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안돼”… AI붐 타고 데이터센터 갈등 ‘활활’

지난달 12일 서울 금천구 시흥동 금천구청 앞. 지역 주민 50여명이 ‘금천주민 생명·재산 위협 데이터센터 철회’ ‘주민 의견 무시한 행정 규탄’ 등이 적힌 푯말을 들고 현재 공사 중인 지상 8층 규모의 독산동 데이터센터 건립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시위에 참여한 한 주민은 “1000세대가 넘는 아파트와 불과 70m 거리에 데이터센터가 들어선다는데 구청에서 주민 의견은 전혀 묻지 않았다”며 “화재가 발생하거나 피해가 생기면 누가 책임질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최근 주민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해 금천구를 상대로 소송 제기를 검토하고 있다. 금천구가 주민 의견 청취 절차 없이 주민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데이터센터 건설을 허가해줬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인공지능(AI) 열풍에 힘입어 데이터센터가 늘면서 이를 둘러싸고 구청과 기업, 주민 간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한국데이터센터협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데이터센터는 모두 165곳이다. 2023년(153곳)보다 7% 늘었다.

지역별로 보면 수도권 집중도가 뚜렷하다. 전국 민간 데이터센터 93곳 가운데 75.3%(70곳)가 수도권에 집중됐다. 서울에만 민간 데이터센터가 35곳(37.6%) 있고, 경기도에 31곳(33.3%), 인천에 4곳(4.3%)이 각각 위치해 있다. 특히 과거 주로 공업지역에 들어섰던 데이터센터가 최근에는 주거지역 인근에 건설되면서 주민과의 마찰 요인이 되고 있다. 주민들은 전자파 노출, 저주파로 인한 소음 공해, 화재 우려, 조망권 침해 등을 이유로 데이터센터 건립에 반대한다.
데이터센터 허가 과정에서 이러한 요인에 관한 영향 평가를 했는지 여부에 대해 금천구는 “데이터센터 건립이 인근 주거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현행 건축법 등 관련 법령상 허가 요건으로 규정돼 있지 않으며 별도의 검토 기준도 마련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데이터센터의 전자파나 저주파 소음 등과 관련해 아직 그 영향을 명확히 규명한 논문이나 보고서는 없다. 전문가들 의견도 두 갈래로 나뉜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3일 “전자파도 저주파도 유해 기준치를 넘지 않기 때문에 (구청 등에서) 건설을 허가해 주는 것 아니겠느냐”며 “AI 확산 등을 고려하면 데이터센터 건설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규제는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주민과의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주거지 인근보다는 가급적 산업단지 내에 짓는 대안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박 교수는 덧붙였다.

반면 최병호 고려대 휴먼인스파이어드 AI연구원 연구교수는 “데이터센터는 24시간 가동되므로 당연히 열이 발생하고, 이를 식히기 위해 물을 엄청나게 끌어다 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인근 지하수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데이터센터 인근에 사는 주민으로서는 전자파, 저주파 등을 우려하는 게 당연하고, 이 때문에 사전에 (영향을) 진단하는 걸 의무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데이터센터의 수도권 쏠림에 따른 우려도 제기된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여름철 폭염 등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수도권에 밀집한 데이터센터가 지역 내 대규모 정전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일단 규제보다 진흥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중심으로 준비 중인 ‘데이터센터 특별법’은 데이터센터 건설 시 전력계통영향평가를 받는 기준을 완화하는 등 관련 규제를 줄이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터센터 건설을 둘러싼 갈등은 해외에서도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페이스북 운영사 메타가 미국 조지아주 뉴턴 카운티에 7억5000만 달러(약 1조1494억원)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건설한 뒤 인근 지역 주민들의 집에서 물이 나오지 않는 등의 문제들이 보고됐다. 뉴턴 카운티 관계자는 NYT에 “향후 2년 동안 수도 요금이 33% 인상될 예정이며, 이는 일반적인 연간 인상률인 2%를 훨씬 웃도는 수치”라고 전했다.
사단법인 녹색전환연구소가 지난해 8월 발행한 ‘AI 시대, 데이터센터 환경영향 관리 방안’ 보고서를 보면 2023년 대비 2028년 미국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현재의 3.3배, 미국 전체 전력의 최대 12%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물 소비량도 2027년쯤 현재보다 약 4억2000만~6억6000만㎥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덴마크 연간 물 사용량의 4~6배에 해당하는 양이다.
이런 탓에 데이터센터 건설 전 물 사용이나 에너지 등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 측정해 보고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럽연합(EU)은 데이터센터의 에너지·물 사용 등 관련된 24개 지표를 공동 데이터베이스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으며, 독일과 중국은 데이터센터의 전력사용효율(PUE)·재생에너지 비율 등 구체적 목표를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서진석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위원은 “기업들은 총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방안을 모색하고 데이터센터 환경 데이터를 수집, 공개해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 교수도 “‘AI 전환’과 ‘그린 전환’ 두 가지를 모두 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AI 전환만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은현 기자 e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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