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하나님” “아마겟돈 준비”…美국방이 빠진 위험한 신앙심

“많은 사람이 그 사실을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전쟁의 하나님’이기도 하십니다.” (2025년 12월, 미 국방부 기도회에서 미국 보수 복음주의 목사 프랭클린 그레이엄)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십니다. 누구도 그를 전쟁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할 수 없습니다.” (2026년 3월 29일, 부활절 직전 종려주일 미사에서 교황 레오 14세)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이 전쟁을 기독교 신앙으로 정당화하고 있다는 논란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5월부터 펜타곤에서 매달 열리고 있는 월례 기도회가 문제가 됐다. 장관 주도로 열리는 이 기도회에서 국방부(전쟁부)는 외부 목사를 초청해 군인과 민간인 직원에게 복음주의를 설파한다. 복음주의는 헤그세스 장관 소속 종파인 개혁복음주의교회연합(CREC)의 핵심 교리로, CREC는 기독교 신앙을 정치·사회 전반에 적극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헤그세스 장관은 기도회에서 이란 전쟁과 관련해 “자비를 받을 가치 없는 자들에 대한 압도적 폭력” “사악한 영혼들에 대한 영원한 저주” 등의 발언을 해 논란을 키웠다. 이로 인해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된 군사 작전을 종교적으로 정당화한다는 비판에 휩싸였다.
기도회가 사실상 반강제라는 점도 문제다. 국방부는 참석이 자율이라지만, 장관 주도 행사라는 점에서 사실상 의무 참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 합동참모본부에서 근무했던 익명의 관계자는 영국 인디펜던트 인터뷰에서 “지휘계통 최고위층이 군사 작전을 지나치게 기독교적 어조로 포장하는 것은 헌법상 종교의 자유에 배치된다”고 비판했다.
미군 가운데 기독교인은 약 70%다. 그 외에는 이슬람교 신자나 무신론자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또한 미국은 헌법에 따라 종교의 자유와 정교 분리의 원칙을 보장한다.

헤그세스 장관은 특히 십자군 전쟁에 유별난 애착을 보인다. 이란 전쟁을 제9의 십자군 전쟁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십자군 전쟁은 1096~1291년 서유럽 기독교 세력이 중동 이슬람 세력을 상대로 벌인 8차례의 전쟁이다.
그는 2020년 발간한 저서 『미국의 십자군(American Crusade)』에서 “십자군 전쟁은 피비린내 나는 비극이었지만 유럽을 이슬람 침략으로부터 구했기에 정당했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은 11세기 기독교 성지 침공을 떠올리게 하는 십자군의 순간에 직면해 있다”고도 했다. 군종교자유재단(MRFF)의 설립자 마이키 와인스타인은 지난달 13일 CNN 인터뷰에서 “이란 전쟁은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있었던 십자군 전쟁의 아홉 번째 버전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그의 십자군 전쟁에 대한 집착은 문신에서도 드러난다. 오른쪽 이두박근에는 십자군 전투 구호인 라틴어 ‘Deus vult’(신의 뜻이다) 문신이, 가슴에는 십자군의 상징인 예루살렘 십자가 문신이 새겨졌다.
지휘관들을 통해 일선 장병들에게도 기독교식 정치 논리를 주입했다는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지난달 CNN 등에 따르면 MRFF는 장병 200여 명으로부터 “이란 전쟁은 신의 계시”라는 취지의 발언을 들었다는 제보를 접수했다. 군 내부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신의 명령에 따라 아마겟돈과 예수 재림을 준비하려 이란을 침공했다”는 말이 떠돈다고 한다.

미 정교분리연합은 국방부에 기도회에 대한 정보 공개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이 단체는 곧바로 국방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미 하원의원 20여 명도 지난달 정부와 군 당국에 조사를 요청했다.
레오 14세 교황도 지난달 29일 바티칸에서 열린 종려주일 미사에서 “끔찍하다. 예수는 전쟁을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직접적으로 미국을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가톨릭 역사상 최초의 미국인 교황으로서 이례적으로 강도 높은 비판이다.
하수영 기자 ha.su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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