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에 관대했던 교회"... 78년 만에 터진 개신교의 통렬한 고백

고창남 2026. 4. 5.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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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5대 종단 제주4.3 추모의례... 제주4.3에 대한 개신교의 뒤늦은 참회

[고창남 기자]

"교회는 그 출발을 제노사이드로 시작해서인지 학살에 관대해요."

지난 3일, 제주4.3범국민위원회 주관으로 서울 종로구 송현광장에서 열린 '5대 종단 제주4.3 추모 의례'에서 개신교 대표로 나선 윤태현 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 제주노회 정의평화생명위원)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단호했다.

불교,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 천도교 등 5대 종단이 한자리에 모인 이날, 특히 기독교의 참여와 발언은 제주4.3유족들과 제주도민들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제주4.3 당시 도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서북청년단과 대동청년단의 핵심 세력이 당시 한경직 목사 등으로 대표되는 기독교 세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4.3을 주제로 설교하는 윤태현 목사
ⓒ 고창남
윤 목사는 18년 전 처음 제주로 목회를 오던 시절을 회상했다. 한라산의 위용과 태평양의 푸름을 닮아 제주 사람들의 표정도 다채롭길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제주 사람들은 표정이 없었습니다.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한 번도 웃어본 적 없고, 울어본 적도 없는 듯한 그런 표정이었습니다."

그는 이것이 4.3의 아픔을 가슴 깊이 묻어두고, 숨소리조차 죽여야 했던 '속슴하라(조용히 하라)'의 세월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울음마저 죄가 되던 시절,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겨울은 역설적으로 가장 바쁜 감귤 철이 되었다. 도민들은 눈물을 훔칠 겨를도 없이 "살민 살아진다(살다 보니 살아지더라)"는 위로를 되뇌며 버텨왔다.

윤 목사는 "제주에서 목회를 한다는 것은 4.3을 알아가고, 애써 기억하며, 잃어버린 표정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 끝에는 개신교인으로서의 통렬한 속죄가 기다리고 있었다.

전도가 아니라 가해였다... 감귤 묘목으로 매수한 신앙

이날 윤 목사의 증언은 서북청년단의 폭력에만 머물지 않았다. 해방 이후 기독교가 제주 도민에게 가한 정신적·경제적 가해에 대한 구체적인 폭로가 이어졌다.

"남편도 교회 다녔으면 안 죽었을 건데..."
"너네 아들도 교회 다녔으면 장가갔을 건데..."

학살의 공포 속에서 교회는 이를 전도의 기회로 삼았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은 이들에게 기독교는 구원이 아니라 상처를 후벼 파는 잔인한 칼날이었다. 1970년대에는 한국과 일본의 기독교 협의회가 들여온 감귤 묘목을 '교회에 나오는 이들에게만' 나눠주는 선교를 하기도 했다.

윤 목사는 어느 어르신의 한 맺힌 목소리를 전했다.

"원수 같은 놈들이 교회에 가득한데, 먹고 살기위해 묘목 받으러 교회 문턱을 넘었다. 그 후로 교회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제주의 개신교 복음화율이 전국 최저인 이유를 "미신이 많아서"라고 핑계 대던 교계 관행에 대해, 윤 목사는 "진정 어린 사과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멈춰버린 '순이 삼촌'의 시간, 오늘이 과거를 구할 차례
 개신교 4.3 제78주년 추모기도회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고창남
윤 목사는 현기영 작가의 소설 <순이삼촌> 문장을 인용하며, 4.3의 죽음이 과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 사건임을 강조했다. 30년 전 '옴팡밭'(움푹하게 들어간 밭)에서 발사된 총알이 우여곡절 끝에 오늘날 순이 삼촌의 가슴을 꿰뚫었듯, 제주의 시간은 오랫동안 멈춰 있었다는 것이다.

멈춘 시간을 깨운 것은 역사의 정의였다. 5공 청문회와 전두환 법정 심판을 지켜보며 용기를 얻은 제주 사람들은 비로소 입을 열기 시작했다. 진상조사, 특별법, 대통령 사과, 국가 추념일 지정까지 먼 길을 돌아왔지만, 윤 목사는 여전히 4.3을 '이름 없는 역사'라고 지적했다.

"제주 4.3평화공원의 첫 번째 전시물은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비석, '백비'입니다. 이름이 없어 세워지지 못한 비석 앞에서 저는 늘 말합니다. '과거는 변하지 않지만, 오늘은 변한다'고 말입니다."

그는 광주 5.18이 '폭동'에서 '민주화 운동'으로 정명된 것도 과거가 바뀌어서가 아니라 오늘의 우리가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제주4.3도 '폭동'과 '사태'를 넘어 진정한 이름을 찾는 과정에 있으며, 그 주체는 바로 지금 이곳에 모인 '우리'라고 설명했다.

"과거가 오늘을 구했으니, 이제 오늘이 과거를 구할 차례"

윤태현 목사는 한강 작가의 표현을 빌려 "과거가 오늘을 구했으니, 이제 오늘이 과거를 구할 차례"라고 역설했다.

수십 년간 멈춰 있던 제주의 겨울을 지나 이제야 "봄이 왐수다(봄이 오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된 지금, 기독교가 먼저 무릎을 꿇고 그 봄을 맞이해야 한다는 서원을 전했다.

이날 기독교의 이름으로 나온 회개와 증언은 제주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한 또 하나의 징검다리가 됐다. 서북청년단의 그늘 아래 숨죽였던 역사를 뒤로하고, 교회는 이제 '학살의 방조자'에서 '치유의 동반자'로 거듭날 수 있을까.

윤 목사의 설교는 마지막까지 '진정한 봄'을 향한 갈망을 담고 있었다.

"멈춘 시간을 지나 진정한 봄을 위해 애쓰고 수고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현장을 지켜본 유족들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기독교의 통렬한 자기반성은 78년 전 억울하게 스러져간 영령과 표정을 잃고 살아온 제주도민들에게 보내는 뒤늦지만 가장 절실한 응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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