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혁 기자의 ‘예며들다’] 교회의 왕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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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왕은 예수인가 목사인가.'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나오며 이 같은 질문 하나가 머릿속에 묵직하게 자리했다.
1970~80년대 한국교회의 엄청난 부흥 배경에는 성도들의 눈물겨운 헌신과 열정이 자리한다.
교회와 담임목사를 아비처럼 섬기며 목자로서 신앙의 바른길로 자신들을 인도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물심양면으로 가장 좋은 것을 드리고자 했던 애정 어린 섬김이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그것도 가장 낮은 자리로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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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왕은 예수인가 목사인가.’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나오며 이 같은 질문 하나가 머릿속에 묵직하게 자리했다. 요즘 국내서 가장 뜨거운 이 영화의 이야기는 이렇다. 계유정난이 조선을 뒤흔들며 어린 왕 이홍위(단종)는 왕위에서 쫓겨나 강원도 영월의 깊은 산골 광천골로 유배된다. 그리고 그 곁을 지키게 된 인물이 있다. 호장 엄흥도와 광천골 사람들이다. 이들은 굶주림과 생존의 위기 속에서도 폐위된 이홍위를 끝까지 왕으로 섬긴다. 현실적으로 아무 힘도 없는 소년이지만 그 존재를 끝내 부정하지 않는다. 마을의 어르신조차 고깃국이 올라간 생일상 한 번 받아보는 것이 소원일 정도로 가난했던 광천골 사람들은 이홍위를 위해 매번 지역 최상의 특산품을 내어 수라상을 차렸다.
더 눈길이 가는 건 그들의 마음 씀씀이였다. 삶의 의지를 잃은 왕이 입맛이 없다며 상을 물리는, 복에 겨운 배부른 소리나 할 때도 왕을 비난하기보다는 왕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이었다. 과거 한국교회 성도들의 모습에서도 그 마음을 발견한다. 1970~80년대 한국교회의 엄청난 부흥 배경에는 성도들의 눈물겨운 헌신과 열정이 자리한다. 특히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한국 특유의 정서를 찾는다. 한국교회 성도들의 특성을 잘 대변하는 한자어가 아닐까 한다. 교회와 담임목사를 아비처럼 섬기며 목자로서 신앙의 바른길로 자신들을 인도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물심양면으로 가장 좋은 것을 드리고자 했던 애정 어린 섬김이다.
오늘 우리의 교회를 바라본다. 교회의 왕은 누구인가. 말로는 분명하다. 예수 그리스도다. 그러나 현실의 풍경은 때로 낯설다. 설교 강단에서만 만날 수 있는 목회자, 교인들과의 접촉을 의도적으로 줄이며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목사의 권위가 산다고 여기는 리더십, 그리고 대접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 어느 순간, 현실 감각은 사라지고 왕의 자리에 계셔야 할 분 대신 슬쩍 그 자리를 차지한 자신과 마주할지도 모르겠다. 현장의 성도들은 이미 느끼고 있다. 목회자와 소통하기 어렵다는 목소리, 교회 안에서조차 관계가 단절되어 있다는 체감. 이 불편한 진실은 강단 밖에서 더 또렷하게 들린다.
최근 교계에서 반복되는 논란 역시 우연이 아니다. ‘내가 세운 교회니 이 정도 대우는 받아야 한다’는 생각부터 성도와 부교역자를 향한 폭언까지. 특히 은퇴 이후의 보상까지 당연시하는 목회자들의 인식은 교회가 누구의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지게 만든다. 교회는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공동체의 것이며, 더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의 것이다. 성도들이 드린 헌금 또한 본래 세상의 소외된 이웃과 교회를 위해 쓰이도록 맡겨진 것이다. 동시에 목회자가 생계의 염려 없이 말씀 탐구와 목양에 전념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경계가 흐려질 때 헌금은 하나님 나라의 것에서 담임목사의 것으로 변질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순간, 섬김은 사라지고 생색과 눈먼 돈이 남는다.
이 지점에서 기독교의 본질을 다시 떠올린다. 기독교는 역설의 종교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그것도 가장 낮은 자리로 오셨다. 가장 높은 자가 가장 낮은 곳에서 섬기는 일. 이것이 복음의 질서다. 직분이 높아질수록 더 낮은 자리로 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우리는 그 질서를 거꾸로 세워놓고 있지 않은가.
영화에서 단종은 광천골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렸다. 그 낮아짐이 공동체의 마음을 샀다. 반면 자신을 높이는 리더십은 공동체를 병들게 한다. 어쩌면 지금 한국교회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프로그램도, 더 화려한 비전도 아닐 것이다. 그저, 진짜 왕을 다시 왕으로 모시는 일이다. 광천골 사람들처럼.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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