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 러브라인·무뎌진 텐션…변화하는 장수 예능 흐름에 역행하는 ‘런닝맨’ [D:방송 뷰]
장수 예능의 위기는 포맷의 노후화에서 드러난다. 익숙한 멤버 조합과 오래된 관계성만으로는 더 이상 웃음을 보장하기 어려운 시대다. 최근 예능가가 멤버 구성을 손보거나 인공지능(AI) 같은 소재를 포맷 안으로 끌어들이며 변화를 모색하는 가운데, SBS ‘런닝맨’은 억지 러브라인과 무뎌진 멤버 텐션 등 반복된 멤버 활용 방식이 한꺼번에 드러나며 오히려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듯한 모습이다.

지난달 29일 방송된 ‘런닝맨’은 성시경과 비투비 이창섭이 출연한 ‘먹고 싶을 텐데’ 레이스로 꾸며졌다. 성시경의 출연 자체는 초반엔 영리하게 소비됐다. 최근 KBS2 ‘더 시즌즈’ 아홉 번째 시즌 MC로 발탁된 성시경은 프로그램명을 ‘성시경의 고막남친’으로 정한 배경을 직접 설명한 바 있는데, ‘런닝맨’은 이를 끌어와 성시경을 ‘고막남친’, 이창섭을 ‘고막클리너’로 부르며 타 방송 홍보도 개의치 않는 농담으로 웃음을 만들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방송은 곧바로 성시경-지예은, 송지효-이창섭을 각각 엮는 러브라인 상황극으로 넘어갔고, 성시경의 “잠깐 사귀자”, 송지효의 “너 나랑 사귈래?” 같은 멘트가 주요 포인트로 소비됐다. 한때 예능의 손쉬운 장치였던 러브라인이 이제는 웃음보다 의도가 먼저 보이는 구식 설정처럼 읽히는 이유다. 특히 나이 차가 큰 출연자들을 관계 구도 안에 무리하게 배치한 방식은 설렘보다 어색함을 키웠다.
‘런닝맨’의 고질적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원년 멤버 송지효의 소극적인 태도도 지적받고 있다. 그는 초창기 ‘런닝맨’에서 멍한 표정과 엉뚱한 타이밍으로 웃음을 주며 ‘멍지효’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동시에 이름표 떼기와 추격전에서 누구보다 강한 집중력과 승부욕을 보여주며 ‘에이스’ 캐릭터를 구축했던 멤버다. 문제는 프로그램이 초창기처럼 몸을 쓰는 추격전과 레이스 중심 포맷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송지효가 강점을 드러낼 수 있는 판도 함께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계속해서 분량과 참여도를 둘러싼 이른바 ‘병풍 논란’까지 이어졌고, 이날 방송 역시 여성 출연자의 존재감을 러브라인 상황극으로 환기하는 데 그쳤다는 점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반면 같은 시기 다른 장수 예능들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MBC ‘놀면 뭐하니?’는 최근 허경환이 고정 멤버로 합류하며 전열을 가다듬었다. 지난해 박진주, 이미주에 이어 이이경까지 비예능인 멤버들이 순차적으로 하차하며 한때 유재석·하하·주우재 3인 체제로 운영되기도 했으나, 지난 2월 박명수와 정준하를 초대해 ‘무한도전’의 향수를 자극하며 화제성을 회복했다. 이후 허경환의 정식 합류와 양상국이 가세한 ‘촌놈들 전성시대’ 등을 통해 예능인 중심의 밀도 높은 티키타카를 강화하는 한편, AI를 활용한 실험적 포맷으로 신선함까지 더하고 있다는 평이다.

SBS ‘TV 동물농장’도 장수 프로그램의 또 다른 생존법을 보여준다. 지난달 22일과 29일 방송된 ‘AI 가짜 동물을 찾아라’ 특집은 AI가 만든 동물 영상과 실제 영상을 구분하는 형식으로 꾸며졌고, 25년간 축적해 온 동물 아카이브와 최신 AI 화제를 결합해 익숙한 포맷 안에 동시대적 감각을 불어넣었다. 29일 방송은 수도권 가구 기준 4.8%, 최고 5.4%를 기록하며 동시간대 1위를 지켰다. 포맷을 완전히 뒤집지 않더라도, 지금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기술과 화제를 자연스럽게 품어내는 것만으로도 장수 프로그램의 체감 온도는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과거 러브라인은 시청자의 몰입을 끌어내는 가장 손쉬운 도구였고, 멤버들의 익숙한 캐릭터는 그 자체로 안정적인 재미를 보장했다. 하지만 지금의 대중이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닌, 정교한 감각과 동시대적 감수성이 담긴 웃음이다. 타 장수 예능들이 인적 쇄신과 포맷의 다변화로 돌파구를 찾는 사이, ‘런닝맨’이 보여준 작위적인 러브라인과 송지효의 활용 한계로 인한 텐션 저하는 뼈아픈 대목이다. 이는 단순한 한 회차의 부진이 아니라, 프로그램이 오랜 시간 안일하게 의존해 온 낡은 장치들이 한계점에 도달했음을 알리는 위험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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