로 먼저 기억하는 구조였다. 고개를 돌리면 어디에나 산이 있었고, 그것은 풍경이라기엔 일상이었다.

앞산이라 불리던 대덕산부터 두류산, 비슬산, 그리고 팔공산까지. 산은 늘 삶의 배경처럼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일주문 앞에서 지인들과 손을 흔들며 찍은 사진 한 장에는, 그 익숙한 산세 아래로 다시 돌아온 우리들의 설렘이 박제된 것 같았다.
▲ 올림푸스 trip35촬영 일주문 앞 지인들과의 단체 사진 - 찌이익, 촥. 팔공산의 공기를 한 프레임에 담았던 시작점.
ⓒ 이재필
1192미터의 무게 그리고 갓바위의 기억

그중에서도 팔공산은 유독 묵직한 존재감을 지닌다. 해발 1192미터라는 숫자 때문만은 아니다. 그곳은 수험생과 부모들의 간절함이 모이는 '염원의 산'이기 때문이다. 갓을 쓴 듯한 형상의 석조여래좌상, 즉 '갓바위' 부처님께 빌면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이야기는 수능 철마다 산 전체를 몸살 앓게 할 만큼 뜨거웠다.

나 역시 수능을 앞둔 어느 날, 등 떠밀리듯 그 가파른 길을 올랐던 기억이 있다. 간절한 소원보다는 차오르는 숨을 참아내며 '버티는 것'에 급급했던 시간. 그래서인지 내게 갓바위는 영험한 성지보다는 다시는 오르고 싶지 않은 고단한 장소로 각인되어 있었다.

세월이 흘러 다시 마주한 해태상은 변함없는 표정으로 입을 벌린 채, 그때의 나처럼 헐떡이며 올라오는 이들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 올림푸스 trip35촬영 수십 년의 세월을 입을 벌린 채 버텨온 존재, 그 투박한 질감에 눈길이 머문다.
ⓒ 이재필
셔틀 대신 Trip 35와 함께하는 보행

2026년 새해를 맞이한 지 석 달, 문득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불자라는 이름을 가졌으면서도 가까운 절 한 번 찾지 않았다는 부채감, 그리고 한 해를 무사히 보내고 싶다는 소박한 약속이 필요했다. 그렇게 지인들과 함께 다시 팔공산으로 향했다.

우리는 경산 와촌의 관음휴게소 코스를 택했다. 예전보다 산은 훨씬 가까워져 있었다. 주차장에서 등산로 입구까지 편리한 셔틀버스가 오갔지만, 나는 800미터 남짓한 길을 기꺼이 걷기로 했다. 길가에 늘어선 석등들이 마치 호위무사처럼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목에 걸린 Trip 35의 렌즈를 통해 빛을 읽으며 천천히 발을 뗐다.

이 카메라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ISO, 그러니까 필름 감도만 맞춰두면 이후에는 크게 신경 쓸 것이 없다. 거리 링을 통해 초점을 한 번 설정해두면, 그 이후에는 다시 맞출 필요 없이 그 감각 안에서 촬영이 이어진다. 클래식한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자동 노출에 맡겨두면 별도의 조작 없이도 충분히 작동하고, 사용자는 그저 거리를 가늠하는 일에만 집중하면 된다.

2.5미터, 5미터, 그리고 무한대. 대략의 감각으로도 충분하다. 이 방식은 불편하다기보다 오히려 직관에 가깝다. 팔을 뻗었을 때의 60~80센티, 한 걸음을 크게 내디뎠을 때의 1미터 같은, 몸에 익은 휴먼 스케일(인간의 신체를 기준으로 크기를 가늠하는 방식)만으로도 피사체와의 거리를 충분히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카메라는 기술을 다루기보다 감각을 꺼내 쓰게 만든다. 덕분에 나는 사진을 찍는 관찰자가 아니라, 길 위의 풍경 자체가 되어 산을 올랐다.
▲ 올림푸스 trip35촬영 2.5미터 혹은 무한대. Trip 35가 가르쳐준 적당한 거리감으로 걷는 길.
ⓒ 이재필
연등에 가려진 것과 프레임 너머 드러난 것
공사 중인 철제 계단을 지나 30분쯤 올랐을까, 도착한 갓바위는 기억 속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3월 말임에도 불구하고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걸린 연등이 시선을 압도했다. 빨강, 파랑, 노랑의 연등이 기하학적인 무늬를 그리며 하늘을 메웠고, 그 사이사이에 매달린 수많은 소망의 종이들이 바람에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연등 그림자 아래 가려진 부처님의 얼굴은 온전치 않았으나, 오히려 그 가려짐이 세속의 간절함을 묵묵히 받아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올림푸스 trip35촬영 빨강, 파랑, 노랑. 필름 위에 현상된 봄날의 색채들.
ⓒ 이재필
그러나 시선을 돌려 사찰의 어두운 전각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순간,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어두운 기와지붕과 기둥이 프레임이 되어준 그 너머로, 겹겹이 쌓인 능선과 멀리 흐릿하게 이어지는 도시의 흔적들이 한 폭의 산수화처럼 담겼다.
가려진 소망의 숲과 시원하게 드러난 자연의 위용이 한 공간에 공존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연등 아래서 부귀영화와 합격을 빌었다. 나 또한 그들 사이에 서서 대답 없는 질문들을 던졌다. 오래도록 찾지 않았음에도 산은 여전히 너그러운 품으로 나를 받아내고 있었다.
▲ 올림푸스 trip35촬영 연등의 색깔만큼이나 다양한 소원들. 그 촘촘한 밀도 속에 잠시 머물다.
ⓒ 이재필
불완전한 셔터가 가르쳐준 현재의 소중함

하산하는 길, 30년이라는 세월이 찰나처럼 겹쳐졌다. 너무 오랜만이라 '회귀'보다는 '처음'이라는 낯섦이 더 컸지만, 그 낯설음 덕분에 올해를 어떻게 살아갈지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은 더욱 선명해졌다.

그 곁에서 Trip 35는 묵묵히 제 역할을 다했다. 빛이 부족하면 붉은 '혓바닥'을 내밀며 셔터를 거부하고, 초점은 온전히 나의 감각에 맡겨지는, 어쩌면 불완전한 카메라. 하지만 그 정직한 제약 덕분에 나는 비로소 현재에 머물 수 있었다. 이 카메라가 건네는 신호는 단순하다.

내장된 셀레늄 노출계는 복잡한 수치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지금 촬영이 가능한지, 아닌지를 판단할 뿐이다. 그리고 그 결과를 올림푸스 특유의 유머로 드러낸다. 붉은 혓바닥 하나, 마치 "지금은 조금 어려워"라고 장난스럽게 말하듯이.
▲ 올림푸스 trip35촬영 어둠이 프레임이 되어줄 때, 비로소 산의 능선은 제 얼굴을 선명히 드러낸다.
ⓒ 이재필
"지금 이 빛으로 충분할 수도 있다"는 것. 산 아래로 내려와 다시 일상의 소음 속으로 돌아왔지만, 그날의 고요함과 빛, 그리고 필름에 기록된 팔공산의 공기는 여전히 내 곁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아마도 나는 다시 걷게 될 것이다. 빛이 먼저 말을 걸어오는 순간을 따라, 또 다른 길 위에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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