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는 ‘공포의 외인구단’ 같다”…이란과 핫라인 성사 시킨 조직

외교부 안팎에서 요즘 ‘공포의 외인구단’이라 불리는 조직이 있다. 외교부 내 비인기 부서로 꼽혀 온 외교부 아프리카·중동국(이하 아중동국)이다. 아중동국이 맡은 국가들 중에는 정세가 불안정한 곳이 다수이고, 오지와 험지가 많아 평시에도 업무 난이도가 높은 국에 속하는데, 중동 사태가 격화하면서 이들의 정무적 판단과 기민한 대응이 부처 내에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거기는 정말 ‘공포의 외인구단’ 같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의 한줄평은 최근 아중동국의 활약을 그대로 요약한다. 아중동국은 대미외교를 담당하는 북미국이나 중국·일본 업무를 맡는 동북아국과 아시아태평양국 등에 비하면 그간 큰 조명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재난부터 피랍까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아 묵묵한 헌신이 요구되는 곳이기도 했다. 그간 쌓아온 이런 내공을 바탕으로 아중동국 간부와 직원들은 이란전쟁 발발 이후 위기 관리 외교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요즘 이들이 업무를 시작하는 시간은 새벽 4시로, 외교부에서 가장 빠르다. 오전 6시 30분, 9시에 맞춰 관련 회의 자료를 작성하기 위해서다. 중동 현지와 시차가 있는 데다 유관 부처가 참여하는 회의에 올려야 하는 정보의 양과 분석의 깊이가 상당하기 때문에 사실상 밤샘 업무가 일상이다. 그런데도 매일 이런 일정에 맞춰 나오는 아중동국의 수준 높은 보고서에 대해 부처 내에서는 “쿠팡 새벽 배송보다 빠르고 정확하다”는 웃지 못할 농담까지 나온다.
이들의 활약이 더욱 돋보이는 건 전투력과는 대조적인 단촐한 인력 구성 때문이다. 현재 중동 사태의 실무를 책임지는 중동 1·2과의 인원은 각 9명에 불과하다. 주류 부서로 꼽히는 북미 1과(13명), 아시아태평양국 1과(15명), 유엔과(15명), 동북아1과(12명) 등에 비해 적은 인원이 일당백으로 한시가 다르게 급변하는 중동 지역의 전황을 실시간으로 관리하고 있다. 중동 사태의 최전선에 있는 중동 1과는 지난해 외교부 본부 내 전체 과(課) 단위 고과 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는데, 이런 저력이 지금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단적인 예가 지난달 23일 저녁 조현 장관과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 간 통화 성사다. 당시 공식적으로는 “양국 간 소통 끝에 전화가 이뤄졌다”(외교부 당국자)고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이란 측의 선제적인 요청이 있었다고 한다. 한국이 이란의 요청을 수락하자 이란 측은 하루 만에 즉각 통화 시간을 확정해 알려왔다. 두 장관은 통역 없이 영어로 15분 간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전시에 핫라인이 가동된 건 그간 아중동국이 물밑에서 이란과 다져온 유대가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은 범서방 진영 중 아직 이란에서 공관을 철수하지 않은 몇 안 되는 국가이며, 이란 측은 이런 한국에 신뢰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9월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이란 제재 복원을 앞두고 한국이 내린 정무적 판단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당시 유럽 주요 3개국(영·프·독)은 이란의 핵 합의 위반을 이유로 대이란 제재를 복원하는 ‘스냅백’ 절차를 가동했다.
유엔 절차상 이를 위해선 ‘제재 해제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는 결의안을 먼저 올린 뒤 이를 부결시켜야 했다. 하지만 제재 복구를 원하는 서방 국가들이 이런 안건을 직접 올리는 것은 자가당착이었다.
이때 당시 안보리 의장국이었던 한국이 나섰다. 의장국 직권으로 안건을 테이블에 올리면서도 표결에서 ‘의장국의 중립성’을 명분으로 기권을 선언한 것이다. 이란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한 아중동국의 건의를 조 장관이 수용한 결과였다.
이 선택은 서방과 이란 양측 모두를 만족하게 하는 묘수로 작용했다. 안보리 결의안이 통과되려면 전체 15개 이사국 중 9개국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당시 표결에선 미국, 영국, 프랑스 등 9개국은 제재 해제 유지에 반대했고, 중국, 러시아 등 4개국은 해제에 찬성했다. 한국과 가이아나 2개국이 기권해 안건은 최종 부결됐다. 결과적으로는 서방국들이 원한 대로 10년만에 대이란 제재가 전면 복원됐는데, 이란은 한국의 기권표를 국제사회에 제재의 부당함을 강조하는 명분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아중동국은 이란 현지 공관과도 24시간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다. 최근 아중동국 당국자가 안부 전화를 걸자, 김준표 주이란 대사는 “야, 또 폭탄 터진다. 근데 뭐 때릴 데는 다 때려서 더 때릴 데가 마땅찮은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농담 섞인 ‘생존 신고’를 전하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지난 주말 미국·이스라엘의 테헤란 공습 당시 상황은 매우 긴박했다. 출근 중이던 대사관 직원들이 급히 발길을 돌려 아파트 지하 벙커로 피신하기도 했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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