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이 되니 왜 더 '나답게' 살기 어려울까
[오성훈 기자]
교장이라는 자리는 참 묘한 옷이다. 34년이라는 긴 시간을 평교사로, 교감으로 현장에서 보냈지만, 막상 공모교장이 되어 마주하는 일상은 매번 낯선 배역을 요구받는 기분이다.
점심 식사 후 운동장 트랙을 돌고 있을 때였다. 연구기획부장이 저 멀리서 나를 발견하고 달려왔다. 다행히 심각한 얼굴은 아니었다. 학교에서 누군가 교장을 급하게 찾을 때 그 표정이 밝다면, 적어도 학교에 큰 불이 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교장 선생님, 오늘 경복궁 산책 한복 착용 여부 설문에 어떻게 답하셨어요?"
그의 질문에 오전에 메신저로 날아온 설문창을 열고 잠시 망설였던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 학교의 교직원 워크숍은 늘 구성원들의 의견을 촘촘히 들어 결정한다. 2024년에는 여름방학 시작과 함께 1박 2일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나, 그해 열린 '난리법석 대토론회'에서 시험 기간을 활용해 하루만 다녀오자는 결론이 났다. 그 결정에 따라 2025년에는 학교 근처 식당을 빌려 점심을 곁들인 단출한 행사를 치렀다.
올해는 1학기 중간고사 기간을 활용하기로 하고 인왕산 둘레길, 남산 둘레길, 경복궁 체험 중 하나를 고르는 설문을 진행했다. 결과는 경복궁의 압승이었다. 얼마 전 있었던 BTS의 광화문 공연 열기가 선생님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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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복이라는 ‘배역’과 조르바라는 ‘본능’ 사이 '교장의 의무'와 '인간 오성훈의 설렘'이 경복궁 담벼락 아래에서 조용히 교차한다. |
| ⓒ 오성훈(서울시교육청 웍스 AI활용) |
하지만 퇴근길, 연구기획부장의 애쓰는 모습이 자꾸만 잔상처럼 남았다. 내가 조금만 불편함을 감수하면 모두가 즐거울 텐데, 학교장이니까 기꺼이 그 역할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닐까. 퇴근 버스 안에서 괜히 창밖만 내다보았다.
사실 나는 34년 교직 생활 동안 늘 그런 마음으로 공동체를 위한 선택을 해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받은 상처들은 생각보다 깊고 단단했다. 내가 좋아서, 내 의지로 선택한 일 때문에 다치는 건 괜찮다. 그러나 '교장이기 때문에' 내키지 않는 옷을 걸치고 익숙하지 않은 연기를 하다가 입는 내면의 상처는 회복이 쉽지 않다.
공모교장 임기의 반환점을 도는 지금, 나는 다시금 질문 앞에 선다. 좋은 교장이 된다는 것은 나 자신을 지우고 완벽한 가면을 쓰는 일일까. 어쩌면 나답게 있는 것, 그것이 공동체 안에서도 가장 솔직한 존중의 방식일지 모른다.
사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직함의 무게 뒤편에는 소설 속 조르바처럼 어떤 구속도 없이 자유롭게 살고 싶은 본능이 숨어 있다. 자기결정권이 인간 존엄의 핵심이라면, 억지로 한복을 입고 어색한 미소를 짓는 교장보다 자신의 취향을 존중받으며 진심으로 평온해진 교장의 모습이 동료들에게 더 건강한 에너지를 줄지도 모른다.
연구기획부장은 내 기색을 살피더니 쐐기를 박듯 덧붙인다.
"교장 선생님, 매일매일 다시 물어볼 거예요. 교장 선생님 마음이 바뀔 때까지요."
이쯤 되면 못 이기는 척 져줘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일 터다. 나는 그저 허허로운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교장실로 들어왔다. 내일 아침이면 나는 또다시 연구기획부장의 열정 어린 제안과 나의 솔직한 심정 사이에서 저울질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교장이라서 당연히'가 아니라 '인간 오성훈'으로서 어떤 선택이 더 진실한 소통에 가까운지 조금 더 고민해 보려 한다.
옷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옷을 입은 사람의 마음이 풍경을 만든다. 4월 29일, 경복궁의 봄볕 아래 나는 어떤 옷을 입은 사람으로 서 있을까. 한복이면 어떻고 평상복이면 어떠랴. 그날 내가 마주할 풍경이 '교장의 의무'가 아닌 '인간의 설렘'이기를 바라며, 나도 나의 선택이 조금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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