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페트로 달러, 페트로 위안

김찬희 2026. 4. 4.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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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0월 6일, 이집트·시리아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기습했다.

초기에 참패를 거듭하던 이스라엘은 미국 지원을 얻고서야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다.

고심하던 미국은 달러와 석유를 하나로 묶는 '페트로 달러'라는 묘수를 찾아냈다.

사우디는 원유 거래를 오직 달러로만 하고, 미국은 안보·체제 보장을 책임지는 '사우디-키신저 밀약'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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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희 논설위원


1973년 10월 6일, 이집트·시리아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기습했다. 초기에 참패를 거듭하던 이스라엘은 미국 지원을 얻고서야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다. 4차 중동전쟁은 20일 만에 끝났지만, 후폭풍이 거셌다. 미국과 서방의 군사지원에 맞서 아랍국가들이 ‘석유 무기화’에 시동을 걸어서였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수장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이라크 이란 등이 손을 잡고 1차 오일쇼크를 일으켰다. 3차 중동전쟁 때 금수 조치의 실패를 교훈 삼아 감산, 가격 인상 카드를 던졌다. 이듬해 3월까지 국제유가는 4배 뛰었고, 세계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악몽에 빠졌다.

당시 중동산 원유의 최대 수입국이었던 미국의 타격은 컸다. 가뜩이나 닉슨 대통령이 달러의 금 태환 중지를 선언하면서 기축통화 지위가 흔들리던 참이었다. 고심하던 미국은 달러와 석유를 하나로 묶는 ‘페트로 달러’라는 묘수를 찾아냈다.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장관은 1974년 리야드로 날아가 파흐드 왕세자를 만났다. 사우디는 원유 거래를 오직 달러로만 하고, 미국은 안보·체제 보장을 책임지는 ‘사우디-키신저 밀약’을 맺었다. 이렇게 달러는 다시 금과 같은 지위를 얻었다.

페트로 달러의 위세는 막강했다. 소련 붕괴 원인 중 하나로 미국의 고금리 정책으로 폭락한 석유 가격(소련 재정난)이 지목될 정도다. 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는 없나 보다. 셰일오일 대량 생산 등으로 미국과 사우디 사이에 금이 가자 중국이 치고 들어왔다. 중동에서 영향력을 키운 중국은 ‘원유 큰손’ 명함을 활용해 사우디에 ‘페트로 위안’을 제안했다. 지난해 중국과 사우디의 원유 거래에서 5%가량은 위안화 결제로 추산된다. 중국은 이란 러시아와도 위안화로 원유를 거래한다.

최근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에 통행료를 부과하겠다고 나섰다. 납부 화폐로 위안화 또는 위안화와 연동한 스테이블코인이 거론된다. 전쟁으로 태어난 페트로 달러가 전쟁 때문에 위협받는 셈이다. 기묘한 역사의 역설이다.

김찬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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